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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Nov 17. 2023

쓰레기통을 비우며

쓰레기통 비우기. 금요일 퇴근 무렵의 루틴이다. 쓰레기통을 보면 이번 일주일의 흔적이 들어있다. 점심식사 영수증, 커피 홀더, 티백 등등. 특히 이번주는 마감주간이라 뭔가 더 많다. 쿠키, 초콜릿, 캐러멜 등 온갖 주전부리 포장지. 오늘 먹은 붕어빵 포장봉투까지. 뭔가 초조하니 이렇게 달달한 것들을 입에 넣으며 몸과 마음을 달래려 했나 보다.


글감을 직접 찾고 발로 뛰어서 모아야 하는 과정이 매달 반복된다. 어느덧 6개월이 넘었는데 매번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은 직장생활. 이게 나만의 일이겠냐마는. 또 한편으로는 다들 마찬가지인데 나만 투정 부리는 거 같아 싫기도 하다. 제일 쉬운 건 나를 탓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이면 뭔가 후련하다. 나의 생각에 딱 맞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찾고, 또 이전의 기억들을 더듬어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내면 그만큼 흥미롭다. 써야 하는 주제와 담아야 하는 정보가 낯설어서 그렇지. 글자를 다루고 문장을 만들어 글을 완성하는 작업만큼은... 참 좋아하는가 보다.


사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발행하는 것은 참 오랜만이지만, 서랍에는 글이 한창 쌓여있다. 한글 프로그램을 켜서 쓰기는 싫었기 때문에. 너무 업무를 하는 것 같아 싫었기 때문이다. 자동으로 계산되는 글자와 줄의 수로 보이는 분량의 압박. 그래서 이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와 원고를 쓰고, 그걸 복사에서 한글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내가 원하는 분량이 딱 맞게 나오면 안도의 한숨. 아니라면 또다시 초조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의 반복이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는 것이 부담이 되고 발목을 잡았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쭈욱 써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보면서 바로 잡아가는 것이 완성 속도와 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나의 평소 생활방식도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선 저지르는 것.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도 좋지만. 앞일은 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지금 일하는 것도 일종의 계획을 세우며 따라가지만, 결국 그날마다 바뀌는 일이 생기는 것이 부지기수다. 처음에는 매번 긴장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는지 그러려니 하고 있다. 뭔가 모순적인데. 아무튼.


그래도 나만의 표현 수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사진을 찍는 것 자체도 좋아하는 편이고. 나중에 기록으로 남겨서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진을 찍으며 담아내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것도 어느새 알게 되었다. 틈틈이 핸드폰 사진첩을 보며 힘을 얻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계속 글을 쓰는데, 개인적으로 장문의 글을 남기기에도 지쳤었다. 하지만 어느새 또 이렇게 (아직 퇴근 전인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또 이따금씩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문장과 단어를 익히기도 한다. 결국 나는 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보다. 나도 즐겁고,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생기고.


그러려면 이것조차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즐기면서 꾸준히. 어느 블로거는 내가 봤을 때 질서도 없고 오타 투성이지만, 오직 꾸준함으로 승부를 보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위한 기록과 남을 위한 인사이트를 쌓아나가고 있다. 나는 그런 목표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의 글쓰기가 내게도,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어준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있다.


...다음 주 쓰레기통을 비우면서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으려나.


오늘 먹은 붕어빵 한 마리. 포장봉투는 이번주 쓰레기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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