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변호사 생존기
연수원에서 지낼 때도
의전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예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밝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예의와 의전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참 늦게도 깨달았습니다.
연수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조 형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판사님 국을 떠 드리더라고요.
그 뒤에 저는 가만히 제 국을 떠먹었죠.
자리를 마치고는 그 형이,
"너는 먼저 판사님 국을 떠 드리고 그래야지 그걸 멀뚱멀뚱 앉아있냐."
저는 약간 갸우뚱하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형, 저는 집에서 밥 먹을 때, 엄마 국 안 떠드리거든요, 저 판사님이 우리 엄마보다 중요하거나 높은 사람도 아니고, 제가 우리 엄마한테도 안 하는 걸 저 판사님한테 굳이 해야 하는 건가요?"
저는,
그런 게 싫습니다.
먼저 달려가서 문을 열어주고, 어느 자리가 상석이며, 어쩌고 저쩌고..
물론, 예의가 발전하여 대접이 되었을 것이고, 그 발전된 형태가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의전을 잘 못해서
윗분들 중에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계셨습니다. 지금도.. 계시네요.
잘 보이려면 국도 떠드리고, 달려가서 문도 좀 열어드리고 해야 하는 건데, 잘 못하네요.
연수원에서 만난 교수님이 한 분 계십니다.
누가 국을 떠주려고 하면, 웃으시면서,
"뭐 하는 거예요, 내가 환자도 아니고 손도 있고 하는데 왜 국을 떠줘요."
누가 문을 열어주려고 하면,
"저도 손이 있다니까요."
라고 하시는 제가 닮고 싶은 교수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수님은 더 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더 깍듯하게 인사를 했고, 더 챙겨드렸습니다.
그런데,
"신 시보, 나한테 그렇게까지 과하게 인사하지 말아요, 부담스러워."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짜 더 고개를 숙이고 싶은 분은 저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하시고,
내가 고개를 숙이기 싫은 사람은 나에게 더 고개를 숙이라고 하는,
참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저도 교수님처럼 고개를 숙이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인사를 하는 그런 대상이 되고 싶습니다.
교수님, 얼마 전에도 전화드렸었는데,
항상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