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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Lee Jan 03. 2024

어쩌다 집짓기 - 13

6. 집 짓기의 여섯 번째 단계 집 가꾸기

6. 누가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집의 생김새

  집은 부동산이라고 한다. 움직이지 않는 재산. 내가 집을 짓고 4년을 살아 보니 집을 부동산이라고 하기엔 변수가 있다. 대부분의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개인 정원이 있다. 이 부분이 부동산인 주택의 변수이다. 사람이 집을 짓고 살지만 집은 사람을 짓는다. 집을 가꾸며 마당을 정원을 가꾸며 나는 점점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자주 짓는 표정에 따라 얼굴 주름살이 다르게 잡히는 것처럼 집도 사는 사람이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계속 달라지고 성장한다. 자연과 함께 자연과 가까이 살고자 해서 아파트가 아닌 주택살이를 선택했지만 되도록 자연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경치 좋은 전원의 한가운데가 아닌 아파트 근처에 조성된 주택단지의 땅을 구입했다. 마당에는 되도록 꽃과 나무를 심었다. 상추 고추 깻잎 오이 당귀 머위대를 심은 텃밭은 플랜트박스를 따로 만들어 테라스에 두었다. 드물지만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이 나와 함께 꽃을 보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머우대와 당귀 특히 돼지감자 호박 같은 작물들은 줄기와 뿌리가 마구 뻗어 나가 밭이나 산을 망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집 마당에는 고라니부터 들고양이, 까치, 물까치, 박새, 딱새, 직박구리, 딱따구리... 에 이르는 많은 동물들이 내려온다. 그들은 마당에 뿌려 둔 밤 도토리와 물을 먹고 목욕을 하고 배설한다. 그 배설물들은 빗물에 녹아 식물에게는 훌륭한 영양제가 된다. 아주 느린 순환이지만 주택에 몇 년 살다 보면 그 느린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택에 사는 사람은 사계절을 오롯이 몸으로 느끼고 비 바람 눈과 같은 날씨의 변화에 매우 민첩해짐
목 마른 들고양이와 텃새들을 위해 매일 아침 항아리 뚜껑에 새 물을 떠 둠
계절마다 피어나는 다양한 꽃과 흙, 풀에서 나는 향기들은 그 어느 향기로운 디퓨저보다 효과 좋은 수면유도제

  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심고 가꿔야 하는지 전혀 무지했던 나는 주택살이 3년이 되던 해에 조경기능사에 도전했다. 강의료와 교재비 실습비 등을 전액국가지원으로 6개월간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 처음에는 색과 향이 화려한 꽃들, 이름을 알고 있는 꽃들을 주로 심었다. 씨를 뿌려 번식하는 꽃인지, 줄기나 뿌리로 번식하는 꽃인지, 물과 햇빛이 많이 필요한 꽃인지... 뭐 이런 것은 전혀 모른 채 색깔 맞춰서 심기에 급급했다. 나의 무식하고 무모한 무조건적인 식재의 결과로 그 이듬해 꽃 밭은 첫 해와는 전혀 다른 풀밭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참담한 결과에 나는 매우 실망했다. 적잖은 돈을 들여 심고 무더운 여름날 열심히 물을 줘서 가꾼 나의 꽃들이 왜 다시 피어나지 않는가?

  조경을 공부하면서 거름 퇴비 비료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도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고 물을 주고 햇빛을 가려주고 춥지 않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꽃집에서 노지월동이라고 쓰여 있는 식물은 무조건 햇빛과 물만 있으면 저절로 자란다고 알았던 나는 얼마나 바보였는지... 한여름의 너무 뜨거운 햇빛에는 식물도 피부를 덴다.

  여주의 조용한 마을 끄트머리에 위치한 여백서원을 다녀왔다. 서원지기인 전영애 교수님을 실제로 뵙고 그분의 책을 몇 권 골라 읽고 있다. 일흔을 넘긴 그녀의 미소는 어찌나 해맑고 예쁘던지... 작고 소박한 모습이었으나 조곤 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는 힘이 있으셨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손 때 묻고 사연 가득해 보이는 서가에는 저절로 짐작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서려 있었다. 3500평 땅을 혼자 가꾸며 전 세계인에게 개인 사유지를  흔쾌히 개방하는 그녀의 행보에 존경을 넘어 숭배에 가까운 마음이 일었다. 요즘 세대 유행어로 '리스펙'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개방하는 여백서원의 월. 마. 토. 내가 방문한 날은 마치 축복처럼 하늘에서 눈이 내렸음

  그녀의 책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 꿈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꿈의 실현을 위해 시골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을 꼽는다는 부분이다. 시골 마을에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화려하고 큰 집을 짓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시골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다시 이사를 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시골살이는 조금씩 천천히 적응해야 하고 주변과도 거슬리지 않는 규모로 시작해야 옳다. 서둘러 꿈을 실현하겠다고 덤비다 보면 꿈도 집도 폐가가 되어 버린다는 말씀에 극공감. 내가 사는 동네도 3년이 안되어 이사 나간 세대가 있고 매매를 위해 집을 내놓은 세대도 있다.

  정원은 가꿀 수 있는 체력만큼만 만드는 것이 좋다. 과실수를 심어 무농약으로 키운 그 열매를 따 먹길 원하는가? 예쁜 꽃과 커다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거름과 물이 필요하다. 심지어 거름과 물도 시기와 양을 가려서 줘야 한다. 고추와 오이 모종을 사다가 화원에서 구입한 흙(상토)을 넣어 키웠다. 고추와 오이 두어 개를 따 먹는데 모종 값과 흙 값 매일 아침 물을 주는 노동을 해 보고 나서야 이거 쉽게 볼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해뜨기 전에 물을 줘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자 벌레는 왜 그렇게 꼬이던지... 마트에 가서 오이 호박을 구입하면서,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작물에 매겨진 가격이 너무 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택은 집주인의 체력과 비례하여 가꾸어지기 때문에 정원에 어떤 나무가 심기고 어떤 작물이 얼마만큼의 규모로 재배되는지 집의 생김새 자체가 달라진다. 집주인의 나이와 성별, 취향은 마당의 디자인을 바꾸고 발전시킨다. 우리 동네의 대부분의 집들은 이사했을 당시 깔았던 잔디마당이 걷어지고 현무암 판석이나 나무데크로 바뀌어 깔려 있다. 눈비에 약한 나무데크마저도 힘든 집주인은 고무합성데크를 깔았다. 그에 비해 아름답게 관리된 정원이 있는 이웃집은 지나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도 마당에 나가 호미를 들게 만든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체력을 봐가며 정원을 가꾸기를 권한다. 아무것도 심지 않아도 흙에서는 무엇인가가 계속 올라오기 마련. 흙에서 무엇이 올라오는지 가만히 살펴보고 맨 발로 흙을 밟아 가며 기존에 심겨 있는 풀과 나무에 어울리는 그 무엇을 심고 가꾸기를 바란다. 나 역시 이사 초기에는 파헤쳐져서 그냥 붉기만 한 맨 땅을 두고 보기 싫어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사다 심는 실수를 했다. 4월이 지나 5,6월이 되면서 흙은 곧 초록으로 바뀌었는데 나는 기다릴 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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