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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Nov 01. 2020

내가 사랑하는 계절, 10월의 마지막 날에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어느새 시간이 이만큼 흘러 흘러 작년에 눈물로 보냈던 동생이 "미복귀 휴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전역, 아니 곧 전역을 앞둔 채 집에서 생활한지도 3주가량 되었다.


그동안 나는 여전히 종종 무기력하며 우울해했고 우는 소리가 새 나갈까 이불로 입을 막고 울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산책하면서 귓가에 흘려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래, 나도 이 노래 가사처럼 까짓거 별 거 아니야! 잘 살아보는 거야! 외치면서 씩씩하게 걷기를 얼마 안 되어 랜덤으로 흘러나오는 이별 노래를 들으며 펑펑 울다 인적 드문 길가로 향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요즘 날 울리는 소라언니 가삿말)


그와의 관계, 아니 그보다도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는 예상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완전히 정리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서서히 나는 내 나름의 방식대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고 있다. 나와 같이 피눈물 나게 복수를 해주고 싶고, 평생 불행하게 살길 바랐던 마음은 다행히 전보다 줄었다. 누군가를 죽을 만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


억울함.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으며, 왜 아무 죄 없는 나는 한순간 파혼의 주인공으로 주변 사람들의 동정과 위로를 받게 된 것일까. 이 생각은 사실 하루에도 수 백번씩 든다. 상대방은 이제 서서히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 없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동안 귀했던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 같은데 나만 아직도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 같고, 아직도 꿈을 는 것 같고, 추억과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아직도 밤마다 숨죽여 눈물을 삼켜야 하는 건지 종종 억울함이 밀려오긴 한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만나서 당장 무슨 얘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 지 걱정되고, 그래서 여러 핑계를 대며 미루기를 반복하는 나와 달리 그는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친구들과 술약속을 잡고, 내겐 낯선 게임으로 주말을 보내고, 스스로가 벅차다고 말할 만큼의 스케쥴을 소화하며 바삐 살아가는 듯 했다. 그런 그를 욕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언제까지 슬픔과 죄책감에 갖혀 살기를 바란 것은 절대 아니니까. 다만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슬픔을 지워가는 방법과 회복되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고 애써 담담히 넘어갈 뿐이다. 나와 그가 이렇게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5년을 만나고 헤어진 이 시점에서야 깨닫는게 매번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고 이 창을 띄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의 밤을 보냈는지, 단지 이 공간에 다시 왔다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평생 가도 모를 것이다. 아니, 지금의 내가 어떤 심정이고, 그때의 내가 어떤 심정이었지는 평생 가도 모른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억울함과 동시에 깨닫는 것은 내가 참 미련할 정도로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가만 보면 작은 키에, 한 번 보고도 잊혀질 만큼 지극히 평범한 외모, 촌스러운 패션센스에 가진 거라곤 젊음 그리고 무식할만큼 나에게 구애해오던 뚝심 뿐이었던 그는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마음을 주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솔직함과 다정함이었다. 남들은 감추고 싶을 법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오히려 당당히 밝히면서도 그는 씩씩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유년 시절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나에게, 어쩌면 본인도 채 받아보지 못했을 만큼의 마음을 내주었다.  부모의 열렬한 관심과 적극적인 서포트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누군가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이라 말하는 것들이 그에게는 오히려 삶의 동기와 에너지가 된 듯했다. 그런 그와는 정반대로 온 가족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나는 그가 짠하면서도 부러웠다. 그리고 모두의 부러움을 사며 입학했던 특목고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열등감으로부터 오랜 시간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내가 어느새 그런 그에게 의지하고, 매순간 나 자신을 깎아내리며 깊이 패인 상처들을 그의 무한한(줄만 알았던) 사랑으로 서서히 회복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나의 자존감과 나의 열등감은 그 누구의 힘으로 채워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옆에 있는 그에게 늘 사랑을 갈구하기 급급했고, 상대방이 늘 처음처럼 변함없이 같은 시간을 들여 나를 바라봐주고, 같은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걸 몰랐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 그렇듯이, 나는 그가 평생 나만 바라봐 줄 거라는, 아주 바보같이 순수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를 빼고 지난 4년의 시간동안 매일 밤마다 자기 전 카톡에 남겼던 장문의 메시지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써주던 손편지 속 절절한 고백을 너무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상처가 더욱 깊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진실을 감추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그에게 솔직함을 기대할 수 없었고, 진실하지 않은 다정함은 나를 더 외롭고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평생을 믿고 의지할 만큼 든든한 사람이라 믿었던 상대가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보며 불행해 했고, 자신없어 했으며, 뭐하나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휩싸이더니 심지어 그런 감정을 이용해 다른 사람까지 자신의 삶으로 끌어드릴 만큼 사리분별 못하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에게 충격이자 큰 아픔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사람의 상처와 두려움까지 떠안고 갈만큼 강하지 않다. 오히려 나란 존재를 그의 일상에서 도려내고 나니 내 앞에 설 때면 한 없이 나약해지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이 아닌, 그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앞으로의 계획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예전 그의 모습을 되찾은 듯 보였다.


나의 의지로 정해진 이별이 아니어서일까? 분명 이별을 고한 건 나인데, 혼자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건 그가 아닌 나였다.


그저 나는 묵묵히, 씩씩하게 내 상황을 헤쳐나가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는지, 혹은 언제, 어떻게 그 긴 터널을 뚫고 다시 빛으로 나올지는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자기검열 따윈 멈추기로 했다.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하는 쓸데없는 이타심, 자애심 비슷한 것들로 그를 어둠에서 구해내기 위해 내 시간과 감정을 허비하지 않기로 했다. 또다시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며 바보같이 나를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계절, 1년 전 그의 프러포즈를 받고 눈물을 쏟았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꼭 1년 뒤 10월로 예식일을 정하고 막 결혼 준비를 시작했던 이 계절 그 어느날, 이제는 나에게 가장 아픈 계절이 되어버린 이 가을을 잘 보내주고 싶다.

눈물나게 예쁜, 그래서 자꾸만 슬퍼지는 요즘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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