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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r 28. 2022

좋은 생각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쓸고 닦을 줄 알아서 취미나 특기가 청소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의 능력치만 비교했을 때 그나마 잘하는 게 청소라서 요리나 살림엔 재주가 없어도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건 좋아한다고 종종 말한다. 솔직하게 잘한다기보다 좋아하는 영역에 가까운 청소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고 도대체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싶을 만큼 생소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버리기엔 아쉬워 쟁여두었던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게 해줘서 좋고 누구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여기로 저기로 나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어쨌든 더러운 것보다 깨끗한 , 보기에도 좋고 살기에도 좋으니 언젠가 청소가 취미와 특기가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본다. 


비질보다는 걸레질이 덜 어렵고 얼룩 같은 것도 잘 지워져 순서를 건너뛰고 닦기만 할 때가 많다. 애초에 걸레로 쓸 요량으로 돈 들여 사기도 하지만 대개 못 쓰게 된 수건을 반의반으로 잘라 쓴다. 뜨거운 물에 삶듯이 빨아서 방바닥 어느 가장자리를 시작으로 슥슥- 문지르면 생활의 때 같은 게 켜켜이 닦여져 나온다. 걸레가 아주 어두운 색이 아니라면 회색빛 먼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면 소화가 되는 것처럼 시원한 쾌감 같은 게 살포시 느껴지기도 한다.      

 


청소하고 싶은 날이 있다. 물론 발바닥에 먼지가 쓸리거나 머리카락이 작은 뭉치가 될 만큼 굴러다닐 경우는 당연하고 지난밤에 쓸고 닦고 푸닥거리를 했음에도 아주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의 물로 박박 씻어서 어디든 닦고 싶을 때가 있다. 일테면 엄마의 걱정과 기대로 가슴 한편에 멍이 들거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는 척 떠들어대는 걸 굳이 귀담아들었거나 할 일은 태산보다 높은데 갖가지 핑계를 대 하루를 흘려보낸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일 때나, 어쩌면 마음이 시켜서 타인을 아프게 하거나 지나가는 개가 나를 향해 짖는다는 이유로 매섭게 눈빛을 쏘거나, 배가 고파도 죽지 않을 걸 알면서 배고파 죽을 것 같다는 무신경한 말들을 내뱉거나. 이것저것 하루의 나를 그러모아 차곡차곡 쌓은 후에 미워하면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면, 나는 갑자기 청소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마음에 찌든 얼룩들을 닦고 싶은 거지만 정말 닦을 수만 있다면 닦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까 닦을 수 있는 건 뭐라도 닦자는 심경으로 방바닥거실바닥 신발장까지 닦고 먼지 낀 창틀도 닦고 뒤죽박죽 엉켜있는 책들을 하나씩 닦으며 가지런히 줄 세운다. 하지만 얼룩은 생각보다 짙고 깊어서 어느 하나 닦이지 않고 그냥  자리에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친절할 순 없을까.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하고 상처받았다고 상처로 갚아주지 않고 내가 아프면 남도 그만큼 아프다는 걸 마음으로 알고, 짖는 그 개가 배고픈 건 아닌지 살피고, 관심받기 위해 자극적인 말들을 내뱉기보다 무한대로 관심을 주며 따뜻해지는 그런 친절한 마음을 가질 순 없을까. 머리로는 백만 번이고 알고 또 아는데 살아낼 때는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잊어버리고 좋은 생각들을 펼치질 못한다. 좋은 생각. 나는 내가 좋은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잘못이나 후회, 반성을 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노력과 변화, 자기 확신으로 나아가는 생각들. 그런 좋은 생각이 내 온몸을 꽉 채우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사람들과 이 세상을 눈부시게 청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직 닳지도 않은 푸른색 걸레는 이민 보내고 보랏빛 제비꽃 닮은 거로 선수를 교체한다. 반짝반짝 윤을 낼지 알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으니 그걸로 됐다. 엄마식 표현으로 튀기듯이 빨고 팔이 끊어질 듯 비틀어 짠 후에 방바닥 끝에서부터 끝까지 걸레질을 시작한다. 알지도 못하는 음들을 이어 흥얼거려본다. 이러다 노래 한 곡도 뚝딱 만들겠다. 하하. 바닥의 중간쯤 오면 자연스레 흥얼거리던 소리는 줄고 마음의 일렁임도 멈추면서 고요한 상태가 된다. 걸레질을 멈추고 그 자리에 잠시 몸을 오므리고 앉아 나는 하루를 복기하듯 지나간 시간들을 불러본다. 오늘의 나는 괜찮았나? 조금 더 따뜻해졌나? 아무렴 어때, 잘했다고 믿는 거지.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겠지. 그렇게 나를 다독이고 응원하면서 어쩌면 취미, 어쩌면 특기가 될 청소모드로 다시 돌아간다. 오늘은 유난히 청소가 잘돼서 마음속도 반딱반딱 윤이 날 것만 같다. 이럴 날엔 정말이지 마음이 티끌 하나 없이 맑아진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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