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우울증 극복기 ⑥] 우울증 약을 먹으며 일상을 회복하다
항우울제를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현대 정신의학은 실로 위대하다고.
처음 며칠은 잠이 많이 왔다. 약을 먹은 첫날은 몇 시간 만에 온몸이 나른해져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도 거의 오전 내내 잤다. 복약 사흘째가 되자 여전히 잠은 많이 잤지만, 오후에는 외출을 하고 모처럼 아기, 남편과 함께 밖에서 저녁도 먹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아기와 사진도 많이 찍고, 몇 주 만에 SNS 업로드까지 했다!
잠이 많이 오기는 하지만 약을 먹기 전과는 다른 종류의 졸음이다. 자도 자도 피곤하고 끝간데 없이 깔아지는,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졸음이 아니라 약에 의한 이완 작용 때문에 편안해져서 졸린 느낌이다. 몸이 약에 적응하면서 졸린 증상은 점차 사라졌다.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동안은 아기 우는 소리도 못 듣고 오후까지 잤는데, 이제는 아침이면 번쩍 눈이 떠진다. 불쑥불쑥 기운이 나기도 하고 의욕이 솟아나기도 한다. 복잡한 생각이나 판단, 결정이 잘 안 되고 뇌에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한 느낌도 사라지고 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현대 정신의학 만세!
용법·용량도 없는 술·담배보다 정신과 약이 안전하다
한국 사회는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심한 곳이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물론 불필요한 약은 먹고 싶지 않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은 없는 법이니까. 한 달 가까이 약 없이 견뎠는데 그냥 좀 더 버티면 자연히 낫지 않을까? 이제 슬슬 나을 때가 된 거 아닐까? 병원을 향해 운전해 가면서도 의사 선생님이 “이 정도는 약 안 드셔도 됩니다”라고 말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 감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아주 독하고 자칫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심한 감기다. 감기도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 더 빨리 낫고 덜 고생하고 후유증도 적다. 이 빌어먹을 ‘영혼의 감기’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기와 잘 맞는 의사와 약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다행히도 한 번에 좋은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고, 큰 부작용 없이 약도 잘 듣는 편이었다. 약이 잘 듣지 않거나 부작용이 심해 여러 번 약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울증으로 힘든 이들에게 꼭 약물 치료를 권하고 싶다. 정말 기적처럼 일상을 되찾아주니까.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게 해 준다. 규칙적인 일상을 회복하는 것 또한 우울증 치료에 중요한 부분이다.
공인된 전문가의 처방 하에 정확한 용량대로 복용하는 약이, 힘들다고 되는 대로 들이키는 술이나 마구 피워대는 담배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유익하다. 유해하기로 따지면 우리가 흔히 먹는 통조림 햄에 들어있는 발색제도 발암물질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통조림 햄조차 먹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울증 약은 작은 부작용에 비해 효과가 크다. 너무 겁먹지 말고 일단 의사를 만나 보라고 말하고 싶다.
병원을 가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내가 병원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육아 디톡스’를 통해 상태가 좀 나아졌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커녕 뇌에 녹이라도 슨 것처럼 사고 회고가 버벅거리고, 씻거나 먹지도 못하던 날들이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병적인 무기력은 게으름이나 나태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평소 ‘엉덩이가 가볍다’는 말을 듣곤 했다.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하고, 가만히 있느니 방바닥이라도 한 번 더 닦는 사람이었다.
약을 먹으면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지자, 남편이 떠맡고 있던 육아의 짐을 나눌 수 있었다. 아이를 하원시키는 길에 동네를 산책하며 햇볕을 쬐고, 이유식 재료나 반찬을 사서 들어오기도 했다.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무기력과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동안에는 이런 간단한 일조차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집안일이나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배달 오는 죽만 먹던 아이에게 오랜만에 엄마표 이유식을 만들어주면서 가슴이 벅찼다. 아, 나 다시 살아가고 있구나.
부모의 사랑만큼 절대적인 아기의 사랑
잠시 동안 짐스럽게 느껴지던 아이도 너무나 예뻐 보인다. 나를 닮은 새침한 표정도 통통한 허벅지와 손가락도 군내가 나는 정수리도... 그냥 예쁠 시기라서 예쁜 건가? 내가 육아에 한 동안 거리두기를 한 효과일까? 아니면 원래 내 새끼란 계속해서 더욱 더 예뻐지는 건가?
엄마들 단톡방에 질문을 던지니 ‘셋 다’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제 자식을 키울 때는 힘들어서 예쁜 줄도 모르다가 손주를 보면 그렇게 예쁘다고 하던데, 요즘 나는 꼭 그런 심정이다. 힘겨운 상황을 조금 벗어나니 아이가 한없이 예쁘다. 물론 아이는 늘 사랑스러웠지만, 요즘은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지경이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온전히 사랑을 쏟아본 대상이 있었던가? 남편? 부모님?
아이 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마도 남편과 부모님이겠지만, 그건 자식에 대한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연인과의 사랑도, 어느 정도는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애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매력적이니까. 부모에 대한 사랑은 의무이고 윤리다. 부모가 늙고 병들수록 더더욱 그렇게 되겠지.
그러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순수하다. 내가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은 내 아이 뿐이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엄마에 대한 아이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영유아기의 아이가 부모-혹은 주양육자-에게 보이는 애정은 절대적이고 순수하다. 물론 낳고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고생해서 키워주고 있지만,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건 그런 수고에 대한 대가도, 감사도 아니다.
그냥, 내 엄마니까! 내가 며칠씩 두문불출 보이지 않아도 어쩌다 빼꼼 얼굴을 비추면 이런 나도 엄마랍시고 배시시 웃으며 반겨주고, 언제나 먼저 손 내밀며 다가와 안겨 준다. 스스로의 못남을 견디기 힘든 날들에도 너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그 어떤 판단도 계산도 없이 다가와 사랑을 표현하는구나.
“good enough mom”이라는 말이 있다.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뜻이다. 오은영 박사도 방송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좋은 엄마, 나쁜 엄마는 없다고. 아이에게는 그냥 내 엄마, 우리 엄마면 되는 거라고. 이런 엄마라도,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고 해줘서, 양 팔 한껏 벌리며 달려와 안겨 줘서 고마워. 우리 아기,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