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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배기 Nov 03. 2020

선 없는 이어폰

대한민국 사람에게 이어폰 없는 이동시간은 고통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외출할 때 이어폰은 지갑과도 같은 존재라 깊은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엔 이어폰을 챙겨도 가끔 아뿔싸 하는 경우가 생긴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쓰기 때문이다. 요새야 블루투스 이어폰 안 쓰는 사람 없다지만 아직도 유선 이어폰 쓰던 시절의 습관을 못 버려서 그런지 간혹 가다 배터리 충전을 미처 해놓지 못할 때가 많다.


예전에야 아침에 핸드폰 배터리 100% 상태로 집을 나서지 않는 사람이 없는 탓에 이어폰만 있으면 음악 들으면서 이동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배터리 충전을 이중으로 해두어야 하니 까먹기라도 하는 날의 출근길은 명절 귀성길만큼이나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핸드폰 제조사들이 너도나도 이어폰 단자를 없애버리는 바람에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던 유선 이어폰도 쓸모가 없어져버려 더 답답할 따름이다.


물론 나도 처음에 무선 이어폰을 접했을 땐 반가웠다. 줄도 없고 핸드폰을 주머니, 가방 어디에 넣어도 상관이 없었으니까.


내심 볼에 걸리적거리던 이어폰 줄의 감촉을 싫어했었고, 가방끈에 걸려, 고리에 걸려 핸드폰 액정을 부숴먹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유선 이어폰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없으면 생각나는 게 세상의 이치인지 막상 무선 이어폰의 불편함이 유선 이어폰을 그리워하게 할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게다가 최근엔 너나 할 것 없이 무선 이어폰을 쓰다 보니 유선 이어폰을 쓰는 것이 힙한 것이라며 유선 이어폰을 다시 찾는 사람들도 있다니까.. 이런 감정이 드는 사람이 나 하나뿐은 아닌 듯하다.


연예인 누군가는 유선 이어폰이 가지고 있는 그 감성이 좋아서 무선 이어폰이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꽂기만 하면 바로 음악이 나오던 유선 이어폰과는 달리 무선 이어폰은 페어링을 거쳐 음악이 나오기까지 찰나의 딜레이가 있기도 해서 싫다나.. 살짝 공감이 가는 말이긴 하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아마 과거 mp3를 한창 쓰던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유선 이어폰이 가지고 있는 향수가 더 짙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약간의 추억 보정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새로운 디지털 기기들이 가져오는 편리함은 좋다. 그렇지만 기존의 아날로그 기기들이 가지고 있던 단순함이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보다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요즘엔 간간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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