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사랑의 언어' 테스트가 있다. 말 그대로 내가 가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내가 사랑받는다고 인정하는 상대의 표현이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의 다섯 가지가 있는데. 나는 테스트를 할 때마다 서로 그 순위만 달라질 뿐. 가장 상위의 언어는 늘 같다. 바로 함께하는 시간과 인정하는 말이다.
나이를 먹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그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다. 예를 들어 청첩장을 전해주는 방식, 그리고 초대받은 결혼식을 가는 것. 어느 한 친구는 애매한 친분의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 초청한다면, 앞으로의 관계를 잘 헤아려본다고 했다. 이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친밀하게 지낼 사이라면 가는데, 아니라면 축의금만 보내고 만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직접 가는 것 또한 나의 시간을 쓰는 것이라면서. 나의 시간은 소중하다며 잘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일단 청첩장을 받으면, 그 마음이 고마워서 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관계들을 향해 나는 어떻게 마음을 쓰고, 사랑하고, 또 표현하고 있을까.
나는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상대를 향한 애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려고 한다. 나에게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해주는 그 신뢰가 너무나 고맙고, 그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의 필요가 무엇인지 찾고, 그를 도와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선물'이라는 언어를 자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주고 싶은 선물, 나의 애정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도 살핀다. 성급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나의 노력으로 상대의 애정을 얻으려고 애쓰곤 했다.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힘도 예전보다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나를 진정 아껴주는 사람들도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내면보다 외면, 즉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편이다 보니. 이따금씩 솔루션으로 듣는 말들이 있다. 상대를 돌보는 만큼 나 자신을 돌보라는 것. 시간이 갈수록 이 말에 더욱 공감이 간다. 나를 잘 아끼며 사랑하고, 나를 위한 지금의 시간을 감사히 잘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