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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왜 제가 했을 거라 생각하세요?

마흔여섯 살, 삶을 시작하다.

                  4)  제가 했을 거라 생각하세요?

 

나와 동생을 키워준 할머니와 고모들은 본인들의 삶 만으로도 벅찼고 어린 우리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가중시키는 불편한 존재였다.


4~5살, 배고프다거나 춥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  “이런 상황에 지 처지도 모르고 저런 말을 하는 생각 없는 년” 이란 질타가 쏟아졌다. 이런 환경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지나 중학생이 되도록 이어졌다. 나는 내 감정과 생존의 욕구조차도 수치스럽게 여기기 시작했고 혹여 어른들의 기분이라도 나빠지면 내 잘못이란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그렇게  수치심과 죄책감은 나의 잘잘못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어떠한 나쁜 상황에서든  자동적으로 올라오는 학습된 감정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온 뒤에도 나는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전긍긍하며 불안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인 듯했다.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거나 억울한 일이 생겨도 반론을 제기하거나 맞서 싸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유 없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재빨리 내 입을 어 막곤 했다.  이런 낮은 자존감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쉽게 타깃이 되곤 했고 나는 함부로 해도 되는 쉬운 존재가 되곤 했다. 대학에서나 회사에서 늘 점심은 혼자 먹고 모임에서도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내가 기껏 선택한 방법은 이 감정들을 바닥 깊이 숨기고 아닌 척 하기였다. 주변의 자존감 높아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연기에 능하지 못했고 나의 불안한 자아와 낮은 자존감은 내 어색한 연기력 밖으로 스멀스멀  새어 나와 더 어색한 나를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런 내 모습이 참 자연스럽고 이상했겠구나 싶다.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 어느 곳에 있던 어울리지 못했고 겉돌다 나오기를 반복해야 만 했다. 어떤 종류의 직업이던  일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람이 내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난 늘 주눅 들어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늘 어색했다.


그다음 이런 낮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나는 외향을 바꿔 보기로 했다. 20kg 이 넘게 감량하고 공부를 하고 남보다 2~3배 일을 하며 능력도 키워 봤지만 중요한 순간에 나는 언제나 도돌이표처럼 4~5살 겁먹은 어린아이 마냥 주눅 들어 다시 모두에게 쉬운 사람이 되곤 했다. 자존감이란 평생을 노력해도 불가능해 보이는 단어가 돼버린 듯했다.


그런데 최근의 일들을 겪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퇴직 후 파트타임으로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일을 하시게 되면서 만나게 된 분이다.


좋은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나  평생을 하시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승승장구하시던 분이었다.  작은 체구에도 늘 당당함이 묻어나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 어쩌다 같이 일하는 날은 나까지도 힘이 났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했을 때 업무를 인수해 주시면서 내가 없는 동안 작은 소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비싼 자재들이 들어오던 날, 그분이 마지막으로 문단속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문이 열린 채 하룻밤이 지난 거다. 누가 보아도 그분의 불찰로 보이는 일이었고 얼마 전 회사에 도둑이 들어 큰 손실을 볼 뻔한 일이 있던 터라 상사의 화는 더 컸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벼락이 떨어졌다고 한다.

 “아니!!  **씨는  그 걸 그렇게 처리해 놓고 가면 어떡해요!!!”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내가 두려움에 가슴이 뛰었다.  ‘이일을 어떻게 하나 …’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그분의 입에서 나왔다. 


                 제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응.”

“ 그러고 나서 이사님은 더 뭐라 안 하시고요?”

“당연하지, 그리고 나도 내가 한 게 아닌데 왜 주저리주저리 얘기해. 그걸로 끝난 거지.” 


그 자리엔 없었지만 그분의 말투와 태도를 평소 너무 잘 아는 나는 그 장면이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그분의 단호한 말투에는 반박할 수 없는 당당함이 들어 있고 그것은 듣는 사람은 그의 말을 신뢰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 후 얼마 안가 그날 늦은 저녁 사장님이 회사에 들렸다 그냥 회사문을 열어 놓은 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와 그분은 더 이상의 드라마 없이 평온하게 다시 돌아갔지만 내겐 그분의 답변이 충격으로 남았다.


나였다면 상사의 호통이 쏟아지자마자 " 퇴근하면서 분명 잠갔는데.."라고 우물쭈물 답을 하면서도 '내가 문을 잠근 게 아닐 수도 있어. 아니야.. 분명 잠갔는데... 이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지...'라는 생각들로 이미 정신은 아득 해 졌을 거다.


나의 불안한 답변과 모양새는 내 실수가 분명하다는 암묵적 확답이 됐을 것이고  모든 상황은 내 잘못인 걸로 끝났을 것이다. 억울함과 이유 없는 죄책감으로 몇 날을 뒤척이며 나는 재수 없는 나를  자책하고 더 실수 없는 나를 만들라며 더욱 나를 몰아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 왜 제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세요?"로 끝나는 사람이 있다니.... 그날 이후로 나는 그분의 말투, 태도를 더 유심히 보며 어떻게 하면 나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20년 넘게 어설프게 흉내 낸 자신감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이 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는 그저 경외 로운 부러움으로 마음 한편에 남겨두고는 잊은 듯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분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내 마음들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이 있어서다. 그분과 나의 다른 점... 내가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던 자존감이란 것이, 사실은 당당한 태도나  성과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신뢰한다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란 걸 말이다.

 

그 날 그분이 한 말은 운 좋게 나온 순발력이 아니다. 그분의 삶의 태도였다. 자신을 믿어주는.... 그 힘이 다른 이들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자존감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이란 걸.


마흔여섯, 괜찮은 나이다... 예전 같으면 이제 내일이라도 당장 변할 나를 기대하고 세상으로 달려 나갔다 실망하곤 또 나를 미워했을 텐데, 이 나이가 되니 알고 있는 게 있다. 깨달아도 변하는 건 그리 없다는 걸..


하지만 내가 행복한 건, 당장 내일부터 어떤 상황에 부딪쳐도 내가 내 마음에 두발로 서 "왜 내가 그랬다고 생각해?" 하고 반문해줄 내편이 되어 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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