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나 화산 선셋 투어
시칠리아인에게 동부에 우뚝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에트나 화산이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시칠리아의 영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에트나를 빼고 시칠리아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름다운 삶으로 충만한 시칠리아의 바닷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죽음과 생명의 경계선상에 있는 지대. 그래서 더욱 인간을 매혹한다.
<이탈리아 남부여행> 민혜련
에트나를 빼고 시칠리아를 이야기할 수 없다. 나폴리에 베수비오가 있다면, 시칠리아인들의 마음에는 에트나가 그런 상징적인 존재이다.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으로 5개의 분화구에서는 끊임없이 증기와 가스가 분출되고, 용암이 부글부글 끓는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에트나를 'La Signora 여인'이라고 부른다. 여자의 마음처럼 기복이 심하고, 마음을 알 길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위험한 존재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에트나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개별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고, 투어를 신청해서 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오후 반나절 동안 에트나를 둘러보는 선셋투어를 하기로 했다. 가격은 일인당 60유로였고, 이 가격에는 카타니아에서 1시간 동안 밴으로 이동하는 차량비와 가이드 투어가 포함되었다.
우리는 오후 3시에 카타니아 광장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그는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였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단정하게 정리된 수염에 첫인상은 다소 근엄해 보였는데, 웃을 때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보였다. 너무 수다스럽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는 유머감각이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시작이 좋다.
우리는 다른 6명과 함께 투어를 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온 커플, 미국 애리조나에서 온 아빠와 아들, 벨기에에서 온 커플이 그들이다. 우리가 탄 밴은 한 시간을 달려 에트나의 밑자락에 도착했다. 먼저 이곳에서 용암 동굴을 탐험하는 일정이었다. 가이드는 헬멧과 손전등을 나눠주며 동굴 안은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서 두 발자국 정도 떼었을 뿐인데, 암전 된 듯 칠흑같이 깜깜하다. 손전등을 켜자 우리를 둘러싼 검은 벽이 보이고, 천장에서는 물이 고였다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동굴 벽을 손으로 만져보라고 한다. 울퉁불퉁 거친 표면에 움찔하는 우리에게 “이 표면이 한때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부글거렸을 용암"이라며 용암의 다른 형체로의 물체감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동굴에서 나와 다시 차를 타고 15분을 더 달려 드디어 분화구를 볼 수 있는 베이스캠프로 갔다. 도착하자 알프스 산맥의 산장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다. 이 2층 건물 안에는 식당과 화장실, 편의점이 있어서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어준다고 했다.
베이스캠프 주변에는 지금은 활동하지 않은 작은 분화구들이 널려있었다. 사람이 만든 건물과 자연이 만들어낸 분화구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보다 햇빛에 따라 흙의 색과 광채가 달라지는 걸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잿빛이 그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분화구 안에는 듬성듬성 식물과 꽃이 자라나 있다. 황량한 이곳에서 잘도 피어났구나, 하고 대견스러워진다.
더 큰 분화구를 보기 위해 좀 더 위로 올라가기로 한다. 단단히 다져진 바닥이 아니라, 모래사장을 걷듯 발이 푹푹 빠져서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곳은 종아리까지 발이 빠져 등산화 안으로 까만 모래가 가득 들어찼다. 모두들 ‘이건 극기훈련이야’라며 불평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까만 모래를 헤치며 걷는 일이 즐거운 얼굴이었다.
더 높은 곳에 다다르자 산 너머의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휑한 화산과 대비되는 푸르른 숲과 알록달록한 집들이 보인다. 이 풍경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잿빛과 푸르름의 대비, 죽음과 생명의 경계선,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이 만든 것의 대비 같았다.
가이드는 에트나는 잦은 폭발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어왔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관광산업과, 화산재가 만들어낸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으로 농업이 발전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 지역 과일과 야채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아닌게 아니라, 얼마 전에 나도 에트나 중턱의 와이너리에서 만든 에트나 레드와인 Etna Rosa을 마셨는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렇게 보면 에트나 화산과 시칠리아인의 관계는 재앙이자 축복인 복잡한 관계, 마치 중독적인 연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의 분화구를 더 둘러보고서, 일몰을 감상할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투어 그룹들도 와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갑자기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선셋을 감상할 때 꼭 필요한 것이라며 무언가를 꺼내 보여주는데, 그건 시칠리아산 와인이었다! (만세)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가이드가 돌아가며 컵에 한 잔씩 따라주었다. 우리는 짙은 어둠으로 성큼 멀어져 가는 해를 향해 ‘치어스’를 외쳤다. 와인은 달고, 과일향이 났다.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며 서로 섞여 말을 나눌 동안, 가이드들은 다들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생김새도 저마다 다른데, 신기하게도 서로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들 ‘건강한 에너지’를 뿜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체육관에서 웨이트를 반복해서 들어 올리며 키운 근육이 아니라, 자연에서 와일드하게 살아가며 만들어간 생활근육을 가진 사람들. 햇볕을 쬘만큼 쬐고, 산을 오를만큼 오르며, 심장과 폐를 일하게 만든 만큼, 나쁜 생각도 쉽게 흘려보내고, 좋은 생각은 마음에 잘 담아두기도 한 것 같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카타니아로 돌아왔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고작 6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인데, 미지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며 동지애가 생긴건지 헤어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하루를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오래 망설이다가 마지막에 신청해서 가게 된 투어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에트나 화산을 실제로 보았을 때, 두려움보다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컸다. 이런 경험을 하고나면, ‘생명력’이라든가 ‘경이로움’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더이상 개념에 머물지 않고, 실체를 갖고 다가온다. 화산재로 덮인 메마른 땅에서 피어난 노란 꽃이라든가, 한때 용암이 들끓었던 분화구 안으로 걸어들어가서 올려다본 하늘처럼.
무엇보다 활기찬 사람들과 함께여서 좋았다. 긴 여행에 조금 지쳐가던 나는 오늘의 기운으로 다시 남은 날들을 잘 보낼 힘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