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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상 엿보기

야근이냐, 퇴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초3 아들에게 물었다.


“네가 대학생이거나 직업을 찾고 있어. 그래서 출판사 편집자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그럼 너는 뭐가 궁금해?”

“출판사 편집자는 뭐 하는지 그런 게 궁금해. 회사가면 뭐 하는지.”

“그래? 다른 것은 없어?”

“없어. 그런데 이건 초등학생 입장이니까 다른 사람은 다를지도 모르지.”


음...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 그럼 오늘 하루를 슬슬 풀어보겠다.



요즘은 마감 시즌이다. 하루 8시간 근무로는 모자라 가끔 야근과 주말 특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집에서 7시에 나왔다. 출근 시간은 9시이지만, 마감 시즌에는 늘 시간이 부족하므로 비교적 늦지 않은 시간에 퇴근을 하기 위해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한다.  


8:00 스위치 ON!

일단 회사에 도착하면,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사러 나갔다 온다. 커피 몇 모금으로 몸에 카페인이 충전이 되면 슬슬 일 뇌가 가동된다. 회사 메신저의 쪽지와 메일을 확인한다. 메일은 제목 위주로 훑어보다가 중요한 것을 골라 본다. 출간 제안 메일은 나중에 보기 위해 중요 메일함으로 옮겨 둔다. 메신저의 쪽지는 아주 꼼꼼히 본다. 업무와 직결된 주요 사항들이기 때문에 대충 훑어보고 업무를 하다가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일과 쪽지를 보면서 오늘 해야 할 일과 주요 내용을 수첩에 적고 어제 처리하던 일과 오늘 새로 생긴 일들의 우선순위를 매긴다.


9:00 표지 디자인 시안 검토 및 피드백

사람들이 다 출근했다. 다들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한다. 디자이너가 와서 표지 시안을 넘긴다. 표지 시안은 3번 정도 수정한 후 바로 오케이다. 오케이가 일주일 정도 남았기 때문에 표지 디자인 피드백을 먼저 한다. 전체적인 느낌이 책의 성격과 맞는지, 제목 서체는 예상한 대로 나왔는지, 사진이나 이미지가 제목에 맞게 들어가고 제목과 이미지의 비율이 조화로운지 등을 살펴보고 디자이너에게 수정 피드백을 한다.

디자인 피드백을 할 때 편집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보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의견을 함께 공유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0:00 책 교정, 교열

드디어 어제 보던 교정지를 손에 잡을 때이다. 책상 한 구석에 밀어 두었던 교정지를 펼친다. 정직하게도 어제 일한 만큼 빨간 펜이 그어져 있다. 이제 일의 거의 막바지라 교정 내용이 많지는 않다. 최대한 집중하며 교정을 본다. 글이 부드럽게 읽히는지,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띄어쓰기는 잘 되어 있는지, 이미지는 맞게 들어가고 적절한 위치에 있는지 등. 교정이 끝나면, 조판소로 교정지를 보내고 업무 진행표에 책의 교정 진행 상태를 표시한다. 각 파트별로 교정지가 조판소에서 오고 가는 것과 초교, 재교, 삼교 작업 완료 여부를 기록한다. 머리를 믿지 말고 꼭 진행표를 작성하는 것이 중요!


12:00 직장인들의 낙, 점심

대여섯 명이 함께 점심을 먹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는 푸드코트로 간다. 각자 취향에 맞는 식사를 한 후에는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이 시간의 커피는 오후 식곤증을 삭히는데 도움이 된다.


1:00 교정, 교열 어게인

다시 쌓여 있는 교정지 더미 중 하나를 집어 든다. 다시 교정의 세계로 빠져든다. 편집자는 책 한 권을 만들 때 적게는 5번에서 많게는 10번 정도 그 책을 읽는다. 특히 내용이 난해한 마의 삼각지대에 돌입하면 그 원고는 한 30번 정도 읽을 각오를 해야 한다.


3:30 온라인 서점 서평 쓰기

마케팅 부서로부터 쪽지가 와 있다. 온라인 서점 이벤트에 들어가는 책 소개를 빨리 써달라고 한다. 온라인 책 소개에는 책 제목, 출판사, 저자, ISBN, 쪽수, 책 소개, 목차, 출판사의 서평, 미리보기 페이지 등이 들어간다. 이 중 책 소개와 출판사의 서평을 쓰는 것은 약간 까다롭다. 책 소개를 쓸 때는 독자가 책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과 줄거리를 대여섯 줄 정도 쓴다. 출판사의 서평에는 책의 기획 의도나 첫 원고를 봤을 때의 느낌을 서술하고 때때로 서평단의 서평을 이용하기도 한다.


편집자도 사람인지라 더 애착이 가는 책이 있는데, 그런 책의 서평을 쓸 때는 10분만에 대충 써도 매력적인 서평이 나온다. 하지만, 뭔가 내 취향이 아닌 책들의 서평은 글이 나오지 않아서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이럴 땐 잠시 커피나 초콜릿을 먹으며 바람을 쐬고 생각을 정리한 후 아예 다시 쓰는 것이 낫다. 마케팅 부서에서 급하다는 독촉이 오면 마감 시너지를 끌어올려 글을 후다닥 정리해서 보낸다.  

수많은 책들 중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책을 만들게 되었을 때 편집자의 역량은 배가 된다


5:00 책 출고 의뢰하기

문자가 왔다. 한 저자로부터 본인의 책이 인쇄되어 나왔는지 여부와 자신이 책을 언제 받아볼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다. 인쇄 팀에 전화를 걸어 인쇄와 제본 여부를 확인하고 책이 나왔으면 관리 팀에 출고 의뢰서를 보낸다. 보통 저자에게는 책을 세 권 정도 보낸다.


5:30 야근이냐, 퇴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시간이 되면 늘 허기가 진다. 책상 한 켠에 둔 쿠키를 몇 개 먹는다. 오늘 업무 진행도를 체크한다. 한 시간 정도는 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일하기 싫다. 오늘 칼퇴근을 하면 내일 일정이 소화가 되는지를 체크를 한다. 내일 일정이 쉽지 않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영 아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야근을 해도 효율이 좋지 않다. 과감히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짧은 휴식을 취한 후 일찍 자기로 결정했다.

54분... 57분... 59분... 땡!


6:00 스위치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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