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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     

아이를 키우다가 소소하게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 아이를 만나 품에 안았을 때, 뒤집기를 하고 기어다닐 때, 돌상을 잡고 벌떡 일어났을 때, 어린이집에서 배운 내용을 집에 와서 쫑알쫑알 이야기했을 때, 처음으로 아이가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내 손에 건네주었을 때 등 아이와 함께 한 '처음'의 순간들은 정말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그러한 순간들 결이 다르지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이 있었. 바로 혼자인 순간.




  

#1. 커피 한 잔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이를 맡아 주실 수 있는 분계셔서 오랜만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원래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온 덕분에 제법 여유가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길은 대략 걸어서 17분 정도 걸린다. 평소라면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겠지만, 그날 그곳에 가지 않고 출근길의 중간쯤에 있는 P 카페에 들렀다.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원두가 있고 특히 라테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곳이라 망설임 없이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픽업 테이블에서 바리스타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춰 섰다.  


‘아, 나 오늘 일찍 나왔지.’      


발길을 돌려 커피숍에서 밖이 보이는 통창 쪽에 자리를 잡았다. 창 밖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출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침 일찍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구나. 참 좋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여유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냥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나 왜 이러지?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간 그 시간에 카페에 앉아 여유있는 티타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늘 회사 근처에 와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고 나만의 시간을 보낸 후 차분히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했었는데, 아이가 생긴 후에는 아침마다 늘 정신이 없었다.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밥을 먹인 후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면 출근 시간이 빠듯해져서 하이힐을 신고 달리기를 했다. 물론 그 하이힐은 곧 운동화로 바뀌었지만...     


‘고생했구나, 고생했어. 이렇게 잠시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눈물이 흐를 만큼 힘들었구나.’


나 스스로 나를 다독여 준 시간이었다.


갑자기 난 홍수에 눈두덩이가 슬슬 부어오르는 것을 느끼자, 눈물을 멈추고 흐르던 눈물을 냅킨으로 닦았다. 그리고 마시던 잔을 들고 다시 회사를 향해 씩씩하게 걸었다. 찬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2. 안마 의자      



친정집 작은 방에는 안마의자가 있다. 지금도 난 친정집에 가면 깨어 있는 시간 중 3분의 1은 안마의자에 앉아있다가 온다. 자다가도 아파서 스스로 아픈 곳을 주무르다가 지쳐 결국 안마의자로 간다. 지병으로 평상시에도 워낙 온몸에 근육통이 있고 몸살이 난 듯 아프기도 해서 조금이라도 통증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이다. 게다가 그 안마의자는 작은 방 안에 있기 때문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래서 친정집에만 가면 작은 방의 안마의자에 나의 몸을 자주 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와 똑같이 안마의자에 앉아있는데 너무 편안했다. 그 편안함은 평소와는 약간 달랐는데 뭔가 매우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되면서 행복한 느낌이었다.      


‘어? 왜 느닷없이 행복하지?’     


그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 아빠가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고 있어서 아이가 연신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서도 함께 즐겁게 웃으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런 분위기는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행복한 거실 풍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행복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작은 방에 혼자 있는 듯 했지만, 가족들의 유쾌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나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행복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너무 소소한 것으로부터 갑자기 찾아온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짬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바쁜 신랑 덕에 제대로 엄마 껌딱지인 아들은 엄마가 회사에 갔다가 집에 오면 더더욱 달라붙는다. 회사에서 오자마자 식사를 차리고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뒤로 한 채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놀아준 후에는 씻기고 마지막으로 잠자기 전에 동화책 서너 권을 읽어 주면 하루가 끝난다. 아이를 재운 후 내 시간을 갖겠다고 한 나는 이미 아이와 함께 곯아떨어져 있다. 애엄마는 늘 지쳐있고 이런 삶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몰랐다. 소소한 것으로부터 행복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을 한동안 전혀 깨닫지 못했다. 힘들고 지칠 때에 스스로를 다독거릴 수 있는 30분의 시간이나 아플 때에 가족에게 귀 기울이는 짧은 순간이 때론 휴식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지금은 안다. 이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 바쁘게 살아가다가도 단지 조금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의 순간이 언제 찾아오는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이 찾아온다. 오늘은 또 어떤 행복이 찾아올까? 오늘도 바쁜 일상 속에서 짬짬이 작은 행복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겠다.


여러분들도 오늘 여러분들의 행복 공장을 짬짬이 가동시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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