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꿈은 가만히 있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로 존재하는 것. 부딪히는 두 마음을 보며 결국 나도 시대의 부속품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하는데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는 내내 바스락거리고 축축해지고 그렇게 아프고, 아팠지만 괜찮았고 괜찮았지만 아팠다. 아파서 힘을 내야 할 수 있는 일은, 모조리 버려버리고 괜찮아서 힘을 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능적으로 해치웠다. 그렇게 어느 날 속에 있다가 문득 나는 내가 보고 싶어 거리로 향한다. 가게 앞 유리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나를 보기 위해 멈춰 선 게 얼마 만인지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적이 없는 사람처럼 지금이 어색하고 생경하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뭘까. 어찌 된 걸까. 왜일까. 내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엔 무엇도 없다. 손의 감각으로 만져지는 나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나는 사라지고 말았나.
몸을 잃어버린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러나 나는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안으로 가버린다. 나조차 갑작스러운 행보였으나 몸이 사라지자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안은 목적이 없고 생산이 없어 어떤 걸 해도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는 행위는 놀이일 뿐이다. 나는 그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가면서 골목길을 비스듬히 바라본다. 앞서가는 이의 종종걸음을 눈으로 좇는다. 채소 트럭 안 쌓인 배추와 파프리카, 귤들을 훑는다.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나를 밀치고 트럭으로 향하며 소리친다. 나는 가고 있나. 보고 있나. 하고 있나. 아차차 나는 없다. 내가 없는 틈을 타 자꾸만 보인다. 구름이 하늘에서 구르고 햇살이 건물들에 내려앉고 바람이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여전히 없지만 그래서 보이고 틈은 완전히 메워져 오래된 풍경이 된다.
“사라질 것만 같아” 말을 뱉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그가 말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안다. 사라지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나를 감각하려 애쓰는 건 필요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쓰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쓰이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나에게 필요해지고 싶다. 삶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가만히 있는 건 헛된 망상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야 감각이 일어나고 감각하는 것이 내 삶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