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만원의 행복 Ep.3

버마 티 하우스

by 소도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곳들을 많이 봤지만, 뒤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버마(=미얀마)와 스리랑카를 꼽을 것이다.


두 곳 모두 열흘정도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만, 아직도 그곳에서의 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녀본 그 어떤 여행지와도 다른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도 선하고 순박한 눈을 하고 있어서, 여행 내내 마음이 이상하게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다. 장사꾼처럼 무언가를 바라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꾸미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 순수한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두 나라 모두 안타까운 정치적 상황에 대한 뉴스를 보면 마음이 안 좋다. 그중에서도 직접 와닿는 변화는 최근 미얀마 군사 정부의 쿠데타 이후 치앙마이에는 버마에서 넘어온 난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핑강 근처를 지나는 길에 ‘진메 티 하우스’ Zinmè Tea House(ဇင်းမယ်တီးဟောက်စ်) 라는 곳을 발견했다. 태국어보다 더 동글동글한 글자를 보고 바로 버마어라는 걸 알았다. 구글지도를 찾아보니,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버마 티 하우스였다. 전통 티 하우스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모던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버마를 여행하면서 티 하우스에서 맛있게 먹었던 달콤 쌉싸름한 밀크티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버마의 밀크티는 태국 밀크티와 대만 밀크티와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쌉싸름한 뒷맛이 다르다고 할까. 그리고 크리미함이 더 진해서 꾸덕함마저 느껴진다.


사진 출처: @zinme_teahouse


버마의 티 하우스에 가면 밀크티의 종류가 수 십가지가 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 연유와 우유, 그리고 차의 세 가지의 농도를 다르게 조절해서 취향에 따라 골라마실 수 있다. 진메 티 하우스에서는 그중에 대중적인 것으로 4종류의 밀크티를 팔고 있었다. 보통 티 하우스에는 밀크티 외에도 간단한 요기거리 - 커리와 난, 누들이나 밥류 - 도 함께 판다. 우리는 두 가지의 티를 고르고, 음식으로는 병아리콩 밥과 커리와 난, 그리고 누들 샐러드를 골랐다. 땅콩 오일을 써서 만들었다는 고소한 병아리콩 밥과, 새콤한 누들 샐러드와 매콤한 커리와 난의 조화로움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여기에 따끈하고 고소한 밀크티를 곁들여 먹으니 환상적이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손님들이 버마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한국사람들이 해외에서 한국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시켜서는 한술을 뜨고, “아, 이거지!”하며 감동한 눈으로 온몸이 녹아내리는 시늉을 하는 것처럼, 주변 손님들도 익숙하고 정겨운 음식 앞에서 저마다 감동의 의성어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이 재밌으면서도 왠지 짠했다.


집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의 허기가 느껴졌다. 그들을 보듬어 줄 가족과 친구는 멀리 있지만, 이곳에서나마 익숙한 음식으로 온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일주일간 힘들게 일을 하면서, 이 작은 공간에서 위안을 기다리며 한 주를 견디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주문을 받아주던 젊은 청년이 음식이 어땠는지를 묻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도인 양곤에서 건축가로 일을 했고, 치앙마이에 프로젝트가 있어서 2년 전 출장으로 왔다가 결국 정치적 상황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건축가로 일하지 않고, 티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버마 난민을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버마 전통 옷인 롱지(긴치마 같은 패브릭을 허리에 둘러 입는 남자 전통의상)를 입고, 늘 세상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우리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언제나 “밍글라바 မင်္ဂလာပါ" 하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치앙마이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버마의 작고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조금 뭉클하고 또 조금 마음이 아리다.


오늘의 지출: 병아리콩밥(60밧)+커리와 난(80밧)+누들 샐러드(60밧)+밀크티(40밧*2) = 280밧(대략 만원)


@zinme_tea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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