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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든씨의 사탕가게
Jan 03. 2020
3) 나는 나의 엄마가 돼주기로 했다
마흔여섯 살, 삶을 시작하다.
3) 나는 나의 엄마가 돼주기로 했다
3일 만에 일그러진 얼굴이 돌아왔다. 의사는 너무나 운이 좋은 경우라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아직 160을 오가는 혈압과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우려하며, 만약 다음번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이번과 같은 운을 기대할 순 없을 거라는 걱정 섞인 당부를 붙였다.
내 얼굴을 일그러뜨린 것도 8할이 나의 감정이고 다시 회복시킨 것도 나의 감정이다. 지난 3일 동안 생전 처음으로 평가나 자책이 아닌…. 나를, 나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46년을 살아오면서 너무 버거워서 혹은 마주하기 싫어서 미뤄 두었던 나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일을 뜻하지 않은 일로 하게 된 것은 내겐 하늘이 준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
오늘…. 마음 깊숙이 넣어 놓고 절대 꺼내 보고 싶지 않았던 내 감정들을 한 걸음 더 들어가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언제나 감정의 과부하가 결려 있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도 점심 나절이 지날 때쯤이면 두려움과 긴장감에 이미 몸은 천근만근이 되고 머리는 집중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상태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나를 힘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의 종류였다. 억울한 일을 당한 날도,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일던 날도,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난 다음에도 나의 감정의 종착지는 한결같았다. 우울증 약도 복용하고 수년에 걸쳐 상담도 꾸준히 받았지만 열심히 살아낸 하루의 끝자락 즈음엔 언제나 내 마음은 늘 똑같은 감정의 나락으로 빠지곤 했다.
“외로움과 슬픔”
나는 내 감정의 한 부분이 고장 났다고 여기고만 살았다. 힘들고 혼란스러워할 뿐 사실 한 번도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때의 감정들을 다시금 보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10대를 거쳐 20대, 30대…40대에 이르러 그 아픈 마음들이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내 인생에 있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나의 삶에 끊임없이 나타난 시련들이 아니었다는 것, 나를 가장 두렵고 절망으로 몰고 갔던 것은
"내가 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느리고 똑똑하지도 못하고 잘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나,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운마저 없는 나.
그런 나로 산다는 것이 너무 절망스럽고 내가 너무 미워서 실수할 때마다, 실망스러운 결과들이 나 올 때마다 밖에서 들려오는 비난과 냉대 만으로 이미 벅찼을 나에게 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다구니를 퍼부어 댔다.
그랬다…. 나를 두렵고 슬프게 만든 사람은 내 머리채를 잡아 흔들던 엄마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내 빰을 후려쳐대던 선생들도, 나를 따돌림시키며 피하던 사회 동료나 친구들도 아니었다…
나였다…….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모자란 나를 지독히도 저주하는 나, 나 자신이었다는 걸… 지독히도 외롭고 두려웠던,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는 나 자신에게 가장 오래, 가장 심하게 학대해 온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나에 대한 미안함에……
생명줄 같은 부모의 보호 없이 무섭고 외로웠을 어린 내게 마음의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어 본다.
그런 상황엔 누구라도 그랬을 텐데… 내가 모자라거나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돌봄 없이 혼자 그렇게 자랐다면 당연히 누구라도 그렇게 서툴고 실수할 수밖에 없는 거란 걸 이제야 깨달아서 미안하다고… 온 맘으로 진심을 다해 내게 용서를 구해 본다.
눈물이 나를 내 아픈 맘에 닿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충분히 안아줄 수 있게…
어린 나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46살 중년이 되었다.
나를 지키고 보살피기에 충분한 나이가 아닌가?
마음을 먹었다. 내 엄마가 되어주기로…
일어나기 힘든 아침 “아가 이제 일어나자..”란 말로 따뜻하게 깨워주자..
녹록지 않은 일터로 나갈 때 돈 생각 말고 꼭 사 먹으라고 커피값을 주머니에 넣어주자…
똑똑 지는 않아도 남을 도울 줄 알고, 맡은 일 열심히 하는 내가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자…
지쳐 잠들기 전 수고했다고…. 오늘도 잘 버텨주어 고맙다고 말해주자…
내 감정들을 정확히 마주하고 인정해 줄 수 있을 듯하다.
이제……. 두려움과 부러움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에게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사랑하며 살아갈 첫날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