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춤을 한 번에 배우는 이유
나는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오리엔탈 댄스를 배운다. 물론 네 가지 춤을 한 번에 배우진 않는다.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두어 가지를 번갈아 배운다. 작년에 이런 별난 취미를 담아 [나의 춤바람 연대기]란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되었다. 책이 출판되고 원고를 보는 내내 궁금했었다며 출판사 대표님이 질문을 던졌다.
“한 번에 여러 춤을 배우는 건 힘들지 않아요? 헛갈릴 것 같은데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라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맞아요. 헛갈려요. 그런데 그게 여러 춤을 배우는 맛이에요.”
생각해 보니 대표님 말이 맞았다. 몸이 그 춤에 맞는 ‘모드’로 바뀌는 데는 항상 ‘버퍼링’이 걸린다는 것. 이를테면 한국무용에서 ‘굴신’(한국무용에서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을 하다 보면 다음 날 발레 수업에 가서 ‘쁠리에’(무릎을 바깥쪽을 향하며 구부리는 동작)를 할 때 묘하게 어정쩡한 맛이 난다. 굴신도 ‘쁠리에’도 아닌 그 중간에 무엇이 된달까. 한 번은 발레 수업에서 ‘파드블레’(일종에 스텝)를 배우는데 내 동작을 보고 선생님이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회원님! 파 드블레를 할 때 한국무용처럼 버선코를 세우면 어떡해요!”
선생님의 지적에 화들짝 놀라 발을 보니 한국무용할 때처럼 발가락을 위로 바싹 세워 버선코 모양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뾰족하게 발가락을 ‘포인트’하며 움직여야 하는데 버선 신은 발 모양으로 하고 있으니 내가 봐도 웃긴 모양이었다. 나름 배우는 춤 들이 섞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이런 실수는 늘 있곤 한다. 그래도 여러 춤을 한꺼번에 배우는 이유는 바로 재미있으니까. 이런 ‘버퍼링’이 내 몸에 자극이 되고 몸을 다양하게 쓰니 재미가 더해진다. 일상적인 움직임이 아닌 새로운 자극. 마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낯선 나라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느낌을 상상해 보라. 낯선 풍경, 사람들, 언어가 뒤엉키고 두리번거리며 내가 가야 할 곳으로 데려다줄 교통편을 구하려 분주하다. 묘한 설렘과 동시에 긴장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호텔에서 픽업하기로 한 차가 비행기 연착으로 떠나버렸거나 내가 미리 검색했던 바와 현지 상황이 사뭇 달라서 당황하기도 하고, 택시를 탔는데 현지 돈이 부족해 식은땀이 나기도 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당혹스럽지만도 평소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내가 ‘짠’ 나타나서 어찌어찌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라며 뿌듯하기도 하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이라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서 무사히 다녀왔을 때 성취감과 낯선 상황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맛에 여행을 다닌다.
일상에서 벗어난 자극으로 새로운 혹은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는 맛, 그것이 내게 여러 춤을 배울 때 느끼는 기분이다. 여행뿐 아니라 매일 같은 길을 걷지 말고 다른 길로 다녀보고 운동도 다양하게 즐기고 가끔 새로운 요리에도 도전하는 것이 삶을 다채롭게 만든다. 특히 몸을 다양하게 쓸 때 느끼는 감각이 다른 자극보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다면 몸을 다양하게 써보시라. 이왕이면 음악과 함께하는 춤이면 더 좋고. 이 맛에 빠지면 삶이 달리 느껴질 거라고, 최소한 사는 게 재미는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덤으로 건강도 챙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