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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6살 어느 날 얼굴 반쪽이 마비가 됐다

마흔여섯 살, 삶을 시작하다

46살 어느 날 얼굴 반쪽이 마비가 됐다.


늘 그렇듯 근무 중 빗발치는 전화와 끝이 없이 이어지는 일에 지친 오후, 얼굴이 붓기 시작하고 눈을 뜨기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그저 많이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커피 2잔으로 겨우 퇴근 시간까지 버틴 나는 일을 마무리도 못한 채 퇴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마침 퇴근한 남편에게 “여보, 나 좀 이상해..”라고 말하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왜 그래 당신 얼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는데 그냥 눕고 싶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내게 뭐라 하는데, 난 그냥 자겠다고 누웠다… 마취를 한 것처럼 모든 것이 희미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응급실을 안 가고 잠을 자요?”

다음날 병원에서 담당 의사는 기가 막힌 듯 나무랐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짓을 한 것 같다.

선생님은 우선 해야 할 모든 검사를 진행시켰다. 


설명을 듣고 검사를 받으면서 그제야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실감이 나면서 겁이 났다.

이런 일은 더 나이가 들어야 일어나는 줄 알았다.

아니… 나한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아이들은 어쩌지? 돈도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 

생각이 꼬리를 물고 들었다.


친정의 오랜 돈 문제와 엉망이 된  관계들, 온갖 성질을 다 내야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 이미 한계선을 넘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이 모든 것을 둘러업고 “괜찮아 언젠가는 잘 될 거야”란 말로 나를  매일 다시 일으켜 세워 삶이라는 곳으로 등을 떠밀어 왔던 내가 이제야… 나와 현실을 마주할 시간을 갖았던 것이다.


간신히 버티던 삶의 무게를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얼굴이 무너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애써 회피해 왔던 내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집도 없고, 통장 잔고도 없고, 건강까지 잃을 위기에 있는 46살의 나… 말이다.


그동안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이런 삶을 그래도 버텨낸다고 믿고 살아왔다.

틀렸다.

하루하루 연명할 뿐 문제를 직접 마주하고 해결할 용기를 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무책임했고 무계획의  무모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몸이 무너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며 버텨내 던 것들은 무엇인가?

친정, 시댁, 직장… 다 무슨 소용인가… 


누워 있는 내 주위를 서성이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어머니께 전화는 당신이 해. 대소사도 당신이  챙기고.”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남편도 이 말이 왜 나왔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그러마 하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내가 할게… 미안하다. 더 일찍 내가 막아 줬어야 했는데…” 


이 말을 뱉고 나니  갑자기 맘이 평안해졌다. 시댁을 떠올릴 때마다 으레 올라오던 분노와 심장이 뛰면서 느껴지던 힘든 감정들이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친정에는...... 그만하면 됐다... 그만해도 된다.. 내 노력이 우릴 다시 가족으로 만들어 줄거라 기대했지만 나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이 원한 건 가족이 아니라 경제적 지원이란 걸... 이제 그만해도 된다.....


아.. 그리고 직장.. 영어도 잘 안 되는 나이 든 이민자란 핸디캡에 난 늘 회사에, 젊은 동료들에게 이유 없이 미안했고 모든 불이익을 참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이 작은 회사는 하루하루 내 삶만큼이나 위험스럽게 버텨가는 중이라 주급도 제때 나오지 않았다. 그런 직장 이어도 여기 아니면 나이 든 나는 갈 곳이 없다 여겨져 늘 힘든 일이 계속 이어져도 그냥 버텨냈다. 6개월 전부터 회사에만 가면 얼굴이 붓고 편두통으로 힘들었지만 진통제와 커피로 버텨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군가에게 쉽게 대체될 자리이기에 더더욱 나는 불안했고 나날이 늘어가는 업무의 힘듦을 내색할 수 없었다. 대체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참 허무하다. 뭘 버텨내고 싶었던 걸까...


혼란스러운 이틀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젠 내가 멈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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