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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Mar 11. 2024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26

영웅서사로 2막과 3막의 분석1

정말 오랜만에 <공.당.극> 시리즈를 이어간다. 


미안하다. 

내가 죽을 죄를 졌다. 

근 한 달 동안 새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는 무려 한 달 반이나 못 올렸다. 

변명하자면, 그 동안 작가라는 본업에 충실하느라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미니 시리즈 2막과 3막을 분석한다는 어마어마한 일이 감당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기도 했다. 1막 분석은 보통 1회나 2회만 보면 되지만, 2막과 3막 분석은 미니 시리즈 나머지 회차를 다 들여다 봐야 하는지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 글을 사랑해주고 기다려 주는 많은 망생이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심기일전해서 이렇게 다시 공단극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서 이전 글인 '2막을 영웅서사로'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 썼다라. 이토록 훌륭한 작법 매뉴얼이라니! 아마도 당신은 그 글을 읽고 받은 폭풍 감동으로 말미암아 내 다음 글을 애타게 기다렸을 텐데... 

그래서 더 미안하다.  


다시 한 번 사과한다. 


그리고 바로 시작한다. 


우선 이 글을 읽기 전에 앞으로 가서 '1막을 영웅서사로'부터 쭉 읽어보고 오기 바란다. 아마 당신은 상당부분 잊어버렸을 것이다. 작법책은 읽고 또 읽어 뇌에 새기고 몸에 육화시켜야 실제 집필할 때 작법 테크닉이 부지불식간에 발휘되는 것이다. 내 글을 다시 읽어 곱씹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아마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2막을 영웅서사로'는 '2막과 3막을 영웅서사로'로 바꾸면서 보강을 했다. 2막과 3막을 분리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통으로 이어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단 판단 때문이었다. 따라서 다른 건 안 읽어도, 이 글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2막과 3막을 영웅서사로'를 읽고 오기 바란다. 


자, 그럼... 슬슬 구라를 풀어 보겠다.  


영웅서사에서의 1막은 <보통세상 - 모험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 - 첫관문 통과>이며, 재미있는 스토리는 대부분 이 법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다고 했고, 또한 그것이 어떻게 작품 속에서 구현 되었는가를 실례를 들어서 설명했었다. 


그런데 2막으로 넘어가면서 약간 브레이크가 걸린다고 했다.   


영웅서사에서 2막은 <친구, 적, 시험 - 심연에의 접근 - 시련 - 보상 - 귀환의 길> 이렇게 1막처럼 다섯 단계이고, 3막은 <부활 - 영약을 갖고 귀환> 이렇게 두 단계이다. 근데 2막의 첫번째 단계인 '친구, 적, 시험'은 분량적으로 너무 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특히 미니 시리즈의 경우, 이 부분이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길다. 근데 한 단계로 설명하다니! 


보통 3막 구조를 설명할 때 비유로 드는 것이 물고기이다. 1막이 머리, 2막이 몸통, 3막이 꼬리, 이런 식으로. 여기서 2막 몸통의 맛이 그 물고기의 맛인 것이다. 영화 같으면, 이런 3막 이론이 딱 떨어진다. 대부분의 스토리가 이 물고기 모양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니 시리즈는 이런 평범한 물고기에 비유할 수가 없다. 가운데가 무지 길게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물고기에 비유하자면, 미니 시리즈는 장어이다. 머리와 꼬리가 짧지만, 몸통은 무지 긴 장어 말이다. 


장어에 비견되는 미니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친구, 적, 시험'이 차지한다. 여기가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고, 맛있는 부분이지만 많은 영웅서사를 다룬 대부분의 책들은 이 부분에 대해 충분한 고찰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긴 부분을 몇 단계로 나눠서 공식으로 만들어 주면 좋았겠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 일타 이기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망생이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내 글을 추앙하면서 읽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친구, 적, 시험' 부분을 잘 요리할 줄 알아야, 당신이 진정한 스토리텔러로 거듭날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이어지는 분석 글을 잘 공부해서 영웅서사구조 플러스 알파의 감을 확실하게 잡기 바란다.   


아, 그리고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라, 당신은 자칫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잊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손가락 운동 삼아 아래로 내려가서 '좋아요!'를 시원하게 한 번 눌러주고 오기 바란다. 


첫번째로 분석의 식탁에 올릴 작품은 바로...

포스터



<힘쎈 여자 도봉순>


공당극 24에 소개한 이 드라마의 1막에 대한 분석에 이어지는 글이다. 


2막을 분석하기 전에 복습 차원에서 도봉순을 언급했던 '영웅서사로 1막 분석4(완결)'을 읽고 오기 바란다. 

읽고 왔다 해도 강의의 편의성을 위해 1막을 잠깐 언급을 하고 넘어 가겠다. 


보통 세상에서 도봉순은 모계 유전으로 괴력을 가지고 있다. 쌍둥이 남동생은 의사이지만 누나인 자신은 고졸의 취준생일 뿐이다. 그녀의 꿈(목표)는 두 가지인데, 괴력을 가진 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과 게임 회사에 들어가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연애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런 그녀가 불쌍한 사람을 괴력으로 도와줘야 할 일(모험의 소명)이 생긴다. 그러나 자신이 괴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들킬까봐 망설인다(소명의 거부). 그런데 건설사 용역 간부(정신적 스승)가 그녀까지 괴롭히자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건설사 용역 깡패들을 싹 쓸어버리고, 이를 본 안민혁의 제안으로 그의 보디가드가 되면서 첫관문을 통과하며 1막이 끝나게 된다. 이 드라마 16부작 중 1회가 영웅서사 1막에 해당되는 것이다.  


2회인 2막에 들어와서 도봉순은 친구를 만나고, 적을 만나며 시험에 들게 된다.  


일단, 영웅서사의 관점에서 보면, '친구, 적, 시험'은 2회 시작부터 13화 중반부까지 이어진다. 무려 11.5 화 분량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적과 싸우며, 시험들을 통과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즉, 도봉순은 가족과 안민혁(박형식), 인국두(김지수) 등의 우호세력과 백탑파와 연쇄 납치범 등의 적대세력과 에피소드를 만들며, 결국 도봉순은 안민혁과 사랑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이다. 그 사랑의 단계 하나 하나가 바로 시험이다. 


13회 중반부에 안민혁의 '이렇게 널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는 고백에 봉순은 '연예는 자신에게 사치라며, 자기는 이렇게 괴물로 살겠다며' 안민혁을 밀어낸다. 


여기가 바로 '심연에의 접근'이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심연에의 접근' 단계에서 상대와 계속 사귈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을 한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어려운 선택이고, 주인공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 


만약 당신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의 도전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 반드시 어느 시점에 이 길이 과연 내게 맞는 것인가 하는 고민의 시점이 오게 될 것이다. 계속 공부를 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그러다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 결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당신을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힘들게 할 것이다. 멈춘다면 그 동안의 노력이 아까울 것이고, 계속 간다면 더 힘든 공부가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점이 바로 심연의 접근인 것이다. 


고봉순은 이 심연에의 접근에서 헤어짐을 선택했다. 괴물인 자신이 안민혁을 불행하게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시련'이다. 


도봉순은 실연의 아픔을 느끼며 힘들어 한다. 그것은 안민혁도 마찬가지. 13부 후반부와 14회 전체가 시련의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이 시련의 시간 동안 도봉순은 설상가상 초능력까지 잃고, 악인에 의해 폭탄과 함께 밀폐 공간에 갇히기까지 된다. 

꼼짝없이 죽게 생긴 상황에서 안민혁이 나타나 문 밖에서 도망가지 않고 도봉순과 함께 하겠다고 한다. 이러다간 자기 혼자만 죽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까지 죽게 만들겠다는 절박감이 그녀에게 다시 초능력이 생기게 한다. 포박을 풀고, 문을 부수고 나간 도봉순은 폭탄을 하늘로 멀리 던져 폭파시킨다. 이 시퀀스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그들.


그 다음 시련을 겪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보상'이다. 


도봉순과 안민혁은 대놓고 연애를 한다. 서로 말까지 터가면서. 15화 내내 행복한 연애를 하다가 '귀환의 길'을 맞이한다. 폭탄 사건에서도 도봉순이 살아나자 악에 받친 악인이 도봉순을 총으로 저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위기. 결국, 도봉순은 총에 맞아 쓰러진다(귀환의 길에서 주인공은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책에 나와 있다). 


그러나 초능력을 되찾은 도봉순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로 '부활'이다.  


대망의 16회. 


한 회 전체가 '영약을 갖고 귀환'이다. 도봉순과 안민혁은 결혼을 하고 딸 쌍둥이를 낳는데, 그들은 집안의 모계 유전의 내력으로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도봉순은 이제 악과 맞써 싸우는 전사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출연했던 조연급 이상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완결한다. 


이렇게 <힘쎈여자 도봉순>을 영웅서사 12 단계로 분석해 보았다. 


하지만 당신은 뭔가 개운치 않고 찝찝한 느낌을 감추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6단계인 10회가 넘는 분량을 내가 '친구, 적, 시험'으로 뭉뚱그려 말하곤 넘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바로 그 '친구, 적, 시험'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다. 이 영웅서사 여섯 번째 단계는 사실 이야기의 알맹이이고, 시청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영웅서사는 이 알맹이를 알맹이답게 만들어 주기 위해 앞 뒤에 배치된 데코레이션한 서사구조라 할 수 있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핵심은 도봉순이 안민혁을 만나 사랑과 성공을 동시에 이뤄가는 것이다. 이것을 영웅서사 속에 넣었을 때, 앞 부분은 어떻게 둘이 만나는가에 관한 것이고, 뒷부분은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의 알맹이인 '친구, 적, 시험'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드라마를 기획하는 단계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스토리를 세팅한다고 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먼저 여주가 초능력자인 로맨스 드라마를 쓰겠다는 기획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주가 초능력자라는 설정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할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여기서 이런 전제가 나온다. 여주는 초능력을 갖고 싶어할 법한 시청자들을 대변해야 하고, 그 주변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따라서 여주는 고졸의 취준생으로 설정된다. 여기에 여주의 캐릭터에 연민을 더하기 위해서 쌍둥이 남동생은 여주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의사이다. 형제 중에 잘 나가는 사람을 동생으로 설정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효과적이다. 국민 정서상(?) 손위 형제가 받을 스트레스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만약 여주에게 좀더 감정이입을 시키고자 했다면, 남동생을 좀더 싸가지가 없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세팅하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봉순의 초능력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저주여야만 한다. 그 초능력을 함부로 써서도 안 되고, 남에게 들켜서도 안 된다. 꼭 필요한 순간에 딱 그만큼만 써야, 시청자들이 공감한다. 


봉순의 캐릭터는 이런 면에서 매우 성공적이다. 요즘 드라마는 캐릭터가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미 기획 단계에서 이런 캐릭터의 설정으로 말미암아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이 예감됐을 것이다.  


다음은 봉순과 알콩달콩할 남주 캐릭터 세팅.


보통 로맨스 드라마의 남주 캐릭터는 <피그말리온>의 신화 또는 <미녀와 야수>에서 이어진 것이다. 여자를 우습게 보고, 자기 멋대로인 안하무인적인 성격. 그런데 그 성격은 그의 불우한 가정사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기 어렵다. 때문에 남주는 여주에 의한 교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 때 남주는 재벌 2세로 대표되었다. 재벌이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보살핌으로부터 소외된, 그래서 약간은 삐뚤어진 성격이 된, 그런 캐릭터 말이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성격적 결함이 때문에 모난 인간. 여성 시청자들과 여주의 눈으로 볼 때 사랑으로 충분히 고쳐 쓸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캐릭터. 


참고로 재벌 2세 캐릭터는 최근 재벌 3세 경영 시대로 넘어가면서 사라지고, 자수성가한 캐릭터가 자주 쓰이고 있다. 예전에는 자수성가한 캐릭터는 논외의 대상이었다. 자수성가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캐릭터라 여주의 입장에서 연애의 대상으로 보이기 보다는 인생에 대해 참견하거나 잔소리를 하는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자수성가는 IT 업종에서 벼락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재벌2세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안민혁은 자수성가한 인물임과 동시에 아버지의 그룹을 이어받아야 하는 재벌2세라는 양수겸장의 세팅이 됐다.  


그 다음 세팅할 부분은 남녀 주인공의 상대에 대한 감정의 시작점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남녀가 서로가 극비호감으로 시작했다가 극호감으로 끝난다.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은 이런 공식을 변주한다. 도봉순은 안민혁에게 비호감으로 시작하고, 안민혁은 호감으로 시작하지만, 그 스스로 사랑에 대해 미숙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세팅된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도봉순이 안민혁에게 마음을 주는 순간, 급속도로 엔딩으로 치달을 것이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넣는다.  


인국두(김지수)라는 세컨 남주. 인국두는 봉순과 초중고 동창으로 직업은 형사인데, 도봉순에게 짝사랑을 받는 상대이다.  도봉순은 인국두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안민혁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게다가 안민혁은 직장의 대표로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권력자가 아닌가. 때문에 언감생심 꿈도 안 꾼다. 

이런 삼각 구도가 봉순이 민혁에게 감정을 빼앗기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스토리는 도봉순의 인국두에 대한 마음이 언제 어떻게 안민혁에게 넘어가는가 하는 관전 포인트를 가지게 된다. 


이런 세팅은 기본적으로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세팅이다. 안민혁은 안민혁대로 인국두는 인국두대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걸 필드에서는 '양손의 떡' 세팅이라고 하는데, 여성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제대로 실현시켜주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한 손에는 안민혁이라는 자수성가한 스윗 가이, 다른 한 손에는 인국두라는 츤데레 형사. 


그 다음은 스토리의 전진을 위해서 친구(우호세력)와 적(적대세력)을 세팅할 차례.


일단, 도봉순의 주위에는 선역들로 주로 세팅이 되어 있다. 민혁과 국두, 말고도 경심이라는 소꿉친구, 그리고 가족들도 모두 선역이다. 도봉순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인 민혁 주변에는 그의 자리를 노리는 형제와 그의 사주를 받은 청부업자(라고 보기엔 너무 나약한)가 적으로 있고, 국두 주변에는 도봉순의 보금자리인 도봉동에서 출몰하는 연쇄 납치범과 건설사 용역깡패 등이 있다. 


이 적들은 봉순은 모두 잠재적인 적들이지만, 여성들의 연쇄 납치범 외에는 악당으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희화화(의도적일 테지만) 되고 있다. 게다가 최후의 악당인 납치범도 처음에는 도봉순의 직접적인 적이 되지 못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경우 극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텐션이 떨어진다. 악이나 위협이 주인공에게 집중될 때 텐션이 올라가고, 몰입감이 생긴다. 하지만 원체 도봉순이 '쎈캐'이기 때문에 위협으로 인한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이 시놉시스 단계에서 인물 구성표라는 것을 만든다. 주인공 중심으로 인물을 놓고, 주변 인물을 화살표 등을 친소 관계를 표시한 일종의 다이어그램 말이다. 

그것을 보며 우호세력과 적대세력을 체크한다. 우호세력이 적대세력보다 많거나 더 강하면, 드라마는 루즈해지고 텐션이 떨어진다. 반면, 적대세력이 너무 강하면 텐션을 올라가지만, 로맨스 드라마의 경우, 주객이 전도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악인 세팅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전제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악인들이 너무 약하고 다들 바보거나 루저들이다. 학폭 아이들이 그랬고, 용역 깡패조직이 그랬다. 그러니 이들이 도봉순과의 대결구도로 가기 보다는 자체적인 에피소드를 만들며 별도의 스토리로 가버렸다(악당들의 개과천선기?). 


그 보다는 직장에 취직한 뒤 오피스에서 만날 수 있는 직장내 빌런들을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연쇄납치범도 직장 안에 있었다면 훨씬 긴장감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까지 진전이 되면, 전체 스토리는 대략 이렇게 나올 것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이 우연한 기회에 용역깡패를 혼내준 것을 계기로 게임회사 대표 안민혁의 보디가드가 된다.  그래서 알콩달콩, 전전긍긍, 쥐락펴락, 안절부절, 설상가상 등을 과정을 거치며 연애를 하게 되는데, 헤어짐을 선택한다. 그래서 괴롭던 상황에서 안민혁이 진심을 확인하고, 둘은 행복한 때를 맞이하지만, 마지막 위기가 찾아오고, 그것을 이겨냄으로서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이것을 영웅서사 단계로 엣지있게 보완한 다음, 영웅서사 6단계인 '친구, 적, 시험'이라 할 수 있는 알콩달콩, 전전긍긍, 쥐락펴락, 안절부절, 설상가상을 세팅하는 것이 바로 다음 단계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팅을 할까?


감정을 설계하는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여기서  캐릭터들이 알아서 사귀게 풀어놓고 방목을 하는 스타일로 쓸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것은 바로 망하는 지름길이자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야기라는 것은 감성과학이다. 

이모셔널 스트럭처라고 하는 감정 플롯을 정교하게 짜고 가야 한다. 

같은 감정 상태가 지속되면, 로맨스 드라마는 금새 지루애진다. 그리고 너무 빨리 사랑을 붙여 놓으면, 그 다음 할 얘기가 없어진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후반부에 드라마가 무너지고 만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각 회차 별로 감정의 변이를 설정한 뒤 그 감정이 변이점을 그 회차에서 오도록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왜냐하면, 용역 깡패 스토리를 활용해서 감정의 변이점을 미리 땡겨쓰는 실책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도봉순과 안민혁의 알콩달콩은 도봉순이 안민혁에 대한 비호감 내지는 무관심이 호감과 관심으로 바뀌는 식으로 전개가 된다. 이런 스토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으로 플롯을 짜나가며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러 등장인물들을 동시에 이 인물도 진행시키고, 저 인물도 진행시키면서 플롯을 짜나간다면, 당신의 스토리는 영원히 완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다 완결된다 하더라도 16부작의 긴 이야기에 절반도 못미치는 8부에 완결될 수도 있다. 이는 모두다 주인공 중심으로 플롯을 짜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일인 것이다. 


때문에 이런 식으로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안민혁의 보디가드로 취직한 도봉순은 2회와 3회를 걸쳐 안민혁과 티격태격하다가 스토커에게 저격을 당한 안민혁을 구하는 지점에서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들 로맨스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이다. 

이 터닝 포인트가 의미가 있으려면, 두번째 남주인 국두와 봉순은 어떤 상태여야 할까? 일단 도봉순은 국두에게 콩깍지가 제대로 씌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민혁에 대한 호감이 생겼을 때 고민이 클 수가 있다. 여기에 상황이 좀더 복잡해 지려면, 국두가 봉순을 츤데레로 대하지만 사실은 언제든 봉순의 연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야 한다. 


도봉순의 괴력으로 인한 '사이다' 전개를 위한 건설용역 깡패, 학폭, 연쇄납치범, 그리고 안민혁의 스토커 등 설정은 주인공의 로맨스 플롯 사이사이에 편의적으로 끼워넣는 식으로 해야 한다. 그 스토리들은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기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봉순이 안민혁에게 감정이 너무 일찍 생겨버렸기 때문에 이대로 갔다간 사랑이 확 이뤄질 위험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사랑이 완성되면, 거기가 바로 엔딩이기 때문이다(여기서 내 이전 글 원 포인트 레슨 로맨스 드라마 편 참조할 것). 


그런 상황에서 도봉순이 술을 마시고 클럽에서 폴댄스 봉을 뿌리 뽑는 일이 생긴다. 이 일을 계기로 도봉순의 호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수치심으로 인한 자격지심이 안민혁 대표와 거리감을 더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호감에 자격지심이 더해져, 이전 비호감과 같은 감정의 거리감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안민혁에게 기회가 된다. 봉순에게 괴력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맞춤형 개인 훈련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둘이 어떤 훈련들을 하며, 그것이 사랑을 얼마나 진전시킬까가 시청자들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회차 엔딩을 스릴러적 엔딩을 자주 사용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엔딩이 봉순에 대한 위기라면 모를까, 다른 인물에 대한 위기의 엔딩인 경우 시청자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이다.  


4부에서 봉순이 민혁에게 호감이 생기는 부분이 초반이 아니라 엔딩에 배치되었다면, 5부 시청률이 잘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배치되었고, 이후 둘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주로 하다가 끝에 스릴러적 엔딩(봉순이 연쇄납치범과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인해 5부는 시청률의 상승세가 꺽이고 말았다. 만약 여기서 시청률이 상승하며 치고 나갔다면 <힘쎈여자 도봉순>은 더욱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5회 엔딩에서 남주와 여주가 안전상의 이유로 여차여차해서 남주의 집에서 같이 밤을 보내게 됐는데, 세컨드 남주인 국두가 같이 있겠다고 나타나자, 6회에서 시청률이 다시 상승했다. 여기서 엔딩이 시청률을 견인했다는 게 아니라, 엔딩에서 예견되는 내용이 6회에서 잘 나왔기 때문이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주가 티격태격하는 것이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로맨스 드라마의 핵심은 남녀 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는 쉽게 말해, 첫 키스를 하기까지 어떤 가슴 설레는 과정을 거치는가일 수도 있다. 혹자는 미드에서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를 미니 시리즈로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걔네들은 일단 자고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 혹자가 나란 사실은 안 비밀). 


7회에는 시청률이 다시 하락했는데, 6회 엔딩에서 봉순과 민혁이 함께 있는 집에 흉악범이 침입하는 것을 봉순이가 해결했지만, 봉순, 민혁, 국두 등 삼각관계에 치중하기 보단, 침입자들의 동성애 드립(굉장히 비호감스럽다)으로 초반을 이끌어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8회에서 시청률 하이를 찍는데, 민혁의 봉순에 대한 맞춤형 개인 트레이닝이 좀더 스킨쉽 위주로 펼쳐지며,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가 되려면 한 발자국 더 다가가야 한다고 고백하면서 민혁이 봉순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봉순의 호감과 민혁의 호감이 만나는 지점이다. 당연히 시청률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관전 포인트는 그들이 언제 키스를 하는가이다. 여기서 작가와 시청자 간의 밀당이 시작된다. 작가는 최대한 키스 타이밍을 늦춰야 한다. 키스를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이야기가 종반부로 향해 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주인공이 레임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작가는 키스를 할랑말랑 하면서 하지 않고 끌어 가며, 9회와 10회에서 극중 인물과 시청자들을 감질나게 한다. 키스를 할 수도 있는 타이밍에서 서로 '자제'를 시켜 훗날을 도모하게 하는것이다. 11회에 중반에 민혁은 나 좀 사랑해 달라며, 둘은 포옹을 한다. 

하지만  뻔뻔(?)스럽게도 키스는 역시나 다음으로 미룬다. 그러면서 둘은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다니며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리고 12부 중간 쯤에 다시 키스할 타임에서 민혁은 봉순의 '마빡'에다 키스를 한다(욕 나온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작가는 둘을 바닷가 백사장에서 하트를 그리게 한 후 키스를 하게 만들어 욕을 한 시청자들을 후회하게 만든다. 


이렇게 키스를 한 뒤 13부 중간에 봉순이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까지가 바로 영웅서사의 6단계 '친구, 적, 시험'인 것이다. 

여기서 시험은 이야기의 터닝 포인트이다.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는 순간, 호감이 자격지심으로 다시 감정이 뒤로 물림이 되는 순간, 그러다 다시 호감 대 호감으로 만나고, 포옹을 하고, 마빡에 키스를 하고, 본격 마우스 투 마우스 키스를 하는 것들이 바로, 감정이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인 터닝 포인트들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포인트들을 미리 설정해 놓고 써야 한다. 당신 같은 망생이가 '꼴리는 대로' 마구 쓰다가는 결코 입봉은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설혹 입봉했다 해도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고, 대표작이 은퇴작이 될 확률이 높다. 


 가령, 이런 식으로 감정을 세팅하는 것이다. 


도봉순과 안민혁의 감정 변이 과정  

    도봉순    안민혁                         스토리

1. 비호감    호감(막연한)                시작점

2. 비호감    호감(구체적)               남주가 어떤 일을 계기로 급관심

3. 호감       비호감 (어떤 이유로)  여주가 남주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남주는 실망을 한다. 

4. 비호감    비호감                        그러자 여주도 비호감이 된다. 

6. 비호감    호감                            이번에는 남자가 다시 호감이 된다. 

7. 비호감    극호감                         여주는 시큰둥한데, 남자는 극호감으로 몸이 달아오르고. 

8. 호감       극호감                         여주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9. 극호감    극호감                        서로가 극호감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그런 다음, 거기에 맞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그 6단계 스토리를 통으로 만들어 영웅서사 가운데 끼워넣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기계적으로 세팅을 한 뒤 점점 수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원칙은 이렇다. 

동일한 감정이 지루해 지기 전에 다른 감정의 터닝 포인트로 바꿔야 한다는 것, 에피소드가 딸린다고 다음 감정의 터닝 포인트를 쉽게 땡겨 쓰지 말 것. 

알겠는가? 

이렇게 <힘쎈여자 도봉순>을 영웅서사 관점에서 분석해 보았다. 

원고가 좀 길었다. 

하지만, 꼭꼭 씹어서 당신의 것으로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댓글이나 좋아요로 표현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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