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필 Jan 12. 2024

아빠, 잘 가요.

2023년 8월 17일 강했던 아버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2023년 8월 16일 아버지를 간호해 주시던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병원 한번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왜요? 무슨 일인데요?"


"일단 내일 좀 와주면 안 될까?"


"아 네... 알겠습니다 내일 병원으로 갈게요..."


힘들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여러 생각이 오갔다.

아주머니도 이제는 지치셨구나...

아픈 사람을 오랜 시간 동안 간호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머니나 간병인들 모두 참 대단하신 것 같다.

묵묵히 아버지의 옆을 지켜 주셨으니 말이다.

아주머니도 사람인데 몸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많이 지치셨을 것이다.

그러니 힘들다는 말을 하셨던 건 당연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더 물어보면 아주머니께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아 꾹 참았다.


다음날 난 부랴부랴 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이 아주머니를 힘들게 한 걸까?'


'아버지가 많이 안 좋아지신 걸까?'


'아니면 오랜 간병생활이 힘이 드시는 걸까?'


이런 생각도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더 이상 간병을 못하겠다고 하시면 어쩌지? 나도 동생도 상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간병인을 계속 써야 하는 걸까? 간병인을 쓰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못 된 생각이었다.

정말 불효자가 따로 없었다.

아버지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난 그 상황에서 간병인의 비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걱정도 늘어갔지만... 돈에 대한 걱정이 점점 날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돈 앞에 장사 없다 더니...

내가 딱 그 모양새였다.

지금 생각해도 난 참 못난 놈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입원에 있는 병실에 올라갔다.

아버지를 만나기 전 아주머니께 전화를 해 병동 휴게실에서 따로 만났다.

상황을 파악하고 아버지를 만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아주머니께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가 지금 치료를 거부하고 있어..."


치료거부... 듣고 싶지 않았고 들을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입에서 저 단어가 나오고야 말았다.

처음 저 단어를 들었을 때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치료거부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 입장에서야 환자의 심정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치료 거부를 한다는 게 이해도 안 가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또 달랐다.

얼마나 힘이 들면 치료 거부라는 선택을 하겠는가...

아버지도 당시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아버지가요? 왜요?"


"계속 병원에서 눕혀만 놓고 아무것도 안 해준다 이거야..."


"병원에서 거기에 맞게 해주는 거겠죠... 아버지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우선 지켜보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설명해도 안 들어... 그리고 나도 이제 병원을 못 믿겠어... 암 같으면 조직 검사를 해보자니까...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조직검사를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아버지도 치료를 계속 거부하는 거고..."


"아... 네... 암튼 제가 한번 가볼게요..."


병원을 못 믿겠다는 아주머니의 말.

아주머니도 점점 무너져 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아버지의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에 난 너무 놀랐다.

순간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내가 생각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강했던 강력계 형사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침대에서 앙상하게 말라가는 아버지의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챙기고 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아빠 무슨 일이야? 왜 약을 안 먹어?"


나의 말에 아버지는 울부짖으며 대답했다.


"사람을 방치하잖어... 방치...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여..."


아버지는 거의 울면서 말했다.

지금도 그 당시 아버지를 생각하면 먹먹하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딱 한번 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흘린 단 한 방울의 눈물.

그게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그토록 아들 앞에서 강하게 굴었던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니... 뭐라도 해줘야 할꺼아녀... 그냥 이렇게 사람을 놓고 방치하고... 해도 너무한 거 아녀..."


저 말도 아버지는 힘없는 숨으로 겨우겨우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병이라는 녀석 앞에서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고 가장 강하다고 했던 아버지가 그렇게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조금씩 무너져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를 진료하는 주치의 선생님이 찾아왔다.


"아드님 되시죠? 잠시 볼까요?"


"네..."


아버지의 침대를 떠나 병원 복도로 선생님과 나는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아요..."


"네 그렇게 보입니다."


"음... 우선 저희가 CT상으로 봤을 때는 폐암이 아니에요... 폐암은 덩어리로 보여야 하는데 지금 아버지의 폐사진을 보면 작은 점들이 많이 보여요... 이 모양으로 봤을 때는 폐렴이 맞거든요..."


"네... 근데 왜?"


"그래서 폐렴에 준 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이 항생제를 썼을 때 잠깐 좋아지셨다가 다시 계속 나빠지고 있어요..."


"..."


"그래서 결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 들거든요..."


"네..."


"근데 이 결핵을 또 진단을 하려면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 사실 조직 검사를 하시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어서... 참... 상황이 좋지 않아요..."


"네... 폐암은 아닌 거예요?"


"폐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근데 어쨌든 이 결핵을 진단하기 위해서도 조직 검사는 해야 하는 게 맞아요... 근데 아버지 컨디션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생각했다.

컨디션이 나쁘다고 해서 조직 검사를 늦춰야 하는 걸까?

하지만 컨디션이 하루아침에 막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검사를 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본인이 무엇이라도 시도해 보길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날 무섭게 만들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내가 주치의 선생님께 말했다.


"해... 해주세요... 아버지가 원하시는 거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아버지만 점점 힘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리고 조직 검사를 해야 결핵이던 폐암이던 진단이 가능한 거 아닙니까?"


"네... 맞아요... 그럼 우선 교수님과 이야기하고 조직 검사를 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네..."


그렇게 주치의 선생님과의 대화가 끝났다.

결국 힘든 검사가 될 것이고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 뿐이었다.

아직도 아버지의 폐에는 어떠한 진단도 내려져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도 이제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물끄러미 아버지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한마디를 했다.


"아빠..."


"아빠... 내가 아빠 이런 모습 보자고 신장 이식해서 아빠를 살린 게 아니잖아..."


순간 울부짖으며 난리를 치던 아버지가 멈췄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고요한 공기가 아버지를 감쌌다.


"내 신장 하나 뺐어 갔으면 이렇게 치료 거부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치료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신장을 뺏어 갔다는 표현에 아버지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라도 치료 거부를 막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가 된다.

저런 말을 왜 했을까?

그저 묵묵히 손을 잡아줬어도 됐을 텐데...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저렇게 말을 해야 아버지가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진 말로 라도 아버지의 치료 거부를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정말 나쁜 놈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모진 말이다.

그리고 저 말은 아직도 나의 가슴 한 곳에서 나를 쓰리게 만들고 있다.

지금도 가끔 꿈에서 저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버지께 다가가 말을 이어갔다.


"아빠... 주치의 선생님이랑 이야기했어... 아빠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조직 검사 하자고 했으니까... 일단 진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치료 잘 받아... 알았지?"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거부하던 알약들을 하나씩 힘겹게 삼키기 시작했다.


"아빠 우선 조직 검사 해보자... 진단을 해야 치료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 상태였던 아버지가 조금은 진정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한참 우리 부자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힘이 없어서 말을 못 했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본 것 같다.

많은 아들들이 그럴 것이다.

아이였을 때 빼고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남자이기 때문에 서로 꺼려하는 게 크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들과 아버지라도 손을 한 번씩 잡아 봤으면 좋겠다.

어색하면 간혹 악수라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난 아버지가 아프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손을 잡아봤으니까 말이다.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생각했다.

그렇게 강했던 아버지의 손이 이토록 거칠고 약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약해진 손처럼 아버지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잘 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