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d Book Store로 책여행을 떠나봅니다

책에 대한 나의 사랑은 뉴욕에서도 막을 수 없지

by 남배추

책이 좋다. 이런 지독한 짝사랑도 없을 것이다. 별 것 없는 풋풋한 연애스토리든, 손에 쥔 봉을 휘두르며 하늘을 날든 장르에 상관없이 책 자체가 좋아서 집안 전체를 책으로 도배하고 싶단 생각도 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후, 마치 연극 한 편을 본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야만 성이 풀리는 훌륭한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나는 책에 대한 편식이 없다. 그래서 책은 나에게 있어서 편안한 몸과 정신을 위한 필수템이다. 파자마 그 자체다.


물론 이 짝사랑은 험난했다. 지금이야 한국이니 집 근처의 도서관을 자박자박 걸어가서 백팩에 5권을 매주 빌려올 수 있지만, 뉴욕에 살 때에는 영어라는 큰 장벽이 있었다. 책을 고를 때 내용보다도 나의 영어레벨에 맞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굴욕. 심지어 나는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는 속독가인데 아무리 맞는 레벨을 찾는 들 영어로 읽다 보면 느릿해지니 속이 답답했다.


난감했다.

다행히 전자책이 존재하여 미국 뉴욕에서 전자책으로만 한국어소설을 1년에 200권 정도 읽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미국에서 한국어로 된 소설을 읽다 보니 영어로 된 세계가 나에게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 한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세계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본 곳은 이상하게도 도서관이 아닌 서점이었다. 도서관이 국룰이지만 웬만한 책들이 지하시스템의 정해진 곳에 가려있는 게 대다수인 데다가, 어느 작품이 재미있는지 알기 어려워서 발걸음이 선뜻 나서 지지 않았다. 반면, 서점은 기본 장사가 바탕이라 책구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등을 긁어준다. 직원들도 책에 대한 정보가 상당하다. 특히나 직원들이 좋았던 책이랄지, 직원들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랄지, 요즘 인기도서랄지 주르륵 나열되어 마구 알려주려고 하는 글판을 보면, 친절한 멘토라도 만난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게다가 그 추천도서가 서점마다 다르니, 새로운 서점을 찾아다니는 맛도 있다.


그중에서 자주 가던 곳 중의 하나가 뉴욕의 오래된 서점 Strand였다. 극내향인으로써 사람이 드문 조그마한 동네책방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행여나 서점 내에 혼자 있는 상황에 마주할까 봐 발을 들이게 된 커다란 스트랜드서점. 코로나시절, 뉴욕의 모든 서점이 적자인 상황에서 이곳만이 유일하게 흑자를 본다고 들었던 것 같다. 헌책과 새책을 조화롭게 구비하고 있는 알라딘과 교보문고의 혼합형태라서 그럴까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책도 구할 수 있는 서점이라 그럴까. 실제로 귀중도서를 보관하는 도서창고도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일반인에게 오픈되어 있지는 않다.


다양한 굿즈를 팔고 있는데 그중 인기가 가장 높은 것은 에코백이다. 책을 산 사람들은 에코백도 장바구니에 담아 그 백에 책을 넣어가는 경우가 많다. 에코백이 없었다면 나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스트랜드에 간 날에는 1층에서 직원들의 추천글을 공들여 읽어보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어 보이는 건 메모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소장하고 싶은 건 그 자리에서 사기도 했는데, 한정된 예산만 아니었다면 나는 뉴욕 스트랜드서점의 10퍼센트 정도는 책을 사지 않았을까 하고 너스레도 떨어본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는 작은 여행은 매번 다채로웠다. 미술코너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팔았는지 볼 수 있고, LP판에서는 디깅 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중 지금도 소지하고 있는 미술책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인데도 10달러에 샀으니 이 서점의 위대함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기분이 우울할 때나, 혼자이고 싶으면서 혼자이고 싶지 않을 때는 언제나 서점으로 향했다. 책 안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삶, 때로는 실용서적을 보며 느긋한 오후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중에 다시 뉴욕에서 살게 되면, 그때는 재테크에 성공하여 방 하나쯤은 책에게 양보할 수 있는 재력이 있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책에서 향기가 나는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특히 내 짠내 나는 추억이 담긴 스트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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