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시탐탐 Nov 05. 2021

안녕한, 가?

: 지금의 내가 안녕하길.


어릴 적 나는 50까지만 살고 싶었다.

엄마가 39에 돌아가셨기 때문인지 그때 나에겐 50이 적지 않은 나이처럼 느껴졌다. 50까지 살기로 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내다 보니 정말이지 쏜살같이 40이 되었다.


그런데 50까지 고작 10년밖에 안 남았다고?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얼마나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이젠 잘  알기에... 50은 너무 적은 나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50을 바라보고 살 때는

하루에 한 달에 일 년에 충실하면 됐다.

미래의 나보다는 지금의 나에게만 충실하면 됐다.

사고든 병이든 예상치 못한 날벼락이든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20년이 훌쩍 넘는 냉장고를, 그릇, 하다못해 쓰레기통까지 사용하고 있지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뒤돌아보면 더 놀 걸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풍요롭진 않았어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덜커덕- 80까지, 아니 그 이상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0을 바라보면야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인데 이후 40년.

살아온 시간보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영화일을 한다고 프리랜서로 십여 년을 살았으니 남들 다 있다는 국민연금도 없고, 점점 나를 찾아주는 사람은 줄어들 테고... 경력이 쌓여 노련함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체력이 필요한 직업인데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지금부터라도 안정적인 직업에 다시 도전? 그것도 자신은 없다.


지금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50까지 살고 싶었지만 80 이상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40의 나는 걱정과  불안에 점점 두려워졌다. 그렇게 두려움은 하루하루 부피를 키워가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까지의 내가, 내 삶이... 몹시 구질구질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이르렀다.


분명 열심히 산거 같은데 나는 왜 고작 이만큼일까?

남들은 다 잘 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힘들기만 한 걸까?

분명 내가 선택한 길들이고,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들을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구질구질이다.  생각이란 게  한번 빠지기 시작하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짜증이 났다. 모든 게 싫어졌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쪽 끝으로 무작정 떠나왔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니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안녕한, 가>




지금 나는

안녕한, 가?

안녕하지 못해서 이곳까지 떠나왔다.

가만히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지금 나는

안녕하지 못한, 가?

내가 80 이상 살수도 있어서?


50을 바라보고 살 때나

80을 바라보고 살 때나

사고든 병이든 예상하지 못한 날벼락이든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나와는

다르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흔들린 건가?


하마터면 나는

미래의 나를 걱정하다가 지금의 내가 무너질 뻔했다. 

지금의 내가 없으면 미래의 나도 없다.

지금의 나도, 지금까지의 나처럼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


지금은 지금의 내가 안녕하면 된다.

지금의 내가 안녕해야 미래의 나도 안녕할 수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을 느껴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지금까지의 나처럼

다시 안녕해지길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혼자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