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잘 쓰는 법
“어떻게 하면 대사를 잘 쓸 수 있나요?”
수 천 번 아니, 수 만 번 들어본 질문이고, 앞으로도 계속 들어야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하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뒤돌아서 그것을 흉내를 내 보세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망치, 얌체, 촉새 등의 별명으로 짓고 쓰시고, 나중에 이름으로 바꾸세요. 그 인물 안에 들어가서 쓰세요.
심지어, 이런 대답을 하는 작가도 있다. 대사 빨은 타고 나는 겁니다.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나쁜 년!). 물론 대사력을 늘리는 것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매일 말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대사라는 형식에 담으려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 속의 대사는 작가 혼자만의 말만이 아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상과 철학, 가치관을 각기 다른 어투로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사는 실제 우리가 하는 말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하고, 또한 간결해야 하면서도 분명한 감정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사를 잘 쓰는 것은 왜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대사에는 글자 그대로의 뜻인 메인 텍스트 외에 숨겨진 의도와 감정 등을 총칭하는 서브 텍스트가 풍부하게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대사 = 메인 텍스트 + 서브 텍스트
초보 작가들은 메인 텍스트를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쓸까에 대해 고민하지만, 노련한 작가들은 서브 텍스트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서브 텍스트를 잘 쓰는 작가야 말로 정말 대사를 잘 쓰는 작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즉, 요란한 수다를 잘 쓴다고 해서 대사를 잘 쓰는 것은 아닌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습관적으로 메인 텍스트로만 구성하는 시퀀스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브리핑 시퀀스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빔 프로젝터에 피피티 화면을 띄워놓고, 신제품도 설명하고, 향후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심지어 범인 얼굴을 띄워놓고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때 시청자들은 교육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공부나 하려고 보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티브이를 보는 사람은 채널을 바꾸고, 오티티를 보는 사람은 ‘FF’를 누를 확률이 매우 높다(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나가고 싶은 충동은 느끼지만 정작 나가지는 않는다).
정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교육적이기 때문에 스토리 콘텐츠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쉬려고 보는 것인데 주입식 공부를 시키니 누가 좋아할까.
그래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쓸 때는 적절하게 서브 텍스트를 담아서 대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서브 텍스트는 사람의 뇌를 능동적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대사를 통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간파하게 되고, 그 감정에 동조하게 되고, 응원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뇌의 능동적인 활동이야 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스토리 콘텐츠를 즐기고자 하는 목적이고 이유인 것이다. 즉, 사람들은 책,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서브 텍스트를 읽고 싶은 것이다.
연로하신 어머니나 할머니와 함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분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서브 텍스트를 연신 찾아내서 중얼거린다. 재네들, 좋으면서 싫다고 하네, 저 에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저런 쳐 죽일 놈! 등등, 그들은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이야기에 반응을 한다.
바로 서브 텍스트의 힘이다.
딘 쿤츠의 <베스트셀러 쓰는 법(How to write best-selling fiction)>을 보면 서브 텍스트의 중요성을 제임스 클라벨의 소설 <쇼군>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제임스 클라벨은 <쇼군>에서 일본의 차 마시는 예법인 다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었다. 독자들에게 일본에 대해 이해시키는데 다도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차를 마시는 법도는 매우 복잡해서 독자들이 읽다가 책을 덮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차 마시는 법 자체가 매우 교육적인 메인 텍스트 아닌가.
제임스 클라벨은 고민하다가 결국 묘안을 생각해 냈다. 적과 적이 자기 군사를 이끌고 벌판에서 만나 전쟁을 막 시작하려는,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두 장군이 중간 지점에서 만나 차를 마시는 장면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긴장감이 절로 흐르는 그 상황에서 장군과 장군이 나누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서브 텍스트가 충만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저 놈이 내 차에 독을 타지는 않았을까? 지금 흉계를 꾸미는 것은 아닐까?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듯하군. 등등.
이런 서브 텍스트가 장군들이 나누는 대사에서 흐르면서 슬쩍슬쩍 일본의 다도가 들어갔을 것이다. 가령, 이런 식으로.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손님을 접대하는 정성이지만 그 둘 중 하나는 지금 눈앞에 놓인 차가 그의 인생 마지막 차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찻잔을 드는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책의 독자들은 자신이 지루한 일본의 다도에 대해 참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소설을 술술 읽어 내려갔을 것이다.
서브 텍스트는 오해로 인한 코믹한 상황도 만들 수 있는데, 필자가 오래전에 쓴 극본에서 한 부분을 가져와 보겠다. <내 아내는 강력계>란 작품으로 경찰 교통계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아내가 남편 몰래 강력계 형사로 활동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었다.
아내의 힘든 강력계 생활로 인해 가정에 소홀해 지자 실직자인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게 된다. 약속을 까먹고 못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애 낳고 알콩달콩 재밌게 살자고 해놓곤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멀리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결혼기념일이었다), 아내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 핸드폰도 꺼놓고 외박을 하고... 실직 상황이 길어져 자격지심이 심해진 남편은 옷 서랍을 정리하다가 피임약을 발견하곤 아내의 불륜의 증거라도 잡은 양 머리꼭지가 돌아버리게 된다.
임무를 마친 아내가 피곤에 쩔은 상태로 돌아오고, 그런 아내를 남편은 포장마차로 다짜고짜 끌고 간다. 아내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들켰다고 생각한다.
# 포장마차
기태, 소주를 맥주잔에 따른 후 단숨에 마신다. 빈병이 하나 있는 걸로 보아 두 병을 그렇게 마신 듯...
수진, 미안한 감정으로 바라본다.
수진 미안해...
기태 (퉁명스런) 뭐가?
수진 아까 케잌.... 봤어.
기태 (어이없다) 야... 내가 그런 거 땜에 그러는 거 같아?
기태, 수진을 노려본다....
수진, 똑바로 못 보고 힐끗거리다 슬그머니 눈꼬리를 내린다.
수진 (체념하듯) 알고 있었구나.
기태 (절망의 한숨)...
수진 미안해.
기태 다 내 탓이지 뭐. (술을 따르며) 내가 오죽
못났으면....
수진 아냐... 아냐... 그래서 그런 거...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야.
기태 (술잔을 부르르 떨며) 뭐라고? (감정을 억누르며)
저, 정말...
수진 (눈치 보며) 근데.. 어떻게 알았어?
기태 (냉소적으로)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래, 도대체
얼마나 됐어?
수진 얼마... 안 됐어.
기태 그래... 얼마 안 됐다.... 얼마 안 됐으면... (잔을 쾅!
내려놓으며) 용서가 되는 줄 알아? 누굴 바보로
알아? 엉?
수진 (주위 둘러보며) 이러지 마... 미안하다잖아.
기태, 품속에서 피임약을 꺼내 수진 앞에 팍! 내려놓는다.
수진 (깜짝... 이내 체념).... 미안해... 아이가 생길까
봐...
분노로 입술을 깨물고 있던 기태, 술을 단숨에 마셔버린다.
기태 그래... 그래서 피임을 했던 거였구나, 어? 맘껏
즐기려고.
수진 (영문을 모르겠는) 그게.. 무슨...?
기태 (비틀거리며 일어서서는... 싸늘하게) 우리
이혼하자.
수진 (충격으로) 자기야...
서브 텍스트가 읽히는가?
린다 시거는 <서브 텍스트(Writing Subtext)>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는 관객들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끔 서브 텍스트를 써야 한다. 관객들이 한 줄의 대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단어를 고르고 행동을 묘사해야 한다.’
많은 작가들이 초고에서는 메인 텍스트 위주로 작업을 한 뒤 수정을 할 때 서브 텍스트를 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든 초고는 쓰레기’이지만 퇴고와 퇴고를 거듭하면서 서브 텍스트가 풍부한 수작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메인 텍스트인 대사 한 마디 없이 서브 텍스트만으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고, 대개 그런 장면은 명장면이 될 확률이 매우 놓다.
이 바닥에 이런 말이 있다. 대사는 상황이나 동작, 표정 등으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때 쓰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그만큼 대사를 쓸 때는 절제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포스터
<첨밀밀>의 한 장면을 보자.
<첨밀밀>은 소군(여명)과 이요(장만옥)가 서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10년에 걸쳐 운명적으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이야기다.
중반부에 그 둘은 다시 만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지만 서로 확인을 못한 상태로 차를 타고 이동을 하게 된다. 소군은 결혼할 여자가 있고, 이요도 남자가 있는 상태. 서먹서먹한 그런 차 안의 상황에서 무심결에 음악을 틀었더니, 그들이 너무나 좋아했고, 심지어 그 둘을 연결시켜 줬던 국민가수 ‘등려군’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서로의 감정이 들킬까 황급히 음악을 끄는데...
이번에는 길에서 등려군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소군은 차를 세우고, 충동적으로 등려군에게 달려가 사인을 받는다. 아마도 그대로 차에 있었다간 감정을 들킬까 봐 그랬으리라. 서로가 분명 감정은 있지만 서로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 이요는 등려군에게 사인을 받는 소군을 보면서 마음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래서 소군이 차로 돌아와서 등려군 사인을 받았다고 자랑하자 좋아해 주며, 여기서 소군을 내려주고 돌아가야겠다고 말한다. 물론 본심이 아니다. 소군은 아쉬워하면서 알았다며 걸어간다. 소군과 이요 모두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싶지만, 속절없이 그 둘은 멀어지고 있는데...
자, 이 상황에서 둘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군이 차로 달려와 이요와 키스를 한다는 신을 써야 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쓸 것인가?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다수는 차 안에서 이요가 소군을 부르거나, 소군이 가다 말고 돌아와 ‘사실은 아직도 너를 좋아해’, ‘나도 나도.’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을 쓸 것이다.
하지만 내공이 있는 작가는 이런 클라이맥스에서 그 따위 흔해 빠진 메인 텍스트로 극을 망치지 않는다. 실제 영화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자.
속절없이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군과 이요는 서로가 불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요는 괴로운 마음에 핸들에 얼굴을 파묻는데... 빵, 하고 클랙슨이 눌러진다. 깜짝 놀라는 이요. 그 소리를 들은 소군은 이요가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하고 돌아서곤 다가온다. 네가 불러주길 바랬어. 한편, 이요는 돌아오라고 한 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지만, 이내 사실은 네가 돌아오기를 바랐어하는 표정으로 소군을 맞이한다. 차 안과 밖에서 서로를 잠시 바라보던 그들은 드디어 키스를 하는데...
메인 텍스트 하나 없이 서브 텍스트만으로 표현한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포스터
시간을 두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스토리라는 공통점을 가진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를 보자.
서로에게 첫사랑인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와 아오이(진혜림)는 오해로 인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다 그들이 만난 지 10년이 되는 해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면서 서로가 아직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곤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 피렌체 거리
준세이와 아오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준세이 그 사람은? 마빈은 잘 지내?
아오이 엘에이 본점을 맡게 됐어.
준세이 그럼, 지금은 엘에이에 살겠네?
아오이 (끄덕이는)....
준세이 언제부터?
아오이 2년 됐어.
준세이 그렇구나. 오늘을 위해서 일부러 엘에이에서 온
거야?
아오이 .....
준세이의 마지막 질문에 아오이는 대답을 안 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시청자로 하여금 추측을 하게 만든다.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엘에이에서 날아왔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아오이가 대답을 못한 이유는 마빈과 엘에이에서 살지 않고, 현재 밀라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준세이는 둘의 동거를 전제로 대화를 하고, 아오이는 그걸 알면서도 준세이가 오해를 하도록 대답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가 대사를 쓰면, 시청자는 마빈과 엘에이에서 살면서도 전 애인이 그리워서 날아온 것처럼 오해를 하게 된다.
준세이 이거 큰 일이네. 이제 뭘 할지 아무 계획도 안
세웠거든. 현실은 더 비참할 거라 생각했고 혼자 기
다리다가 혼자 돌아가려고 했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지금 난처해. 정말로 올 줄은
몰랐거든.
아오이 내가 괜히 왔나 보네.
준세이 그런 뜻은 아니야.
아오이 난처해하고 있잖아.
준세이 그냥 혼란스러운 거야. 혼란스럽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아오이 괜찮아. 나도 마찬가지니까. 나도 네가 정말로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어. 여기 사는 친구가 있어서
놀러 온 거야. 여기는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들러본
거고. 그게 다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몇 년도
더 된 약속을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준세이 난 기억하고 있었어.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아오이 ....
준세이와 아오이는 밀당을 하고 있다. 준세이는 확실히 당황한 것 같다. 올 거라는 기대는 했지만,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말에 아오이는 부담 갖지 말라는 식으로 맘에도 없는 말을 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아오이는 준세이가 꼭 올 거라 생각하고 이벤트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한다. 왜? 준세이의 진심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다 우연히 생각나서 온 걸 지도 모르니까. 그러자 그동안 우유부단함을 보여줬던 준세이가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난 기억하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마지막 아오이의 말없음은 감동 때문이다.
<첨밀밀>과 <냉정과 열정 사이>를 리뷰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두 영화 모두 남자 주인공이 우유부단하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우유부단하면 연애가 잘 진척이 되지 않고 비비 꼬이며 생고생을 하는구나 하는 통찰이 새로 생겼다.
아무튼 작가는 메인 텍스트를 쓰면서 서브 텍스트를 어떻게 가미할 것인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하면 대사를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하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극본을 구한 뒤 연필로 필사를 하는 것이다. 필사는 극단적으로 느린 독서이면서 완벽한 독서다. 씬 번호와 지문은 굳이 쓸 필요는 없다. 대사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서브 텍스트를 느끼라는 것이다. 분명 눈으로 후루룩 읽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다.
이런 연습을 하게 되면 서브 텍스트를 요리하는 방법이 몸에 밸 것이고, 분명 더 나은 대사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그 대사들을 키보드로 치는 행위는 하지 않기 바란다. 그것은 작가의 길이 아니라 타이피스트의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