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황홀했던 착각의 유효 기간은 정확히 6개월이었다.
부서 배치 첫날, 나는 회사라는 거대한 유조선의 가장 깊은 곳, 녹슨 엔진실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정확히 말해, 나는 큰 창고의 물류 분류 작업에 아무런 교육 없이 창고 한가운데 떨어진 아무것도 모르는 아르바이트생과 다름없었다.
비합리적인 비효율을 참지 못하는 나의 성격과 넘치는 열정은 이 부서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이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우리 팀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팀에 나름 적응이 되었을 때쯤, 나는 처음으로 단독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이번에 시작되는 수백억짜리 프로젝트의 생산라인에 들어오는 새로운 파츠의 라벨링 검토 설비를 개조하는 것이었다.
수백억짜리 프로젝트의 핵심 업무는 아니지만 단독으로 맡았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마침내 내 지성과 역량을 증명할 기회가 왔다고 흥분했다.
이 설비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것이 내 임무이자, 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나의 존재 증명이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 놓인 설비 매뉴얼을 펼친 순간, 나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매뉴얼은 이미 10년 전부터 복사되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마지막 개정 일자는 무려 8년 전이었다.
나는 설비 자체의 먼지와 녹슨 부품, 그리고 작동 소음을 분석하여 이 설비가 최소 10년 이상 큰 개선 없이 방치된 '노후 설비'임을 명확히 판단했다.
나는 이 설비를 학습하여 라벨링 오류 검토 과정을 분석하여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개조 미션을 받은 나는 비효율의 근본을 혁신하고 싶었다.
지독히 비합리적인 구조를 견디지 못하는 나의 성격상, 기존 방식인 사람이 직접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작업의 반복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나는 이 설비에 센서를 추가하고 작업자의 동선을 개선하여 투입되는 맨파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나름 혁신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개조 방안을 팀에 건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팀장의 답변은 내 모든 의지를 꺾었다.
"현우 씨 아이디어는 잘 들었어요. 창의적이고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희가 추진하기는 어렵겠네요.
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대답에 곧바로 질문했다.
"하지만 팀장님, 제가 분석한 바로는 센서를 추가하고 설비 배치 및 기구적인 수정이 조금만 들어가면 검토 시간을 70% 이상 단축할 수 있습니다.
1년 치 인건비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왜 이 효율을 외면하십니까?"
팀장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현우 씨 생각처럼 바꾸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작년에 예산을 넣어놓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동안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던 설비 거든요.
그리고 10년간 해 온 관습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전 사람들은 알면서도 안 한 게 아니라, 그냥 회사의 메뉴얼 대로 '최소한의 변경'만 진행해 온 겁니다."
나는 거의 탄원하듯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 관습 때문에 작업자들이 매번 수동으로 검토하며 불필요한 공수를 들이고 있습니다! 효율이 떨어지는 비합리적인 작업 아닌가요?"
팀장은 내 질문을 무시하고 책상 위 서류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라벨을 검토하는 과정은 전체 생산 라인에서 최소 10번은 거칩니다.
현우 씨가 아무리 똑똑해도 이 시스템은 현우 씨의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서 작동하고 있어요.
이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어요.
그냥 기존 매뉴얼에 맞춰 라벨 규격만 손보는 수준으로 마무리하세요.
" 팀장의 무감한 조언은 내게 내가 쌓아 올린 논리의 탑이 허물어지는 지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들어오려 했던 이곳은 성장의 발판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 기계의 수많은 톱니바퀴 중, 그 바퀴의 이빨 하나 정도 되는 위치였다.
이 이빨이 나간다고 해서 전체 시스템이 멈추지는 않았다.
잠시 삐걱거릴 수는 있겠지만, 워낙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티도 잘 안 났고, 바로 교체가 가능한 위치였다.
내 앞에 놓인 볼트와 너트는 나 없이도 영원히 제자리를 돌 것이었다.
그 공포는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내 경력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나는 잠들기 전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이 톱니바퀴의 이빨 하나를 1년, 3년, 10년 동안 성실하게 갈고닦는다면, 회사 밖으로 나갔을 때 이 경험은 도대체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제로. 창의성도, 비전도, 주도성도 없는, 매뉴얼에 종속된 작업이었다.
이 톱니바퀴의 경험은 오직 이 회사의 시스템 안에서만 유효했다.
나는 6개월 만에 유효기간 한정 부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지독한 현실을 인정한 순간, 내 안의 모든 엘리트 의식과 꿈은 첫 번째 깊은 균열을 맞이했다.
이대로 10년을 다닌다면, 나는 H사라는 간판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세상으로 나설 수 없는 “바보”가 될 것이라는 공포.
그 냉혹한 현실이 나의 첫 챕터를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