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뜰까요
이틀에 한번 정도 스무디를 만들어 마신다. 평소 식사로는 충분히 챙겨 먹지 않게 되는 야채를 갈아 마시다 보니, 부족했던 영양소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농무부(USDA)에서 권장하는 하루 야채 섭취량은 30대 여성 기준 2-3컵, 40대 남성은 3-4컵 정도라고 한다. 나름 야채를 자주 먹으려 노력하는 편인데도, 막상 숫자로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이다.
Myplate라는 정부 웹사이트에서는 나이, 성별, 체중, 활동량을 입력하면 개인별 권장 섭취량을 계산해준다. 나는 하루에 약 2컵 반 정도 섭취하라는 결과를 받았다.
야채나 과일도 매일 같은 조합으로 먹는 것 보다는 골고루 먹는게 좋다. 장 건강을 위해서도 섬유질이 풍부한 곡물, 과일, 씨앗류, 야채 등을 다양하게 조합해 일주일에 20-30종류를 섭취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을 “Eat the Rainbow“ (무지개를 먹는 것처럼 다양하게 먹으라)라고 말한다. 색깔이 다른 식재료일수록 함유된 영양소가 달라서, 다양한 색의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결국 가장 간단한 건강 비결이라는 것이다.
매번 준비하는 것이 번거롭지 않게 날을 잡아서 녹색 잎야채나 비트는 살짝 데쳐둔다. 잎야채는 양이 많이 줄어들어서 보관이 쉽고 냉동 보관도 편하다. 무엇보다 속이 한결 편안하다. 한 번에 갈아 마시기 좋은 양으로 소분해 착착 담아두고, 비트는 삶은 뒤에 마찬가지로 작게 썰어둔다.
스무디의 레시피를 찾아보고 테스트하는 과정은 재미있는 실험이었다. 물론 실패도 있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초코 파우더를 넣은 조합은 ‘건강한 프로틴쉐이크 맛’이라고 하던데, 우리 둘다 ‘그 프로틴 쉐이크 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남편은 인공적인 향에 예민한 편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평소엔 뭐든 잘 먹는 남편이 “이건 좀 안어울리는거 같다..”하는 걸 보면 정말 아니었지 싶다. 결국 초코 파우더가 들어간 레시피는 전부 탈락.
또 남편은(남편만) 레몬에 약하다. 나는 물에도 레몬즙을 넣어 마실 정도로 상큼한 맛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레몬을 넣은 스무디를 마실 때에는 아이처럼 눈을 질끈 감는다. 처음에는 “너무 셔?”하며 미안해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마실때 깔깔마녀처럼 (사악하게) 웃게된다. ”ㅋㅋㅋ 거기 레몬 좀 들어갔어.“ 미안하지만 레몬즙은 그냥 계속 넣기로 한다(응?)
우리 취향은 적당히 새콤 달콤한 것. 식감이 부드러운 스무디다. 아무리 영양을 위해서라도 맛있어야 꾸준히 마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워낙에 맛있는 조합을 비롯해 많은 정보가 있어서 새로울 게 없다지만 간단한 공식 안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조합을 바꾸거나 새로 만들 수도 있다. 아주 상극인 조합이 아니라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게 정답이다.
스무디 기본 공식
Liquid base: 우리는 주로 아몬드 밀크 아니면 (스무디계의 ‘육수’라는) 코코넛 워터. 100% 주스나 요거트를 써도 되지만, 주스에는 당이 많아 피하려 한다.
fresh veggie: 녹색 잎채소(케일, 시금치) 또는 브로콜리, 되직하게 만들고 싶다면아보카도를, 비트는 익혀서 사용.
fresh fruit: 단 맛이 나고 상큼한 과일(블루베리, 파인애플, 사과)를 우리는 주로 사용한다. 거기에 바나나.
fats: 아보카도, 기호에 따라 땅콩버터나 아몬드 버터나 견과류를 넣는다.
sweetner or add more flavor: 보통 과일 1-2개로 충분하지만, 더 달콤한 맛이 필요하면 알룰로스 조금, 좀 더 상큼하게 레몬즙 조금.
식사대용으로 마실 땐 프로틴 파우더나 피넛버터를 넣기도 하지만, 우리는 주로 식전에 마셔서 거의 빼고 있다. 우리가 자주 만드는 조합은 다음과 같다. 두 잔 분량으로 남편과 나눠 마신다.
코코넛 워터 300ml, 샐러리 2줄기, 파인애플 1/6쪽, 레몬즙, 사과 1/2개 (애플민트는 선택)
아몬드 밀크 400ml, 비트 100g, 블루베리 150g, 케일 1-2장, 레몬즙, 아보카도나 바나나 반개, 필요시 알룰로스 조금
코코넛 워터 300ml, 케일2-3장, 데친 시금치, 아보카도 반개(옵션), 바나나 1개, 사과 1/2개
나는 화장실을 잘 못가는 편이라 스무디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겉보기엔 늘 평온해 보인다지만 속이 시끄러운 스타일이라 변비를 달고사는 체질이다. 여행을 가거나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화장실은 감감무소식.(신혼 초엔 남편이 집에 있을 땐 큰일도 못봤더랬다!) 남편은 유난스러운 나 때문에 같이 고생이지만, 그래도 야채를 떨어지지 않게 사다주고 스무디도 꾸역꾸역- 아니, 꿀떡꿀떡- 마신다. 그리고 그 컵에 물까지 받아서 발우공양하듯이 깨끗이 비운다.
“비트가 여자 몸에 좋다고 하네”라고 넌지시 말했었다. “비트 스무디 마시고 임신 성공한 사람들이 있어서 삼신할매 스무디라고 부르더라”면서 작명센스가 웃기지 않냐고 했다. 그렇다. 이 스무디로 지지고 볶고 하는 데는 우리 둘다 좀 더 건강한 몸으로 준비되서 임신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삼신할매요- 우리도 비트 스무디 열심히 마시고 있는데 건강한 아가 하나 점지해주쇼.’
결혼한지 6개월, 신혼이라 ’아직 좋을 때‘라고들 하지만 우리 둘 다 나이가 있다보니 마음 한켠에 조급함이 스멀스멀 찾아온다. 근처 Fertility Clinic(한국에선 ‘난임센터’라고 부르지만, ‘어려운 임신’이는 뉘앙스 대신에 생식/출산을 뜻하는 Fertility가 더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쓴다)에 예약을 하고 검사를 진행중이다. 다행히 근처에 평판 좋은 클리닉이 있고, 지금 직장 보험도 커버리지가 좋아서 재정적 부담이 없이 진단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에선 의사와의 면담, 피검사, 나팔관, 난자와 정자 상태 검사 등이 각자 다른 기관에서 각자 예약해야 해서 번거롭지만, 그래도 하나씩 진행 중이다. 남편이 어느 날 세일하더라며 주먹 두개만큰 큰 비트를 건낸다. 조용히 마음을 보태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 스무디 한 잔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우리 둘의 기다림을 담는 시간이 된 것도 같다. 지난 몇 달간 ‘이번에도 아니네’하며 시무룩해질 때도 있었지만, 또 기다려본다. 노력과 기다림 끝에 어느날 불현듯 나타나는 선물처럼, 언젠가 우리에게도 무지개가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