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밤새워 하늘을 씻은 게 분명하다. 티끌도 불필요도 없는 하늘엔 쨍한 햇살만 가득하여 아침이든 저녁이든 어느 시간이든 상관없이 깨끗하고 맑다. 가만히 걷기만 하는 나조차 소음이고 먼지가 된다. 내 생각은 그만하고 밖으로 시선을 둔다. 그게 덜 소란하므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털레털레 걷는 사람들은 털레털레 걷기만 한다.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은 터벅터벅 걷기만 한다. 그들의 뒤통수를 따라간다. 긴 머리, 짧은 머리, 되는대로 질끈 묶은 머리, 그저 내버려 둔 머리까지 죄다 눈과 코가 없는 얼굴들이다. 쓸모도 없는데 말을 걸어 본다. 어디를 가고 있냐고 어제 봤던 당신 아니냐고.
걷는 사람들. 할 일 없는 사람들. 눅눅한 땀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바짝 몸으로 다가와 기운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 한 줌도 안 되는 이 도시에 빽빽하게 숨어든 사람들. 허공에 손을 뻗어 세차게 위아래, 좌우로 흔들며 연기처럼 흩어져라- 해보지만, 눈앞은 그대로다. 그들을 어딘가로 밀어내면 그들이 마지막에 갈 곳은 어디일까. 죽음일까? 그건 모르는 건데. 그럼 그저 살까? 그건 또 그림숙제처럼 벽에 붙으면 쉽게 떼어지지 않는 것인데. 싫다. 싫다고 입으로 뱉는다. 지겨워서 고개를 젓는다. 그들의 역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다. 몸에 쌓인 시간의 포장지를 과감하게 벗긴다. 속살은 고달픔과 패배의 겹겹. 절로 눈이 감긴다.
보상 같은 건 아무도 해주지 않는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결국 한 곳으로 향하는 길을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가. 혹은 그냥 되는대로 살았는가. 나의 길은 아닐까 두렵다. 마흔에는 죽어야지. 지금 이대로는 차라리 그편이 낫다고 다짐한다. 어떤 이는 그런 절망을 이 사회에 퍼뜨리지 말라고 하는데 이미 있는 것을 말한다고 그것이 새로운 사실이 되나. 차라리 발견이라고 말하던지 문제라고는 하지 말자. 만약 문제라고 한다면 이 사회는 대단한 거짓말쟁이다. 빠르게 걸어서 혼자가 아닌 둘처럼 보이게 그래서 마음에 깊이 차오른 목록들을 오늘도 무사히 끌어내릴 수 있음에 감사해 한다.
씻고 밥을 먹고 보지도 않는 TV 채널을 돌리고,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다 시계를 확인한다. 열두 시가 지나면 그때야 밀린 잠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눈을 감으면 고요해질 것 같지만 이상한 상상만 펼쳐진다. 어제가 시작되고 또 어제가 시작되고 또 어제가 반복 되는 무서운 상상. 이럴 때 사랑을 하는 건 가장 커다란 보호다. 사람과 마음이 함께 올 때 오늘은 오늘이라는 걸 유일하게 알게 해준다.
나는 또, 깊은 곳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