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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맘 Oct 11. 2022

일중독만큼 무서운 ‘육아중독’,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육아우울증 극복기 ③] ‘좋은 엄마’ 되고픈 집착이 나를 무너뜨렸다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는 딸에게 나의 행복한 기억을 물려준다기보다 딸을 위해 행복한 기억을 연출해주고 있다. 부모님도 나를 위해 똑같이 그렇게 하셨지만, 부모님에게 돌봄의 개념은 먹이고 재우고 학교나 보내는 정도의 훨씬 기본적인 것들이었다.(100)”


내가 받아보지 못한 종류의 사랑을 자식에게 주는 일은 때로 막막했다. 내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어땠더라? 이런 류의 질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영아기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유년 시절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자주 피곤하고, 아프고, 화가 나 있었다. 무엇보다 퇴근이 늦어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동생과 내가 잠들고 나서야 귀가하는 날도 잦았다.


엄마는 나를 먹이고 재우고 학교에 보내주었지만, 유독 예민하고 감정이 섬세했던 나는 사랑이 고팠다. 나는 섬집 아기처럼 일하러 간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랐고, 그 때의 결핍감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주 나를 괴롭혔다. 실제로 내 20대는 사랑받지 못한 유년의 상처와 싸운 전쟁터 같은 시기였다.


내 엄마처럼 할 수는 없다! 그 시절에야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무슨 대단한 자아실현 한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생때같은 내 새끼를 외롭고 슬프게 만든단 말인가?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나를 갈아 넣다


그렇다면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나? ‘좋은 엄마’라면 어떻게 하나? 나는 내가 아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좋아 보이는’ 다른 엄마들을 곁눈질하며 따라했다.


‘좋은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무렴.’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좋은 엄마니까.’


자체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참고할 롤 모델은 인스타그램이나 맘카페의 ‘완벽한’ 엄마들이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하얀 집, 엄마가 직접 만드는 정성 가득 이유식, 영유아기 발달 과정에 대한 석박사급 해박한 지식...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 Ana Tablas, Unsplash


완벽한 엄마의 아기는 완벽하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워 보였고, 그들의 남편은 퇴근 후의 모든 시간을 육아와 가사에 쏟으면서도 불평 없이 헌신적인 것만 같았다. 나도 그렇게 완벽한 엄마가 되어 완벽한 가정을 완성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경험적 자산이 없으니까, 나는 정서적으로 흙수저나 마찬가지니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갈아 넣으며 ‘노오력’했다. 그렇게 하면 내게도 행복이라는 파랑새가 날아들 것 같았다.


아이를 재운 뒤 젖병 설거지와 장난감 살균 소독을 마치고 나면 이유식을 만들어 두고 기저귀와 분유를 주문하고 육아책을 뒤적이다 지쳐 잠들었다. 육아와 관련되지 않은 개인적인 여유 시간은 전혀 없었고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조차 없었다. 나는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 내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했으니까.


일에 중독돼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마는 워커홀릭처럼, 나는 어느새 ‘육아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코로나 후유증이 몰고 온 무기력과 우울


나와는 정반대로 성격이 느긋한 남편은 내 육아 과몰입을 이해하지 못했다.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할 짬도 없이 지나치게 몰두하는 나에게 몇 번이나 염려를 표했다.


반대로 나는 그의 ‘한가함’에 짜증이 났다. 내가 권하는 육아책 한 권 읽어보지 않으면서 저녁마다 육아와 상관없는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남편을 옥죄며 통제하려 들었고 그는 숨막혀했다.


자연히 싸움이 잦아졌고, 부부 사이는 최악으로 틀어졌다. 이혼이라는 초강수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가, 부부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가, 눈물로 대화를 나눠봤다가, 습관처럼 다시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다퉜다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이 몇 주를 보냈다.


그 와중에 우리 집에도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남편이 먼저 걸렸고 이틀 뒤 내가, 일주일 뒤 아이가 확진됐다.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며 싸우다가도 위기가 닥치자 부부는 부부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고 협력하며 2주를 버텼다.


그러면서 나는 완전히 넉다운 됐다. 확진 후 대엿새 정도는 약 기운으로 견뎌냈지만 감기 기운이 물러가면서 극심한 무기력이 찾아왔다. 코로나 후유증이 시작된 거였다.


이미 나는 10개월 이상 쉼 없이 계속된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가정불화로 인한 스트레스, 코로나 후유증이 겹치니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무기력증은 곧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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