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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낳겠다 결심한 이유

그 출처가 나를 향한 애정이라해도

by 비유리

나를 꼭 빼닮은 아기를 낳겠다고 다짐한 것은 엄마가 죽고 나서였다. 그전에는 막연히 언젠가 나도 아이를 낳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라면 엄마가 죽고 난 뒤부터는 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기필코 아이를 낳고야 말겠다는 일념이 가슴 속에 싹을 틔웠다. 내가 꼭 낳겠다는 아기는 딸이었다. 아들은 내 희망 사항은 아니었다. ‘엄마와 나’같은 사이를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자 아이를 낳는 것의 가장 큰 이유였기에 아들을 꿈꾼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막연히 꿈꾸는 애틋함에 눈물겨워 서로를 얼싸안는 나와 그 자식의 얼굴은 딸이다. 기필코 딸을 낳아 엄마가 나에게 그러했듯 그만한 사랑을 베풀고야 말겠다는 나의 다짐. 그것은 모성애라기보다는 엄마를 잃은 딸이 급기야는 마음 붙일 수 있는 것을 제 손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자기애가 아닐까. 뱃속의 꼬물거리는 태동과 함께 온갖 자질구레한 상념이 달려나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기는 잘 크고 있다. 나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아들이다. 세상 사는 게 다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또 한 번 알아간다. 봄에 싹을 틔운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수확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시간도 흘러 출산은 어느덧 80일도 남지 않았다. 아기는 발로 차거나 머리로 밀거나 하여 제 몸이 그곳에 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린다. 가끔은 너무 세게 움직여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아들이라 그런가 힘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왜 아기를 원했는가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찾아가 본다. 이기심, 자기애 어쩌면 욕심과 그 끝에 작게 자리한 모성애와 약간의 자비. 내가 받은 사랑을 베풀겠다는 아름다운 포장 뒤에는 떠난 엄마의 자리를 갈구하는 나의 헛헛함과 쓸쓸함이 분명히 있다. 물론 그것만을 위해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기를 보살피고 씻기고 입히는 모든 과정에서 엄마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렇다 한들 그게 범죄도 범법도 아니니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는 없겠다. 그저 베풀고자 하는 이 마음이 상실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금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내 인생을 전부 바쳐 아들만을 위해 살리라는 다짐은 본래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을 내뱉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를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아직 내 아들의 얼굴도 모르지만 정말 그 말 만큼은 하지 않고 죽고 싶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느껴지지 않기를, 짐짝같은 엄마가 아니라 훨훨 날아다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나 하나를 믿고, 내 의지와 내 손에 의해 이 세상에 내려앉게 된 나의 아들. 그 아들의 존재가 나를 무겁고 진지하게 만든다. 그 출처가 나를 향한 애정이라거나, 제 욕심이라 한들 이제 그 존재가 없던 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 이것이 내 인생에 어떤 변화와 파도를 가져다줄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 작은 아기가 나의 뱃속에서 나오는 그 순간, 나는 아이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어떤 땅이든 딛고 일어설 힘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 얼른 보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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