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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Feb 21. 2023

우리 집에서만 낼 수 있는 맛

톤지루

날씨가 갑자기 또 추워졌다. '다시 또 겨울이 찾아온 건가'라며 혀를 내두른다. (사실 시기상, 아직 겨울인 게 맞는데도.) 바깥으로 나서며 핸드폰을 보려는데, 갑작스러운 추위에 손이 덜덜 떨렸다.


약 한 달 전 어느 날,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었다. 정식 메뉴를 시키면 보통 밥과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가 같이 나오는데. 이 가게에서는 톤지루(豚汁)가 함께 나왔다. 톤지루는 단어 그대로,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인 '일본식 돼지고기 된장국'이다. 갑자기 그날처럼 추워진 날씨를 마주하니, 문득 톤지루가 그리워졌다.


먼저 일본식 된장인 '미소'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평범한 재료도 아닌 데다, 주변에는 너무 많은 양이나 비싼 가격의 제품들밖에 없어 난감했다. 마트 안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결국 빈손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래, 일단 집에 있는 재료로 어떻게든 해보자.'


우선 양파와 당근을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너무 두껍지 않게 나박 썰기 한다. 배추, 버섯 등 다른 재료가 있으면 더 활용해도 좋다. 다음으로 냄비에 대패삼겹살을 볶아준다. 이때 기름기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도록, 키친타월 등으로 적당히 제거해 가며 볶아준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물을 넣고 끓였을 때 기름기가 많이 떠올라버린다.


대패삼겹살이 어느 정도 익었다면 당근부터 넣고 볶아준다. 비교적 단단한 채소부터 먼저 익히기 위해서다. 이어서 양파도 마저 넣고 볶아준다. 어느 정도 노릇하게 익었다면, 이제 냄비에 물을 적당량 부어준다. (나는 500ml 정도였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미소 대신 집에 있는 재래식 된장 등장. 간을 보면서 조금씩 국물에 풀어주었다. 그동안 먹어봤던 미소시루의 맛과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얼추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된장까지 풀어주고서 약 5분 정도 더 끓여주면 완성이다. 이렇게 '우리 집에서만 낼 수 있는 맛'을 가진 톤지루가 탄생했다.



밥을 푸고 김치 등 밑반찬도 꺼냈다. 왠지 톤지루가 중심이고, 밥이 반찬이 되어버린 듯한 한상차림이었다. 국물만도 떠먹어보고, 그릇째 입에 가져가 건더기를 한꺼번에 후루룩 먹어보기도 했다. 구수한 맛이 따뜻하게 퍼져갔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른 톤지루 이미지들을 찾아보니, 국물보다 채소들이 훨씬 더 많은 톤지루들이 보였다. 마치 국물이 야채를 자박하게 적신 느낌. 다음에 만들 때는 채소의 양을 더 늘려봐야겠다.


완벽하게 따라 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방법들로 흉내라도 내봐야지. 그래야 어떤 결과라도 나올 테니.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그저 멈추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흉내라도 내면서 따라가 보자.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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