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와 인생의 평행이론
신기하게도 한 번도 스포츠 경기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야구경기를 보는 걸 좋아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고, 대학 때는 매년 중요한 대항전이 있어서 농구나 야구를 보러 가서 신나게 응원가를 불러댔지만, 정작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야구와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에게 같이 보자고 권유하는 타입이 아니기도 하고, 혼자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특히나 미식축구는 결국 자기편 골대의 반대편에서 조금씩 공을 옮겨가면서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격렬한 몸싸움을 하면서), 결국에는 자신의 골라인으로 공을 넘겨 득점(터치 다운)을 하는 게임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경기 자체가 상당히 심플하면서 바보스럽다고까지 생각했다.
여느 날처럼 남편은 풋볼시즌이라 이른 아침부터 경기를 보고 있었고, 나는 지나가면서 힐끗힐끗 화면을 보게 되었다. 점수로 보면 그의 팀이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었는데, 상대편의 팀의 차례가 되어서 그들이 플레이를 시작하고 경기를 하다가 뭔가 잘 풀렸는지 상대편 선수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좋아하고 있었다. 분명 터치다운을 한 것도 아니고, 역전이 된 것도 아닌데, 뭐가 저렇게 좋은건가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지금 그들이 하나의 플레이를 성공했거든.”이었다.
그러니까 그 플레이를 하나 성공했다고 해서, 당장 득점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직 10점도 넘는 점수차로 지고 있다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골라인으로 가기 위한 작은 스텝이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뭔가 ‘아-’하는 순간이었다. 스포츠가 인생을 닮았다는 클리셰한 말을 그 순간 이해했던 것 같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한참을 떨어져 있더라도, 심지어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더라도, 작은 성취와 성공에 자축하고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그게 성공을 하거나 안하거나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풋볼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시차가 안 맞을 때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경기를 보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경기를 보면서 나는 일상의 에너지를 얻는다. 엄청난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이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초인적인 에너지에 감탄한다. 무기력한 날 경기를 보면, 지치지 않고 100% 힘을 쏟아부어서 아주 조금씩 골라인에 가까워지려는 공격팀에 몰입하게 되고, 나도 이럴게 아니라 정신 차리고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일이 잘 안 풀리고 세상이 나를 가로막는 일들만 일어나는 것 같다고 느끼는 날에는, 우리 팀이 터치 다운까지 가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상대편의 수비팀과 맞서 싸워야 하는지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 인생이란 게 다 맞은편 수비팀을 헤치고 나가는 일이겠지, 생각하면 마음의 위안이 된다.
힘내. 할 수 있어,라는 두리뭉실한 희망적 메세지보다 이 격렬한 풋볼경기에서 나는 더 구체적인 희망과 용기의 메세지를 얻는다. 경기의 흐름이 내 편이 아닐 때조차, 치열하게 시도하는 용기와 강인한 마음, 그리고 결국은 이기고 지는게 전부일지도 모르는 스포츠이지만, 경기를 하는 순간만은 지금 시도하는 한 플레이, 그것만 보고 가는 것. 그게 이기는 게임이 될지 아닐지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하는 플레이에 있다는 마음. 이런 구체적인 삶의 매뉴얼이 이 작은 경기 안에 담겨 있다.
그게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 앉게 되는 이유다. 풋볼은 나의 자양강장제이자 힐링 심리치료의 종합 패키지인 셈이다.
사진출처 Unsplash, N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