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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맘 Oct 14. 2022

‘엄마’가 아닌 ‘나’는 어디로 갔을까

[육아우울증 극복기 ④] 내 안의 첫 번째 아이를 먼저 돌볼 것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하루에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잠을 잤다. 악몽을 꾸고 땀을 흘렸다.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씻을 정신도 기운도 없었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조차도 힘이 들었다.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육아는 저절로 남편 몫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 남편 혼자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거실에서 아이가 아빠와 노는 동안 나는 암막커튼을 드리운 방에 누워 지냈다. 같은 집 안에 있으면서 하루에 한 번도 아이를 보지 못한 날도 있었다.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부재중’이라니.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자주 눈물이 났다. 앞날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즐겁고 보람되던 육아가 순수한 고통으로 여겨졌다. 죽고 싶다는, 모든 게 다 끝장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아이를 두고, 혹은 아이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뉴스 속 엄마들이 떠올랐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처지고 우울한 증상이 아니다. 뇌의 사고 회로가 완전히 달라진다. 두뇌에 안개가 낀 것처럼 갑갑하고 단순한 계산이나 판단도 평소처럼 하지 못한다. 머릿속에 절망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린 듯이, 모든 사고가 부정적으로 흘러가는데 이건 의지로 조절이 쉽지 않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터가 된 집에서 벗어나자 회복이 찾아왔다


엉망진창인 상태였지만, 어쨌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기운이 돌아왔다. 잠깐씩 의욕이 생기면 거실로 나가 아이와 놀아주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자 친한 지인들이 걱정하며 찾아와줬다.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조금씩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코로나 후유증이니 육아우울증이니 대충 설명하니 다들 알 만 하다며, 어느 정도 이해해주어 위로가 되었다.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되자, 나는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 입원을 시켜달라고 했다. 집에서 벗어나야 했다. 집은 더 이상 내게 쉼의 공간이 아니라 일터였다. 집안일은 항상 쌓여 있었고, 언제 아이가 나를 찾을지 모르니 늘 긴장하고 대기하는 상태였다. 그 상태로 10개월을 살았으니, 코로나 후유증이 아니라도 번아웃이 오는 게 당연했다.


병원의 다인실이 불편해도 집보다는 편히 쉴 수 있었다. @Hiroshi Tsubono, Unsplash


다행히 그날 오후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원하지 않으면 약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수액을 맞으며 내리 잠을 잤다. 시간이 되면 나오는 세 끼 밥을 먹고, 깨어 있을 때는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봤다.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집 대신 근처 관광호텔로 갔다.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집을 생각하면 심장이 조이는 듯 갑갑해져왔다. 직장 우울증을 겪는 직장인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어차피 나쁜 엄마가 돼버린 거, 조금 더 막 나가면 어떤가 싶었다. 일단 내가 먼저 살아야 했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와 둥그런 테이블이 있는 방. 그 어떤 설거지거리도 기저귀와 물티슈도 알록달록한 장난감도 빨래도 없는 호텔방에서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잤다. 며칠이나 머물게 될지 몰라서 숙박비를 1박치씩 결제하며 하루하루 연장했다.


엄마가 아닌 ‘나’는 어디로 갔을까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 줌(zoom)으로 진행하는 우울증 상담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자꾸 스스로를 갈아 넣고 마는 소진증후군, 헤어 나올 수 없는 무기력감을 호소했다.


상담 선생님은 우선 ‘엄마’가 아닌 ‘나’를 되찾아서 돌봐야 한다고 하셨다.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생각해보니 달리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아이를 낳은 뒤로 나는 모든 아이디와 닉네임을 ‘00맘’으로 바꿨고 아기 엄마들만 만났다. 읽는 책은 육아책 뿐이었고 유튜브도 육아 관련된 것만 보았다. 나의 우주는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가 아닌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또한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무시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어른이 된 내가 보듬어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 안의 어린 아이를, 내가 낳은 첫째 아이라고 생각하고 돌봐주는 거예요.”


내가 제때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모성애가 잘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자꾸만 넘어지고 다치고 피를 철철 흘리고.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나 계속 달렸다. 정작 내 첫 번째 아이가,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며 호텔에서 사흘을 보냈다. 엄마가 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무얼 할 때 가장 즐겁고 살아있는 것 같았나?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었을까? 아이가 다 자란 뒤에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언가?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자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겼다. 나흘 만에 엄마를 본 아이는 나를 보고 활짝 웃어 주었다. 울컥했다.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내 책상을 되찾은 일이었다. 아이가 자는 방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내 책상과 노트북 컴퓨터를 내 방으로 옮겨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육아용품만 어지럽게 쌓여 있을 뿐 죽은 공간이었던 안방 한 귀퉁이는 ‘자기만의 방’으로 재탄생했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육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상담과 약물치료 또한 병행하며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변 엄마들과 이야기해보니 의외로 정말 많은 엄마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약을 먹는 것 외에 다른 치료를 하지 못하고 그저 버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이 오늘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엄마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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