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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Mar 18. 2024

부기 맛은 어떻드노

3월의 어느 한 주. 출근으로 힘든 주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바로 금요일. 이 금요일은 좀 더 특별했다. 나와 생일이 이틀 차이 나는 한 동생, 그리고 다 같이 친한 친구까지 셋이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이날 퇴근하고서 지하철역까지 공원을 끼고 걸어가는데.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날씨도 햇볕도 딱이었다.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웬걸. 친구가 한발 먼저 와있었는데 짐이 양손 가득이었다. 케이크 상자부터 두 개. '1인 1 케이크인 거야?' 뒤이어 찾아온 동생도 짐이 한 꾸러미였다. 내 손에도 들린 작은 쇼핑백까지. 우리 셋은 어디 쇼핑이라도 다녀온듯한 모습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는 자연스럽게 다음 일정을 이야기했다. "사진부터 찍고 카페 갈까?" 어느새 세 명이 모일 때마다 정해진 루틴, 셀프사진 찍기. 나 또한 식당으로 이어진 길목에 셀프사진관들이 있는지 둘러보며 왔기에, 다음 장소는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대학가로 번화한 곳인 만큼 부스도 여러 개가 있는 사진관이었다. 소품은 충분했다. 그곳에 비치된 것 말고, 우리가 함께 가져온 것.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준비해 준 선물들 중 일부였다.


카페에서 보여줄 계획이었다던 꾸러미가 열렸다. 친구는 무언가를 꺼내 펼쳐 보였다.


'어, 근데 내 얼굴이 보이네?'


가수들 콘서트에서 보일 법한, 몸통만 한 현수막에 내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다른 현수막에는 동생의 얼굴도 큼지막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문구도 함께. 알고 보니 케이크도 각자 닮은 캐릭터로 사 왔단다. 그렇게 나는 '부기'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다.


부기는 부산시의 마스코트로 탄생한 갈매기 캐릭터다. 예전에 SNS에서 쇼츠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현수막도 그렇고 부기 케이크라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셀프사진관에서 부기를 들고 요리조리 왁자지껄 사진을 찍었다. 지금 생각하면 세 명이 참 부지런히 움직였다. 현수막과 케이크를 이렇게도 들어보고 저렇게도 들어보고. 케이크 옮겨주는 걸 돕다가 묻은 크림을 서로의 얼굴에 묻힐 뻔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알록달록 셀프사진의 칸을 채워갔다.


마지막으로 한 카페에 가서는, 옥상의 루프탑 공간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정말 봄이 가까이 왔는지, 저녁이지만 바깥에 있기도 괜찮은 날씨였다. 공간을 빌린 것 마냥 영상까지 열심히 찍었다. 카페에서 스카치테이프를 빌려 벽에 현수막들을 붙이고, 생일자들끼리 순서를 교대하며 또 한 번 축하파티를 벌였다. 살짝 춥게 느껴져서 실내로 들어가자는 의견이 나올 때까지.


이날 찍은 사진들에는 부기가 없는 사진이 거의 없다. 캐릭터도 귀여웠지만, 이 모든 걸 바리바리 준비해 준 친구의 마음이 더 따뜻하고 고마웠다.


그다음 날, 내 생일 당일 오후.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생일 잘 보내고 있느냐고. 그리고 부기 케이크 맛은 어떻냐고. '부기 맛은 어떻드노'


잊지 못할 생일 파티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문장. 이 여운은 꽤 오래갈 것 같다. 계속 생일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지면 좋겠다. 부기와 함께 한, 올해 생일 같은 하루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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