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리 Nov 07. 2024

남편이 생겼다

  엄마 사망 신고서를 내가 썼다. 종이 한 장에 엄마의 주민등록등본은 말소가 되고 가족관계증명서 엄마 이름 옆에는 ‘사망’이라는 말이 붙었다.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암보험을 청구하려고 가족관계증명서를 잔뜩 떼두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없던 말이 생겼다. 20여 일의 투병 생활의 끝은 ‘사망’이었다. ‘사망’ 표시가 없는 종이 바로 뒷장에 ‘사망’이라는 표시가 있는 종이가 자리를 잡았다. 서류 청구 날짜는 일주일 남짓 차이가 났다. 세상과 시간은 내 편이 아닌듯 싶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장례를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주민센터에 가서 사망신고를 했더랬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때는 그렇게 서둘러 정리를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어쩌면 빨리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례니, 보험이니, 사망신고니, 매장이니 ‘사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사망신고를 빨리 한다고 그 무게가 빨리 가벼워지는 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반듯한 네모 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망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매정해 보이고 그랬다. 네모 칸의 모서리가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어제 나는 배우자가 생겼다. 신혼희망타운 입주를 위해 혼인신고를 서둘렀다. 둘 다 6시에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니 평일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고르고 고른 날이 어제였다. 여하간 혼인신고도, 웨딩드레스 피팅도, 신혼집 주택 열람도 죄다 평일만 된다고 하니 시간 내기가 참 어렵다. 학교 바로 옆 주민센터에 가서 우리가 일주일 전부터 고심해서 작성한 혼인신고서를 내밀었다. 접수해주시는 분은 서류를 받으며 다시 무르는 것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내 이름 옆에 ‘사망’이 달라붙기 전까지 잘 살아볼 참이다. 늦으면 5일, 빠르면 내일 아침 상대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배우자’ 칸이 생기고 그 옆에 서로의 이름이 자리할 것이라고 했다. 혼인신고서를 내는 그 순간까지도 썩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배우자’ 칸이 없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마지막으로 떼보려고 정부24 사이트에 들어갔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공동인증서로 인증을 마치고 열람을 하는 순간, 역시 우리나라 공무원들 일 처리가 상당히 빠르다. 벌써 내 이름 밑에는 홍씨 아빠와 사망한 엄마 그리고 배우자 김범준이 있었다. ‘사망’이라는 글자를 내 마음 속에 집어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이 머리에 스쳤다. 그 길을 지나 그 아래 배우자가 생기기까지, 나는 울기도 많이 울고 행복하기도 많이 행복했다.      


  아빠에게 ‘缶林’이라는 본을 받아 30년간 누군가의 가족이다가, 이제는 내 가족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길게는 5년 안에 내 밑으로 김씨 성을 가진 아이가 하나 혹은 둘 정도 더 생기겠지, 그 아이들의 주민등록번호는 ‘26’ 혹은 ‘27’로 시작하겠지, 나는 신생아를 품고 또 낳고 똥기저귀를 갈겠지, 아직 있지도 않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에 마음이 묵직해진다.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에, 그리고 종이에 더해진 배우자라는 몇 글자에 내 인생은 조금 더 진지해졌고 또 무거워졌다. 



작가의 이전글 상사 욕하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