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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Mar 14. 2022

넷플릭스가 던진 돌.

: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야 한다.


영화일을 하면서 늘 나름의 최선을 다하지만 끝나고 나면 언제나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뿐이. 그래서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후회가 남는다. 그래도 그렇게 후회를 줄이면서 영화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그동안 했던 모든 작품을 곱씹으며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넷플리스가 던진 돌, 지금까지의 나는 틀렸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영화일은 열정 페이라 불릴 만큼 급여 같지 않은 급여를 받던 시대에서 표준 근로가 제법 안착되면서 지금은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은 급여를 받는 '풍요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 풍요의 시대지만 영화일에 경력이 쌓일 만큼 쌓인 나 역시 매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얼마를 받아야 하나?'고민하고 고민한다.


돈이라면 많이 받을수록 좋고, 경력이 많으니까 무조건 많이! 받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걸 지도 모르지만 그냥 무조건 많이, 점점 더 많이만 받으려고 하는! 그래서 점점 더 높아지기만 하는 급여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급여를 주는 사람의 입장/기준이야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나는 내가 맡은 파트/역할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급여를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누군가는 인정해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가성비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물론 시장의 흐름(?)을 방해한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내 급여가 내가 아끼는 후배들의 급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이런 내 생각이 맞는 걸까?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무조건 많이'받기보다는 작품/상황에 따라 나름의 기준과 소신을 적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야흐로 넷플릭스가 '거대 자본'을 힘으로 콘텐츠 업계를 장악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이 중심이 되는 건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영화일 역시 이전보다는 수요가 줄어들었고, 그만큼 힘들어진 상황에 보다 더 거대한 자본! 넷플릭스의 작품은 끊임없이 들어간다. 그리고 나 역시 다음 작품도 넷플릭스 작품을 하게 되었다.


넷플릭스 작품은 상황이나 돈이 아닌 그저 넷플릭스가 궁금해서 선택했었.(보다 더 거대한 자본으로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 ) 

하지만 넷플릭스 작품을 두 번째 하다 보니 그건 단지 보기 좋은 이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됐고, '얼마를 받아야 하나?'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지키려고 했던 제법 단단한 줄 알았던 기준/소신 역시 넷플릭스라는 거대 자본이 던진 돌 한방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이유인즉 이번 작품에서 Y의 급여는 OK인데, 내 급여가 문제가 다. 작품을 함께하는 Y는 한참이나 후배이기에 당연히 뭔가 착오가 있는 줄 알고, 넷플릭스 담당자에게 내 이력서를 확인한 건지 물었다. 그런데 지금 웬만한 국내 투자사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넷플릭스의 담당자는 Y는 전작품보다 금액을 조금 올린 거고, 나는 전작품 금액보다 많이 올려서 문제가 된단다. Y와 나는 작품은 다르지만 모두 전작품이 넷플릭스 작품이다. 그러니까 경력도 직책도 내가 더 높지만 내 급여가 Y보다 많은 건 인정할 수 없단다.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야 한다.


넷플릭스 작품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며 온갖 견적서 및 이력서를  다 받아가는 곳이 넷플릭스다. 그런 넷플릭스의 담당자가 직책/경력 같은 건 모르겠고, 전작품에 받은 금액이 무조건 중요하단다. 이게 너무 당연하게 말하니까 그게 당연한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담당자가 이상한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전 작품의 담당자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게 왜 그렇게 적게 받으셨어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전작품에서 급여를 적게 받은 게 문제가 되는 게 맞단다. 그런데 그게 넷플릭스의 기준이라면!! 전작품을 할 때 내가 Y보다 아니 넷플릭스의 다른 작품들의 실장들보다 경력이 많은데도 급여를 적게 받았을 때는 왜 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걸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다시 물었지만, 넷플릭스의 담당자에게는 그저 그때의 내 금액이 그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였던 거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지만, 생각할수록 이런 생각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넷플릭스가 던진 돌에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넷플릭스는 선발주자로서 또 다른 거대 자본(애플, 디즈니 등)의 기준이 될 텐데... 넷플릭스의 기준대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무조건 많이,  많이를 외치던 친구들이 옳았다. 지금은 지금까지의 내가 틀렸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동안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와 정면으마주해야만 한다. 점점 더 거대해질 자본의 시대에 이런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두 번째 작품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화가 나서 쓰는 글이 아니라 다음 작품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넷플릭스 작품을 하면서 깨달은 가장 큰 후회를 기록하는 거다.

지금 영화일을 하면서 얼마를 받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아라.

그냥 많이, 더 많이 받으면 된다. 그게 이 거대 자본의 시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다.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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