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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Jan 15. 2024

어느 대학원생의 고백


지난 학기는 매일매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매일 마주하는 내 한계에 실망스러운 날들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다.


그래도 책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에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앞으로는 아마 다시없을)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스스로 자주 되뇌었다.


읽는 사람  

클래식한 영국적 표현 중에 하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다는 말을 I majored in ___라고 하는 대신, I read ___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I read history는 역사책을 읽는다가 아니라, 역사를 전공한다는 의미이다. 다소 고전적인 표현이지만, 옥스퍼드나 캠브리지에서는 여전히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을 종종 본다.


이처럼 영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읽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학원의 Taught Program은 일주일에 한 과목당 수업은 50분 정도에 그치고, 개별적인 리딩을 하고 나서 소규모 워크샵에서 2시간 동안 토론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20명 이내의 작은 워크샵이기때문에 읽은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읽은 것들을 소화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만들고, 그다음엔 워크샵에서 쫄지 않고 발표하는 연습이었던 셈이다.


학술 영어는 그 누구의 모국어도 아닙니다.


대학원을 처음 시작할 때 한 교수님이 말하셨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우리가 공부하는 자료가 영어라는 사실에 심리적 부담을 느끼겠지만, 이거 하나를 기억하세요. 학술 영어는 그 누구의 모국어도 아닙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조차 어떻게 읽고, 쓰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누구든 비슷한 출발선에 있는 거예요.”


그때는 그 말이 이렇게나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몰랐었다.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수업에서 읽어야 했던 저널들은 몇 번을 읽어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글들이었다. 이때 내 언어 실력을 탓하고 싶다가도, 그래 이건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야라고 그 말을 상기시키면 마음이 좀 편했다. 나 혼자의 어려움이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되는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8시간이라는 마법

공부를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과연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오래 앉아있을 수 있을까,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알고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어린 학생들은 보통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한다고도 했지만,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집중이 안 되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공부량이었다. 나는 소신껏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자라는 마음으로 아침 9시부터 대략 저녁 6시까지 8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막상 해보니 자발적으로 하루에 8시간을 공부한다는 건 쉽지가 않았다. 하루에 보통 2-3시간의 수업과 워크샵이 있으니 그다음은 다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는데, 날씨가 좋으면 잔디에 누워있고 싶었고, 날씨가 궂으면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날, 그렇게 하루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학기 초반의 일이었고,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거의 매주 내야 하는 과제를 해내려면, 농땡이를 칠까라는 마음을 먹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능동적으로 공부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예전에 대학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1년간의 안식년이네. 잘 놀다 와- 하는 부러운 마음이었는데, 정말 그땐 뭘 몰랐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는 훈련을 하고 나서 하나 깨달은 건, 착실히 하루에 8시간을 쏟아부으면,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을 어찌어찌 해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기한안에 써낼 수 있을까 싶었던 엄두가 안나는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심적 부담으로 압도되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끝낼 수 있을지까지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는 오늘 8시간 앉아서 할 만큼만 한다 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씩 진도를 나가면 신기하게도 갈 길이 조금씩 보였다.


인상 깊었던 어느 수업

학교에서 친해진 몇 명의 친구들 중에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들은 대만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다수의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 외부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중국과 대만 사이의 본질적인 정치적 텐션 때문에 나보다도 더 겉돌았다. 중국인 친구들은 나에게는 살갑게 다가와서 한국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본다던가 하는 관심을 보이지만, 대만 친구들에게는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들과 말을 섞는다는 건 양쪽 모두에게 본질적으로 복잡한 문제였다. (중국인들은 대만을 자신의 종속국으로 생각하지만, 대만은 중국과 별개의 독립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대만인'으로 부르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15명에서 20명 정도의 소수 정예로 토론수업이 주를 이루는 대학원 수업에서 이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우리가 읽은 것들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내야 하는데, 대만친구들은 자신의 경험의 바탕이 되는 배경인 대만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말의 정치적 민감성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이 중국 학생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워크샵에서 침묵을 택했고, 나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늘 마음이 쓰였다.


어느 날, 우리는 각자 준비한 케이스를 취합해서 팀으로 발표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 팀에서 대만 친구의 케이스를 들어보니 우리 중에서 가장 주제에 적합하고, 의미 있는 발견을 담고 있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친구의 케이스를 발표하자고 설득했고, 처음으로 그 친구가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발표 후에 대만 친구가 교수님께 칭찬까지 받아서 너무 뿌듯했다.


그날 저녁, 대만 친구에게 아주 긴 장문의 문자가 왔다. 영국에 와서 이방인으로,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로 사는 일은 사실 너무 힘들었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 매 수업이 좌절의 연속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너에게는 어쩌면 평범한 수업이었을지 모르지만, 너의 배려로 정말 기억에 남는 수업이 되었다고 말이다. 왠지 이 글을 울면서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뭉클한 메시지였다.


감히 너의 힘듦을 전부 헤아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니가 힘들 때 언제든 같이 핫쵸코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답을 했다. 의도적인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수업이었다.



이탈리아 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그가 가르친 학교의 학생들을 위해 쓴 <눈문 쓰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고되지만 많이 읽고, 철저하게 분석해서 쓴다면 어떤 주제 안에서도 학계에 의미 있는 지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내가 여기서 얻고자 하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무엇을 배우는지 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를 하루에 8시간만큼 쪼개어 감당해 내는 일의 연습, 읽다가 보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을 포기하지 않고 읽어내는 것, 나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쫄지 않고 발표를 하는 것 말이다.


다음 학기는 오후 3시면 해가 지는 긴 겨울을 지나게 될 텐데, 어떻게 우울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남을까가 관건이다. 와인과 라면, 과자 등등 뭐 이런 것들에 기대어 어쨌거나 잘 헤쳐나가 봐야겠다.


학교 앞 한 서점 앞에서 매일 앉아있던 강아지. 이 녀석을 만나서 한참을 쓰다듬어 주는 일이 가장 즐거웠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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