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타운 Rolf’s German Restaurant로 가보아요
크리스마스용 영화에서는 크리스마스 전 날 아이들이 들뜬 마음에 잠이 든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은 언제나 날씨가 좋았고, 창가에 스며들듯 떨어지는 따스한 햇볕에 일어난 아이들이 트리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하나둘씩 그들이 원했던 선물을 가슴팍에 파묻으며 기뻐하는 모습들. 그런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간직했었더라면, 어쩌면 나도 크리스마스가 조금 더 애틋하고 따뜻하게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착한 아이들만 선물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믿었더라면, 나의 선행을 눈치채지 못하는 산타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나의 부족한 성덕에 열등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난 때문인지, 혹은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오빠들이 있어서인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모님의 포켓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메쏘드연기를 펼치며 집에서 며칠 간 아주 큰 소리로 외쳤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께 꼭 정확히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론 다음 날 내 머리맡에는 아무런 선물도 놓여있지 않았다.
사람이란 자기가 싫었던 일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면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텐데,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제대로 챙겨본 적 없이 자란 나는 기념일을 챙기는 게 무척 어렵다. 애써 현실로부터 도피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 작은 아이의 크리스마스선물도 크리스마스이브날 쿠팡와우로 시켜서 겨우 받았다.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책으로..
많은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름 좋아하는 책으로 시켜줬는데,
내 작은 친구는 산타할아버지가 뭔가 큰 착각을 하는 것 같다며 오열했다.
그래도 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뒤늦게나마 (원하지 않아 하는 선물로라도) 꼬박 챙기는 그런 어른이 된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 헛헛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뭔가 챙기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나는 이번 한 해도 현대사회의 빠른 유통구조 잘 보냈다.
카카오톡에서 알려주는 지인들의 생일들이나,
이제 곧 크리스마스라고 알려주는 뉴스들을 통해서
그나마 사람구실을 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당일은 언제나 조용히 보내는 편이다. 그동안 펼쳐두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두고, 트리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서 크리스마스 자체를 즐겨본 적은 크게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브날에 맛있는 저녁을 차리고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들으며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일이 조금 더 기다려진다. 그래서 나에게 본방은 크리스마스보다는 크리스마스이브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보다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울리는 그 순간 혹은 트리를 설치하는 시간부터가 나에겐 진짜 크리스마스 같은 생각이 든다.
뉴욕에 있을 때 정말 저렴한 트리를 샀었는데, 그 트리를 설치하고 나면 주변이 모두 플라스틱 초록잎으로 덮이곤 했다. 그럼에도 밤에 라이트가 켜진 그 트리를 보면 기분이 좋았고, 창이 커다란 맨하탄의 빌딩에서 층마다 보이는 다른 집의 트리들을 바라보며, 저쪽에서는 우리 집 트리를 즐길 수 있도록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았던 적이 있다. 한 번은 트리를 조금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 11월 초부터 트리를 만들었는데, 모두들 너무 일찍 만든 거 아니냐고 왜 이렇게 먼저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냐고 다들 웃더랬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 이는 나만은 아닌지,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 속에서 연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카페가 있다고 했다. 3년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한국에 돌아오기 하루 전에 바로 그곳인 Rolf's German Restaurant에 갔다. 그때는 1월 중순이 넘어갔었고, 크리스마스바이브도 새해의 분위기도 조금씩 누그러진 터라 밤 10시쯤 갔을 때는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텅 빈 느낌으로, 한 테이블에만 사람이 있어서 잠깐 데코만 보고 나오고 싶어도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미 배가 빵빵해지도록 저녁을 먹은 터라, 더 이상의 메인디쉬는 시킬 수가 없었기에 양해를 구하고, 칵테일 2개와 음료수 1개 그리고 수프를 시켜서 수프를 안주삼아 먹었다. 수프의 따뜻한 기운이 몸에 퍼지면서 연말이 아닌데도 연말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시나몬칵테일은 온몸을 조금 더 데워주기에 적당했다. 서서히 퍼지는 온도가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인 것 마냥 조금 더 설레게 만들었고,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내 머리맡에 작은 선물이라도 놓여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1년의 딱 하루인 크리스마스가 아닌,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 같다. 그날은 귀국 전날이라 나를 위로할 장소를 하나 더 찾은 기쁨과 더불어 이제 곧 맨하튼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공존했지만, 떠나야 할 장소가 아닌 다시 돌아올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마치 1년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