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변 Nov 05. 2019

의전이 무엇인가요

신입 변호사 생존기

연수원에서 지낼 때도


의전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예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밝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예의와 의전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참 늦게도 깨달았습니다.


연수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조 형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판사님 국을 떠 드리더라고요.


그 뒤에 저는 가만히 제 국을 떠먹었죠.


자리를 마치고는 그 형이,


"너는 먼저 판사님 국을 떠 드리고 그래야지 그걸 멀뚱멀뚱 앉아있냐."


저는 약간 갸우뚱하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형, 저는 집에서 밥 먹을 때, 엄마 국 안 떠드리거든요, 저 판사님이 우리 엄마보다 중요하거나 높은 사람도 아니고, 제가 우리 엄마한테도 안 하는 걸 저 판사님한테 굳이 해야 하는 건가요?"




저는,


그런 게 싫습니다.


먼저 달려가서 문을 열어주고, 어느 자리가 상석이며, 어쩌고 저쩌고..


물론, 예의가 발전하여 대접이 되었을 것이고, 그 발전된 형태가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의전을 잘 못해서


윗분들 중에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계셨습니다. 지금도.. 계시네요.


잘 보이려면 국도 떠드리고, 달려가서 문도 좀 열어드리고 해야 하는 건데, 잘 못하네요.




연수원에서 만난 교수님이 한 분 계십니다.


누가 국을 떠주려고 하면, 웃으시면서,


"뭐 하는 거예요, 내가 환자도 아니고 손도 있고 하는데 왜 국을 떠줘요."


누가 문을 열어주려고 하면,


"저도 손이 있다니까요."


라고 하시는 제가 닮고 싶은 교수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수님은 더 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더 깍듯하게 인사를 했고, 더 챙겨드렸습니다.


그런데,


"신 시보, 나한테 그렇게까지 과하게 인사하지 말아요, 부담스러워."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짜 더 고개를 숙이고 싶은 분은 저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하시고,


내가 고개를 숙이기 싫은 사람은 나에게 더 고개를 숙이라고 하는,


참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저도 교수님처럼 고개를 숙이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인사를 하는 그런 대상이 되고 싶습니다.




교수님, 얼마 전에도 전화드렸었는데,


항상 건강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네 잘못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