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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Oct 04. 2022

해체하기

그러니까 글을 쓰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묻는다.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먹고 살기 위해서라기엔 나의 배를 불려주지 못하니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순 없고 안 쓰면 견딜 수 없는 순간도 드문 편이라 말하기 찝찝하다. 단순히 재밌다고 하는 건 답이 되지 못하고 뭐가 재밌는지, 왜 재밌는지, 어떻게 재밌는지, 되려 질문 세례받기에 딱 좋다. 재미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어쨌든 물음은 이미 생겨났고 나는 뭐라도 뱉어내면서 말끝을 흐리거나 자연스레 너도 한번 써보면 어떻겠니? 하고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며 입을 꾹 다문다. 상대는 결코 다음 질문을 바로 하지 못할 것이다.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머릿속도 돌리며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거야?     


아직도, 한 발짝 더를 나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어쩌면 후퇴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큰 병은 아닐 거라 생각했던 엄마에게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나는 갑자기 보호자가 되었다. 엄마의 몸이 회복되는 동안에도 엄마의 마음은 나을 줄 몰랐고 뒤죽박죽된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서 엄마에겐 뭐든 좋은 것만 주려 애를 썼다. 계획했던 일들이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사실은 엄마를 핑계 삼아 미루고 있는 거란 진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치켜들어 곳곳에 생채기가 났다. 매일 쓰는 하루 할 일 메모지에는 도무지 해결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것들만 나열되어 있어 다시 쓰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쓸 때마다 멍청해지는 기분이 들어 어느 순간 쓰기를 멈추었다. 반복되는 글자들이 메모지 구석에 쌓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마흔이 있었다. 마흔까지는 하고 싶은 걸 찾으러 다니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 지금 생각해보면 마흔이 뭐라고, 마흔은 마흔이고 꿈은 꿈이고 찾는 건 찾는 건데. 여하튼 약속도 약속이니까 우르르 쾅쾅거리면서도 먹고 사는 일에 게으름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책방은 늘 고맙고 애틋한 곳이지만 언제든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책방을 계속해 나간다면 오롯이 나만의 힘으로 꾸려가고 싶었고 (지금은 많은 이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역시나 마흔과 꿈이 나를 지금보다 멀리 나아가게 했으므로. 하지만 다짜고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각자의 사정과 욕심이 얽히고설킨 통보였으나 과정이 어떻든 간에 나에겐 몇 달 안에 책방을 떠나야 한다는 서글픈 현실만 남았다. 평소의 나라면 당장에라도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끝 모를 체념과 무력감 속에 나를 던져버리고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마음보다 몸이 훨씬 빨랐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그렇게 멍하니 창밖만 보는데 누군가 숨어 있는 내게 또 물었다. 나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입에서 술술술- 말이 나왔다. 분명 끝의 끝이라는 선 위에 서 있었는데 그 선을 저 문장 하나로 간단히 넘겨버리고 시작 앞에 다시 섰다. 하고 싶은 것들 가고 싶은 곳들이 문장으로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나는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애틋하게 써 내려 갔다. 같은 문장을 반복할 때도 예전처럼 내가 한심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찰진 밀가루 반죽이 먹기 좋게 조금씩 떼어지듯 내 몸 안에서 한 문장씩 떼어져 나오는 기분이다. 언제부터 내 안에 이런 많은 열망이 있었을까.    

  

앞의 물음으로 돌아가서 왜 나는 글을 쓰는가.      


나라는 뭉텅이를 잘게 쪼개서 조각내기 위해 글을 쓴다. 해체된 나는 모호하지도 의뭉스럽지도 않다. 반듯하고 뚜렷하다. 이렇게 깨끗해질 때 나는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같아 보여도 분명 다른 글이 쓰여지고 있다. 그리고 쓰인 질문과 답은 오로지 나만 쓸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다. 이렇게 다 쓰고 보니 사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란 이런 것이구나. (그러나 결코 설명할 순 없다 크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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