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간다.
늘 가던 곳으로 어디에나 있는 체인이고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도 있는 그곳으로. 늘 시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그러면서 다음번엔 조금 단 음료를 시켜볼까, 말차 라떼라거나 카페 라떼 정도라면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 덜하니 마셔볼 만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다음에도 아메리카노를 시킬 것이다. 첫 손님일 줄 알았는데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있다. 일곱 시에도 문을 여는 카페가 많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위아래 넉넉한 회색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여기 샌드위치는 선택지가 많을 경우, 절대 사 먹지 않겠지만 밥 한 끼 가격이 만 원대가 넘다 보니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익숙하지만 지겹지 않은 분위기를 포함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른 또 한 사람은 삼십 대로 보이는 여자다. 차려입은 모습이 어디 멋진 곳에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날 것 같지만 얼핏 들여다본 얼굴에 옅은 회색빛이 칠해져 있다. 커피는 앞에만 두고 통유리 너머를 하염없이 본다. 소파 좌석 끝과 끝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앉자마자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앉을 곳이 널렸는데 왜 하필 여길 앉으시나요? 하고 둘 중 한 명이 물을 것만 같다. 노트북까지 챙겨와 짐이 많지만, 그다음으로 편한 좌석, 콘센트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결 마음이 편하다. 책을 꺼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도 마음도 스스르 열린다.
여기저기에 글을 쓰고 있었지만, 끝과 시작이 없는 글들이었다. 어디에도 내보이지 못하고 노트북이나 줄이 있는 노트, 사각 휴지나 영수증 같은 곳에 숨긴 나의 단어와 문장과 기록들. 나는 결국 책방을 지켜내지 못했다. 애초에 지킨다고 지켜질 게 아니었지만,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 내게 곧장 와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았다. J의 책방 중 한 곳으로 육천 권이 넘는 책들을 이고 지며 모두 옮겼다. 책장이 부족해 꽂아야 할 책들을 바닥에 쌓아야 했다. 분류 같은 건 최대한 뒤로 미뤘고 공간을 꾸미거나 무언가 새롭게 장만하는 일 같은 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여긴 나만의 책방으로 가기 위한 임시 거처일 뿐이었으니까. 월요일과 화요일은 책방으로 가 종일 택배를 싸고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렸다.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 힘이 솟기도 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새로 구한 직장으로 가 일을 했다. 원해서 간 곳이었고 나름대로 적응도 했지만,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자주 눈을 감고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이어나가기 위해 용기 내 모임을 시작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시시하게 끝이 났다.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위로하며 마음에 얹힌 덩어리들을 애써 걷어냈다. 쉬는 날 없이 출퇴근만 하다 보니 옮겨갈 책방을 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J에게 월요일만 출근을 하겠다 말하고 화요일엔 책방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여름이 오고 있었고 마음에 든 가게의 높은 보증금과 책방을 옮겨간 다음의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두려움 앞에 몸도 마음도 무력해졌다.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나눠쓰는 공간이라도 정을 붙이고 바꿔봤더라면, 월세를 올려주겠다고 말이라도 해봤더라면, 애초에 다른 곳에서 책방을 했더라면, 아니 차라리 책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앞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옆으로 열심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에도 온몸이 따끔거렸다. 하지만 나는 잘 웃고 잘 먹고 사람들에게 당신은 괜찮을 거에요 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으며 지냈다. 이런 내가 나도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런 내가 나도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해되지 않음을 이해하면서 나는 잘, 지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며 공중으로 흩어지는 무수한 오늘을 눈뜬장님처럼 모른 체했지만, 오늘 중에 오늘, 늘 가던 카페에서 늘 마시던 커피를 마시며 비로소 더는 고장 나지 말자고 선언하듯 뱉는다. 이곳이 카페라서, 이 공간이 숨겨놓은 여분의 시간을 꺼내어 숨을 고르고 고개를 고쳐 들고, 어설픈 답이 아닌 제대로 된 질문을 마음속에 가득 담아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카페라서 나는 힘을 내본다.
카페가 뭐라고, 카페가 카페지.
내가 뭐라고, 나는 나지.
너무 잘 아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