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9주차를 지나고 있는 나는 입덧이 심해 직장에 병가를 냈다. 평소 약한 체력 탓인지 임신을 확인하고 난 다음날부터 단 하루도 전과 같은 컨디션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잠이 쏟아지고, 가슴이 아프고, 밥을 먹으면 울렁거리고, 밥 냄새도 맡기가 싫고, 어지럽고, (그래도 다행히 토는 안한다) 여하간 내 몸이 환자가 된 것 같다. 급기야 출근 자체가 내 몸에 무리가 된다 싶어 진단서를 끊어 병가를 낸 첫 날이 오늘이다. 근데 왠지 오늘 아침은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
엄마도 입덧이 심했다고 했다. 엄마한테 들은게 아니라 확실치는 않다. 엄마와 약 20년정도 전에 남이 된 아빠한테 들은 이야기니 말이다. 입덧은 엄마따라 간다고 하길래 아쉬운 대로 아빠에게 ‘엄마도 토를 했어? 언제까지 입덧을 했어?’ 하고 물었는데 아빠는 ‘토는 안했어, 한 3개월 하고 말던데’ 하고 답했다. 그런데 왜인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애도 낳아보지 않은 아빠가 30년 전의 이야기를 뭐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이나 할까 싶은 마음이지만, 엄마가 죽고 없는 이 마당에 아빠 말 외에는 믿을 구석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엄마는 유산도 두 번이나 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엄마가 죽기 전에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고, 나도 놀라서 엄마에게 교차점검을 여러번 했던 부분이라 확실하다. 그런데 그 때는 유산이 다 같은 유산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임신을 해보니 유산에도 종류가 상당했다. 착상에 실패해 자연 배출되는 화학적 유산, 착상이 되었으나 아기집 안에 난황 혹은 아기가 안보이는 고사난자, 아기는 생겼으나 심장이 멈춰버리는 심장멈춤유산 등이 있다. 나는 이 중에 엄마가 어떤 유산에 해당되었는지 궁금했다. 아빠한테 물어보았으나 ‘아주 초기에 유산을 했다‘는 애매한 답변만 돌아왔다. 엄마에게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엄마에게 이런 게 궁금할 줄이야, 그 때는 전혀 몰랐으니 아쉬워하기도 어렵다. 입덧도 엄마 따라가고 유산도 엄마 따라갈까봐 초기에는 엄청 마음을 졸였었다. 물론 지금도 마음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지만 임신 주차로 따지면 9주차 시기상 화학적 유산과 고사난자는 지나갔다.
7주차에 힘차게 뛰는 홍시(나의 아기 태명이다)의 심장을 확인하고, 꼬물거리는 초음파 사진을 밤마다 들여다 보며 ‘쟤는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는 나는 엄마도 이랬을 생각에 왈칵 눈물이 고인다. 엄마와 이 마음을 나눌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나와 같이, 어쩌면 나보다 더 설레하며 좋아했을텐데. 엄마는 나를 품고 키우는 모든 과정이 너무나 행복하고 재미있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모유를 떼고 몸을 뒤집었을 때,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말을 시작하며 엄마와 아빠를 불렀을 때, 모든 과정이 신기하고 너무나도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나에게 그 말을 해주었을 그 때,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이미 홍시를 상상했고, 홍시와 행복할 것임을 알았다. 엄마와 내가 그랬듯, 나또한 필연적으로 홍시와 함께 할 모든 순간이 너무나 신기하고 행복하리라는 것을 안다.
홍시는 우리엄마의 존재를 상상으로만 그려보며 이 세상을 살아갈 테지만, 나와 엄마 사이의 그 모든 역사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와 홍시 자신 사이에서 언제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