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na Aug 19. 2022

두 손을 맞잡고 걸었으면 좋겠어요

아침형 인간은 어디로 갔나. 그게 바로 난데. 고작 여섯 시에 눈을 뜨는 것도 힘겹다. 이젠 그렇다. 그래도 한여름에 달리기는 새벽에 해야 할 수 있다! 고 생각하며 서두른다. 달리기를 해야 엄마한테 갈 수 있다. 오늘은 엄마한테 가기로 했으니까. 마음은 바쁜데 뭐든 순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여기저기 바닥에 둔 책들도 그러모아 제자리에 둔다. 오늘 읽을 책을 신중히 고른 후에 창을 조금 열어 환기를 시키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애플워치의 비밀번호를 풀고 유튜브에 책 읽어주는 채널 중 하나로 들어간다. 달릴 때조차 책 읽기라니. 지금 내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은 사람도 사랑도 아닌 책이구나 싶다.   

   

엄마가 있는 병원은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지하철이 약속을 지켜주는데도(지하철이 내세우는 주장) 나는 굳이 이 더위에 몇 분은 더 걸어야 하는 버스정류장으로 가 좌석버스를 탄다. 출근 시간 버스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낭패다. 밖이 너무 더워 버스를 타면 시원한 바람 좀 쐬려나 했는데, 창가 쪽은 만석이고 복도 쪽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송풍구는 창가 쪽으로 고정되어 있고 내 쪽으로 돌릴 용기가 나진 않아 눈을 질끈 감고서 되뇐다. 나는 덥지 않아!- (거짓말!) 나는 덥지 않아!- (거짓말!) 눈도 감고 입도 다문 상태로 마스크까지. 그야말로 얼굴을 꽁꽁 묶었더니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 버스는 전용차로에서도 앞지르기하는 건지 좌우로 신나게 흔들리고 빠르기는 또 어찌나 빠른지, 멀미가 나서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다.          


한 달 가까이 금식이나 다름없는 병원 생활을 견디고 있는 엄마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고개를 들면 자꾸 멀미가 나서 자꾸 머리를 땅바닥으로 떨구다 보니 엄마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 되려 엄마가 나를 걱정한다. 기운이 없어 말로는 못하고 눈으로 마음으로 나를 안쓰럽게 여긴다. 마른 잎처럼 바스락거리는 몸으로 내 손을 잡고 나를 달랜다. 후우- 후우- 숨을 깊게 뱉고서 고개를 든다. 엄마가 웃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찡그린 채 나를 보고 있다. 커다란 혹은 십이지장에 있었는데 소장이 너무 부어서, 부은 게 언제 가라앉을지 아무도 몰라서 엄마는 하염없이 기다림을 참는 중이다. 링거가 줄지도 않고 엄마의 목덜미와 팔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엄마는 하얀 헝겊 같은 병원복에 매달려 있다. 배가 고픈데도 먹으면 구토를 할까 봐 먹는 게 무섭다는 엄마에게 먹으라고 해야 할까 먹지 말라고 해야 할까. 둘 중에 답이 있기는 할까. 나는 엄마의 피 주머니만 뚫어지게 본다.     

   

돌아가는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탄다. 출근 시간대가 지나서인지 한산하다. 그래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앉는다. 짐도 내려놓고 기분도 내려놓고 꾸깃꾸깃 구겨놓았던 것들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잠이 온다. 잠이 들면서도 자야지 생각한다. 잠들었다 깨면 내가 모르는 하루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자면서도 생각한다. 끼익거리는 지하철 바퀴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사람들의 분주한 발소리 같은  듣다가 살포시 잠이 든다. 그렇게 잠을 자는가 했는데, 주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며 벼락같은 말소리에 놀라 눈을 뜬다. 할아버지  분이 사이좋게 양옆으로 앉아 세상 모두가   있게 대화를 나눈다. 동창회가 있는데  아무개도  아무개도 오지 않는단다. 일어서서 옆으로 자리를 옮겨주면, 그래서  분이 다정스레 나란히 앉으면 시끄러운 동창회에서 빠져나올  있을까- 하는데 갑자기    말이 없다. 이제 끝났나? 하자마자 다시 시작이다. 날씨 이야기 건강 이야기 그리고 정치 이야기까지. 이어달리기처럼 끊어지지 않는 말소리를 꾸역꾸역 듣고 앉아 있는 못난 . 비켜주거나 피하면  것을 부러 심술을 부린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계단을 오르며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떠올리려 했지만, 오늘은 나의 더러움만이 선명하다. 엄마가 밥을 먹고 엄마가 길을 걷고 엄마가 통증 없이 잠을 자서 그래서 엄마가 스스로를 비참히 여기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말 대신 제발 아프지 좀 말라고- 더 많이 참아야 한다고- 했다. 내 입을 견딜 수 없었지만 나는 끝까지 말 같지도 않은 말들만 뱉어내고 돌아섰다. 골목길을 걷다 말고 우두커니 선다. 멀리 아무렇게 떠다니는 구름에 시선을 둔다. 거꾸로 걷는다. 지하철로 돌아가 두 분이 정답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웃으며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걷는다. 병실로 가서 엄마와 마주 보며 가만히 손잡는다. 아니다. 좀 더 걷고 걸어 먼 곳까지 가고 싶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곳까지, 나는 알지 못하는 그곳으로 가본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kh011229/22271243337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