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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Dec 06.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7월 2일 심장수술 후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의 수술이 끝나고 어느덧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의 심장은 점점 나아지고 잘 뛰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심장은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술이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워낙 큰 수술이어서 그런지 아버지도 엄청 힘들어했던 것 같다.

나는 겪어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남긴 글을 본 후에야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당시 수술 후의 기억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


'긴 잠에서 깨어 의식이 돌아왔다. 아프다. 수술 부위가... 가슴 한복판 뼈를 잘라냈으니 아픈 건 당연하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이제는 아프고 아프지 않고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 제일 불편하고 힘들다. 그저 내 눈에는 항상 두 장면만이 보일 뿐이다. 간호사 데스크 그리고 중환자실 천정. 고정된 몸과 고정된 시선이 나의 정신을 망쳐놓고 있는 것 같다. 소리를 지르고 아성을 치고 싶다. 몸에 부착된 모든 연결장비와 호수를 다 뜯어내고 싶다. 매쓰가 내 손에 쥐어진다면 나 자신을 난자하고 싶다. 이래서 사람들이 극단적이 선택을 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저 글을 보면서 혼자 몰래 숨어 울었다.

아버지의 감정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모른다.

적어도 자신이 직접 겪어 보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 상황과 감정을 알 수 없다.

짐작만 할 뿐, 그 사람이 겪은 고통을 타인은 모른다.

나도 몰랐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멍청한 나는 아버지에게 이런 말만 되풀이했던 것 같다.


"좀만 버텨봐 곧 괜찮을 거야."


"아빠만 아픈 거 아니야 버텨."


정말 무책임한 말만 아버지께 내뱉고 있던 나였다.

당사자의 고통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런 아버지와의 일을 겪으면서 난 노력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말을 조심하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공감만 할 뿐 나아질 거라는 희망적인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희망적인 말이 나중에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공감을 못한다고 느꼈다.

여하튼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과 감정은 오락가락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남긴 글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몸부림 치면 누워 있던 나는 애써 큰소리로 간호사를 불렀다. 나의 증상을 알아챘는지 조금 나이 드신 간호사분이 찾아와 두 손을 붙잡아주었다. 반전이 일어났다. 금세 스르르 잠에 취했다. 그렇게 난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힘들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 글을 보면서 느낀 건 어떤 위로의 말보다 단 하나의 행동이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마음의 온기가 아버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처럼 말이다.

번지르한 말보다 어떠한 행동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아버지한테 나아진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로만 떠들어 댔다.

그러면서 행동으로는 한 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온전히 간병인과 같이 살던 아주머니에게 아버지를 맡겨 버렸으니 말이다.

정말 나는 나쁘고 미련한 놈이었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아버지는 3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드디어 일반 병실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3주라는 사간이 흘렀다.

그리고 난 그제야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아버지의 병원을 가기로 했다.

병원을 가면서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빠 애들 데리고 가고 있어. 몸은 쫌 어때?"


"어 괜찮어 좋아지고 있는 거 같어..."


"다행이네 그럼... 암튼 지금 갈게."


"어 그 올 때 팥빙수 좀 사 와... 팥빙수가 먹고 싶네..."


"갑자기 왜 빙수? 빙수 먹어도 된데?"


"어 의사가 먹고 싶은 거 먹으랴..."


"아 그래? 많이 좋아졌나 보네 암튼 갈게..."


참 팥빙수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였다.

지금도 팥빙수를 보면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병원에서 가까운 카페에서 팥빙수를 구입했다.

조금은 더 좋은 팥빙수를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카페에서 비싼 빙수를 사갔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 후 아버지가 요청한 팥빙수와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만났다.

그 당시 본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좋아 보였다.

혈색도 좋아 보이고 걸음걸이에도 조금 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혼자서 걸어 나와 우리를 맞이해 줬으니 말이다.

수아버지를 본 나의 아들 녀석이 말했다.


"하부지~ 아파? 꼬꼬 하부지 아파?"


그러면서 병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녀석.

난 뛰지 말라고 소리쳤고 그런 나를 말리는 아버지였다.

자신의 손자가 뛰어노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렇게 한 동안 손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였다.

그리도 대뜸 아버지께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는 나의 아들 녀석이다.


"하부지? 아파? 나야지?"

 

그런 녀석의 말에 활짝 웃어 보이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손주와의 잠깐을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가..."


"어 가야지."


"팥빙수 녹겄다 어여 가..."


"알겠어 갈 거야. 뭔 일 있으면 또 전화해."


"알겠어. 빨리 가."


그렇게 아버지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실제로 아버지의 경과는 좋아지고 있었다.

중환자실을 나온 후 점점 회복을 하던 아버지였다.

실제로 목소리도 좋아지고 컨디션도 무척이나 좋아지고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심장은 나아져 가고 있었다.

흉부외과 교수님께서도 잘 회복되어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조금씩 나아져 가는 아버지를 보며 나도 참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곧 끝이 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발목을 폐렴이라는 녀석이 붙잡고 늘어질 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아버지의 몸은 다시 다른 곳에서 삐걱거리기 시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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