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이프를 기억하라
지난 번에 배운 하이컨셉으로 미니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을 시도해 보셨습니까?
근데 제 글을 읽을 때는 아하! 하셨어도 막상 해보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이컨셉을 단지 지식이 아닌, 본능으로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통찰도 필요하고 숙련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저 작품의 하이컨셉이 뭘까 습관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가령, 어떤 작품을 보고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영화 <마션>을 봤는데, 그거 완전 화성에서의 <로빈슨 크로소우>던데?"
이런 식으로 핵심을 가지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시는 게 좋습니다.
물론, 하이컨셉으로 파악되지 않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마저도 하이컨셉으로 정의해 보는 버릇을 가지면 작품을 보는 통찰이 생기게 됩니다.
하이컨셉은 주제와 소재를 확실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실제로 집필할 때 배가 산으로 가지 않고 바다로 순항하게 해줍니다. 하이컨셉은 망망대해를 항해할 때 나침반 역할을 해주거든요.
쉽게 말해, 글을 쓸 때 마구 떠오르는 내용을 쓰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한 번 걸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만들 때 막힐 때마다 원전(롤모델)이 되는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 쓰고자 하는 내용이 주제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 말입니다.
하이컨셉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만능키이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안정감은 담보되지만, 기발함은 조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최근 헐리우드에서는 하이컨셉 아이디어로 만드는 스토리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안정감보다 기발함을 추구하는, 미니 시리즈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하이 컨셉' 외에 헐리우드에서 많이 쓰는 아이디어 찾는 방법은 '로그라인' 만들기 입니다. 로그라인에 대해서는 제가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초기 글에 자세하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하이컨셉과 로그라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하이컨셉과 로그라인 둘의 관계를 도식화하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하이컨셉 < 로그라인
로그라인 안에 하이컨셉이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재미를 담보하는 수많은 로그라인 중에서 스토리의 안정감을 주는 로그라인들이 하이컨셉으로 설명된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하이컨셉에서는 로그라인을 거의 백프로 그대로 뽑아낼 수 있지만, 로그라인 중에는 하이컨셉을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이컨셉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로그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이컨셉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떤 작품을 롤모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그라인 아이디어는, 그런 하이컨셉에서 벗어난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그런 아이디어 일 수록 가치가 있고, 새롭게 느껴질 확률이 높습니다.
로그라인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하이컨셉을 가지고 만드는 것보다 좀더 어렵고 도전적입니다. 하지만 신선하고 새로운 스토리가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최근 공모에서는 하이컨셉 아이디어 보다는 로그라인 아이디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그라인 아이디어의 시작은 '만약에(If)라는 가정법'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가정은 강력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외계인이라면?
<별에서 온 그대>
만약에 변호사가 자폐아라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만약에 취준생 여자가 초능력자면?
<힘쎈 여자 도봉순>
만약에 남자와 여자의 몸이 바뀐다면?
<시크릿 가든>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만약에'에 넣어서 떠올려 보는 겁니다. 근데 '만약에'만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요즘 시대엔 좀 나이브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만약에 ~하게되면 어떡하지?(What if)를 씁니다. 여기서 '어떡하지'가 굉장한 호기심을 유발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가령, '만약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지가 없다면?'이란 문장보다 '천신만고 끝에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는데, 화장지가 없어 어떡하지?'가 훨씬 절실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외계인이데, 나중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면 어떡하지?
만약에 자폐증 변호사에게 보통 변호사도 맡기 힘든 사건들이 맡겨지면 어떡하지?
초능력을 들키면 안 되는 도봉순이 보디가드를 맡아 많은 악당들을 상대하게 되면 어떡하지?
만약에 서로 싫어하는 남자와 여자가 몸이 바뀌게 되면 어떡하지?
좀더 구체화 되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서 저만의 팁인데요.
저는 어떡하지 앞에 '씨발(f***)'을 넣습니다. 아이디어 뒤에 '씨발 어떡하지?'하고 말했을 때 뭔가 찰떡같이 달라붙는 느낌이 들면 그 아이디어는 죽인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권장사항은 아닙니다. 그리고 비속어를 쓴다고 뭐라 하지마시고, 좀더 이해가 잘 되게 하려는 저의 충정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로그라인을 읽고 작품의 제목을 맞춰보세요.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예행 연습까지 마쳤는데, 임무를 시작하자마자 삑사리가 나면 '씨발' 어떡하지?
국제 인신매매단한테 납치당한 딸내미가 팔려가기 전에 구출해야 하는데 '씨발' 어떡하지?
가족하고 화해해야 하는데, 그 앞을 테러리스트들이 가로 막고 있네. '씨발' 어떡하지?
위에 부터 순서대로 <미션 임파서블>, <테이큰>, <다이하드>입니다.
결국, 로그라인에서 던저지는 질문의 핵심은, 그것이 '가능한가'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를 예를 들더라도, 평범한 여자가 재벌집 후계자와의 사랑에 성공하는 것이 가능할까잖아요. 석세스 스토리라면, 돈도 빽도 없는 흙수저가 엄청나게 성공하는 것이 가능할까이고, 미스터리 서스펜스는 범죄자를 잡는 것이 가능할까잖아요.
불가능한 미션을 던지고,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주인공에게 흥미를 느끼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때 로그라인 아이디어는 끝내주는 작품이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다음은 로그라인으로 정리하는 겁니다.
제가 알려 드렸었죠.
드라마의 정의 :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불가능한 꿈(목표)를 나아가면서 어려움(장애물)을 극복한다.
미션 임파서블 : 미션 컴플리트를 위해 투입된 특수작전팀의 주인공 이단 헌트는 작전 성공을 위해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하지만,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지자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작전을 성공시킨다.
테이큰 : 딸바보이자 지금은 은퇴한 특수작전팀의 브라이언 밀즈는 딸이 파리에서 국제인신매매조직에게 납치되자, 왕년의 실력과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딸을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이하드 : 아내와 불화를 겪는 형사 존 맥클레인은 화해를 위해 아내를 만나러 가지만, 아내가 있는 빌딩은 테러리스트가 점령을 했다. 과연 존 맥클레인 형사는 혈혈단신의 몸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처치한 뒤 아내를 구하고 화해를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까요?
영웅서사로 만들어야겠죠. 그게 제일 이야기를 만드는데 가장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니까요?
이번에는 '왓이프'로 아이디어를 만드는 방법을 연습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