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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 02

02. 초장에 못을 박아라, 로그라인

by 이기원

"이작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가 뭐라고 했지?"


"아, 회장님. <제중원>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래 전 어느 날, 나는 드라마 제작사의 회장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방송 관계자와 점심약속이 있어서 어디 좀 가는데, 이 작가 작품 얘기 좀 하려 하거든. 간단히 좀 얘기해봐."


"아, 그게..."


순간, 나는 당황했다. 회장님이 만나는 방송 관계자라면 고위직일 것이 분명했고, 그때 회장님이 하시는 얘기는 편성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게 틀림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준비하고 있던 <제중원>은 메디컬 사극으로 조선 말기에 양의학이 국내에 도입되던 시절을 다룬 이야기였다. 나는 36부작이나 되는 그 드라마의 스토리를 정말 열심히 만들었고, 스토리를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겠다는 의도로 2권짜리 원작 소설도 썼다. 또한 구할 수 있는 역사 자료, 의학 자료 등 참고 자료도 많이 읽고 공부했다. 게다가 드라마의 기획 의도와 등장인물, 그리고 회별 줄거리까지 꼼꼼하게 정리된 시놉시스도 거의 40장 가량 쓴 상태였다.


그런데, 전화로 간단히 얘기하라니, 어떻게 간단하게 말한단 말인가!


"제가 지금 시놉시스를 보내드릴까요?"


"참내, 선수끼리 왜 이래? 나 지금 차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 중이라고."


"아, 네. 그러니까... 제중원은... 블라블라... 블라블라... "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게 그럴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30초나 이야기 했을까.


"아, 됐고. 그러니까... '구한말에 백정이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되는 이야기'네. 맞지?"


"네?"


"맞아, 안 맞아?"


"맞긴 맞는데..."


"알았어. 끊어."


뚜뚜뚜....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제중원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백정이 신분을 뛰어넘는 이야기는 물론이었고, 양의학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파되었는가도 보여주고 싶었으며, 당시의 양의술을 영상으로 재현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 뿐인가. 백정의 아들과 역관의 딸 사이의 지고지순한 사랑도 그려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의사가 된 백정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을 멋지게 보여주고도 싶었다.


그런데 회장님이 그 엄청난 이야기를 단 한 줄로 줄여버리다니! 만행이었다. 난 회장님이 진정 야속했다. 심지어 내 작품이 평가절하되는 듯한 더러운 기분까지 느꼈다.


두 시간 뒤, 회장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이작가, 그 친구가 로그라인 좋다며 기획안을 달라고 하던 걸. 시놉시스 좀 보내줘."


"옛썰!"


전화를 끊고, 내 입에선 '회장님, 사랑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회장님에 대한 나의 원망은 눈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회장님을 무한 추앙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역시 선수는 괜히 선수가 아닌 것이다. 회장님은 진정 내 드라마의 한 방을 다 알고 계셨어. 그리고 그 방송 관계자 역시 선수였던 거야. 그렇지, 간단하게 말해, 소나 잡던 백정이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되는 이야기 맞지.


이제부터 나는 앞으로 준비하는 작품들은 죄다 한 줄 로그라인으로 승부할테다!


로그라인은 ‘주인공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갈등을 겪는지를 짧게 요약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나는 내 작품을 간단하게 요약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극본 하나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고, 얼마나 많은 좋은 아이디어들을 담겼는데, 그걸 어떻게 한 줄에 녹여서 말할 수 있겠는가. 한 문장으로 말하는 순간, 내 작품의 매력과 장점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마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 역시 본인 작품을 제 3자에게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남들 앞에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 남들 앞에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쉽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내 작품을 객관화하여 남 얘기하듯 말할 수 있을까?


일단, 로그라인을 만드는 다소 고전적인 방법을 고찰해 보자.



25 단어 이내로(25 words or less) 말하기


예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긴 설명 대신 '25 단어 이하로 핵심 설명이 가능한 콘셉트'야 말로 영화화에 강력한 가능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후 이 말은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사용되고 있다.


근데, 일단, 이 말은 스필버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아니다. 그가 인터뷰를 하기 몇 년 전에 만들어졌던,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 <플레이어>라는 영화를 보면, '25 단어 이내'로 말하는 대사가 두 번이나 나온다.


한번은 형사가 살인을 한 주인공을 찾아와 살인사건에 대해 설명할 때 25단어 이내로 말하겠다고 한다(멋진 대사이다! 아마도 시나리오 작가는 형사가 영화계를 잘 아는 캐릭터를 부여하고 싶었던듯). 하지만 금새 25 단어를 넘기며 설명이 블라블라 장황해 진다. 그러자 주인공은 25단어가 넘었고, 말도 안 된다며 형사를 돌려보낸다.


그리고 어느 옥상 라운지에서 만난 프로듀서가 자신이 데려온 작가의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들어보라고 한다. 주인공은 바쁘다고 거절하지만, 프로듀서가 집요하게 부탁을 하자, 하는 수없이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25 단어 이내로 말하라고 한다. 그러자 작가는 블라블라하면서 금새 25단어를 훌쩍 넘겨버린다.


영화에서 형사도 작가도 25단어로 말하는데 실패를 했다. 시나리오가 작가기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이겠으나, 내게는 25단어로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사실, 로그라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보다 두세 문장의 분량인 25단어로 요약하는 것은 몇 배 더 힘들다. 문장이 늘어날수록 군더더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25 단어로 만든 문장들은, 로그라인라기보다는 개요나 간략한 줄거리에 가깝다.


결국, 원 샷 원 킬, 한 문장으로 된 로그라인만이 살 길이다.


그렇다면, 로그라인을 한 문장으로 뽑아내는 방법을 한 번 알아보자.



로그라인 = 원 라인 아이디어(one line idea)


자신의 작품을 한 문장으로 말해 보라는 요구는, 당신이 보통 감독이나, 기획 프로듀서, 그리고 세일즈를 담당할 제작사 대표로부터 늘상 받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당신이 미리 자신의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해 놓지 않았다면, 순간 당황하며 식은땀부터 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 그러니까... 제 작품은요.... 블라블라... 그러다 아웃이 되는 것이다.


극본 심사 1차 예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사위원에게 시놉시스에서 극본에 대한 한 줄 요약이 간파되지 않으면,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모의 1차 예심은 작품을 뽑는 심사라기보다는 읽어보지 않아도 되는 작품들을 솎아내는 심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음을 읽어주기 바란다.


(드라마틱) 스토리 =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목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의 정의이다.


어쩌면 당신은 스토리의 정의를 여태껏 모르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토리가 뭔지 몰라도 스토리를 잘만 써왔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 책을 통해서, 이전에는 몰랐거나 무시했거나, 심지어 관심없어 했던 스토리텔링의 여러 개념들을 확실하게 정리하며 가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이 더 잘 쓰게 되는' 첫 번째 비결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우리가 늘 접하고 즐기는 스토리들이다.


생존/석세스 스토리 : 주인공이 살아남기/성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로맨스 스토리 : 주인공이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성장 스토리 : 주인공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고군분투한다.

라이벌/복수 스토리 : 주인공이 상대를 이기려고/상대에게 복수하려고 고군분투한다. .

권선징악 스토리 : 주인공이 선을 위해 악을 무찌르기 위해 고분분투한다.


앞에서 말했던 <제중원>을 석세스 스토리에 대입해 보자.


구한 말, 백정이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럴 듯한 로그라인이 나왔다.


결국, 로그라인은 자기가 만든 작품을 스토리의 정의라는 잣대로 축약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이야기에서 로그라인을 뽑을 때는, 거두절미하고 스토리의 정의에 대입해서 뽑는 것이 상책이다.


로그라인은 남에게 내 이야기를 임팩트 있게 알리는 데도 유효하지만, 내가 실제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는데 있어서도 매우 요긴하다. 로그라인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방향이고, 지침이며,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뼈대라고 할 수 있다.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피를 넣어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당신은 스토리의 정의에만 기댄 로그라인이 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오랫 동안 준비했던 이야기를 한 줄로 줄였더니, 너무 허전하거나 빈약하게 보인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로그라인을 빛나게 해줄 옵션을 추가해주면 된다.


주인공의 결함(flaw)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이 픽션에서도 완벽한 주인공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억지로 결함이 없는 주인공을 쓸 수는 있겠으나, 그랬다간 당신은 망신을 당하거나, 작가 생활을 단축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주인공의 결함은 모든 스토리의 원천 에너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캐릭터 장에서 본격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에게 결함이 설정되지 않으면 스토리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로그라인 차원에서 그 결함을 제시함으로써 보완을 할 수가 있다.


몇몇 작품의 로그라인을 살펴보자.


생존/석세스 스토리 : '자폐증을 가진'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조선 시대 '최하층민인' 백정이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된다(제중원), '암에 걸린' 화학교사가 마약왕으로 살아남는다(브레이킹 배드), '가난한 무명의' 복서가 참피온과 대결한다(록키) 등.


로맨스 스토리 : '집안끼리 철천지 원수인' 로미오가 줄리엣을 사랑한다(로미오와 줄리엣), '매춘부인' 주인공이 재벌과의 사랑한다(귀여운 여인), '안하무인의' 여주가 차도남(외계인)을 사랑한다(별에서 온 그대) 등.


라이벌/ 복수 스토리 : '선천적 재능이 없는' 카레이서가 천재 카레이서와 대결을 펼친다(러시 : 더 라이벌), '노예 신분의' 검투사가 왕에게 복수한다. (글래디에이터) 등.


권선징악 스토리 : '가족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가족과 화해를 위해 악당들과 싸운다(다이 하드 시리즈), '기억을 잃은' 남자가 악의 세력과 싸운다(본 시리즈), '한물 간 늙은' 전직 특수요원이 딸을 납치한 악당에게 복수하고 딸을 구해낸다(테이큰) 등.


주인공의 결함은 정신적이거나 물리적인 것 어느 것이라도 좋다. 다만, 그 결함이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야 하고, 그것을 극복해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스토리인 것이다. 때문에 당신이 작가로서 주인공을 세팅할 때 '결함'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가령 <록키>는 석세스 스토리일 수도, 라이벌 스토리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당신이 처음에 어떤 스토리로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이 달라진다. 석세스 스토리로 포장할 때 성공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고, 라이벌 스토리로 쓰일 때는 대결에 초점을 맞추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로맨스 드라마로 쓸 때는 로맨스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나 당신이나 처음에 로그라인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작품이 과연 어떤 스토리인가로 규정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하나의 이야기로 규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스토리,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 정해야 로그라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겠다고?


그러면, 살짝 양념을 쳐서 좀더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해보자.


스토리의 정의는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목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한다'이다. 여기에 스토리의 5대 구성요소인 주인공, 욕망, 적대자, 행동, 변화 등을 넣어서 한 문장으로 만들어 보자.


어떤 '욕망(목표)'를 가진 '주인공(약점을 가진)'이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적(악당 또는 사건)'과 맞서 싸우는 '행동(극복)'을 하면서 '변화(성장)'하는 이야기.


훨씬 더 좋은 로그라인을 만들 수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싶은 자폐아 우영우는 온갖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고 편견을 극복하면서 한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성장을 한다.


록키 : 돈도 경험도 없는 무명 복서 록키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마지막에 챔피언 아폴로와 대결하면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 줄리엣과 사랑을 이루고 싶은 로미오(나이가 어려서 미숙한)는 집안의 반대와 음모에도 불고하고 사랑을 지켜나가고, 끝내는 죽음을 선택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글래디에이터 : 가족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막시무스는 노예 검투사가 되어 적수들을 무찌르고, 결국 원수인 코무두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자신은 죽게 되지만, 결국엔 죽어서라도 그토록 원하던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다이하드 : 형사로선 유능하지만 가족에게는 소홀한 존 매클레인은 테러리스트에 의해 점령 당한 호텔에 들어가 경험에서 온 전략과 순간적인 기지 등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고, 끝내 가족과 화해를 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제 당신은 로그라인을 만드는데 있어서 두려움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당신은 숲을 보는 거시적인 방법으로 로그라인을 만들려고 했다.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옳지만, 인생과 스토리텔링에 통달한 고수가 되어야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고수들은 선문답을 즐기고, 그게 그럴 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당신의 작가 인생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론 나무를 보는 미시적인 접근도 필요한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거시적으로 보다가 미시적으로 보고, 그렇게 나무를 보다가 숲을 보는 것을 번갈아하는 것이다.


작품을 구상할 때 로그라인을 먼저 떠올려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할 수가 있다. 또한 그것은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옆 길로 새지 않는 나침반을 만들어 준다. 게다가 이야기가 옳은 방향으로 가게 되면, 재미와 감동을 주는 방법들이 덩달아 떠오르게 된다.


어떤 작가들은 어떤 하나의 생각 또는 이미지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 작품들이 예술성을 인정 받고 명작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손에 든 당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룰 브레이커가 되려면, 먼저 룰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


다음 단계로 로그라인을 보완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내가 알려준 방법으로 로그라인을 만들었는데, 그게 재미있는지, 글걸 써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설 때가 있다. 그럴 땐 어떡해야 할까?


물론, 지인이나 동료들에게 물어볼 수 있겠지만, 내 경우나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바른 의견을 내서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상대가 좋아할 말을 해서 우정을 지킬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대부분 후자를 택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업계 종사자에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 판단은 최종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전에 내 스스로 로그라인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로그라인의 최고 덕목은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때 재미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가이다.


기대가 별로 안 생기면, 생길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의 5대 요소를 조금씩 수정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주인공이 미션을 성공하기 힘드는 방향'으로 수정이 되어야 한다.


주인공이 미션에 성공하기 어려울수록 재미있는 스토리가 된다. 때문에 당신이 쓰려고 하는 이야기가 재밌어지려면, 주인공의 욕망을 더 크게 설정하거나, 주인공의 약점을 더 크게 설정하고, 주인공이 돌파해야 하는 장애물을 더 어렵게 설정하고, 주인공과 대적해야 하는 악당을 더 강력하게 만들면 된다.


연주자가 되고 싶은 소년은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무시를 극복하고 마침내 청중들 앞에서 멋진 연주를 해낸다.


이 로그라인을 다음과 같이 보완해 보자.


유명한 콩쿨에 출전하고 싶은, 청각장애를 가진 소년은,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무시를 극복하고,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콩쿨에 출전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훨씬 좋은 로그라인이 되었다.


왜 그럴까? 그것마저 알려주겠다.


로그라인을 셀프로 점검하는 방법이 있다.


로그라인은 의문형으로 만들 때 훨씬 더 빛을 발한다.


연주자가 되고 싶은 소년은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무시를 극복하고 마침내 청중들 앞에서 멋진 연주를 해낼 수가 있을까?


해낼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단박에 들지 않나? 그러나...


유명한 콩쿨에 출전하고 싶은, 청각장애를 가진 소년은,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무시를 극복하고,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콩쿨에 출전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에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미션 완수가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 대중들은 호기심을 느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보고 싶어한다. 의문문을 만들어 보는 것은 당신이 작가에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로그라인을 보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로그라인에서 '미션 임파서블'을 느껴야만 한다.


영화 <테이큰> 시리즈의 로그 라인을 보자.


전직 특수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한 주인공은 막강한 테러조직에게 납치된 가족을 구해낼 수 있을까?


아무리 특수요원이었지만 현재 은퇴한 상태인 브라이언 밀즈는 혼자서 잔인한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때문에 그가 가족을 구해낼지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보게 된다. 1편과 2편이 그런 이유로 성공했다.


하지만 3편은 실패를 했는데, 그 이유는 로그 라인이 변질(?)된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1편에서 딸을, 2편에서 아내를 구한 주인공은 3편에서 더 이상 구해야 할 가족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3편에서는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얘기가 되었다. 1편과 2편을 재밌게 본 사람들이 3편의 이야기 흐름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것은 당연지사.


비슷한 이유로 <다이 하드> 시리즈는 매번 새로운 가족(?)이 등장하며 가족과의 불화를 만들었고, 테러리스트와 싸움으로서 가족과 화해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시리즈의 로그라인이 정확하게 지켜져야 시리즈의 정체성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로그 라인은 무엇일까?


<미션 임파서블>의 스토리 라인은 이렇다. 에단 헌트가 이끄는 전술팀은 항상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매번 완벽한 계획을 시뮬레이션하는 시퀀스가 나온다). 하지만 그 계획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틀어지고, 미션을 완수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이때 에단 헌트가 자신의 개인기와 임기응변으로 결국엔 미션을 완수한다.


주인공은 망가져 버린 계획을 바로 잡아 테러집단의 음모를 분쇄하는 미션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미션 임파서블>은 발표되는 작품마다 로그라인으로 정체성을 지키며 이어져 왔다. 7편인 <데드 레코닝>과 8편 <파이널 레코닝>에서는 대중들이 원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정체성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관람 후 관객들 중에는 자신들이 <미션 임파서블>을 본 것인지, 톰 크루즈가 나오는 액션 영화를 본 것인지 헷갈린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셀프 점검법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얻거나 잃게 되는 판돈(stakes), 아이러니(irony), 끌리는 요소(hook)


스테이크스는 스토리 속에서 주인공이 걸고 있는 판돈인데, 이것은 돈이나 생명, 그리고 명예 등이 포함된다. 판돈이 커야 이야기에 집중도가 생기고 몰임감과 긴장감을 더 커지는 법이다.


<테이큰>에서는 국제 인신매매조직으로부터 딸을 구하지 못하면, '딸은 팔려가고 자신은 죽게 되는 상황'이 바로 스테이크스이다.


아이러니는 모순된 상황이 지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대중들이 재미를 느끼는 강력한 장치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소통의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한 변호사라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브레이킹 배드>는 누구보다 깨끗해야 할 고등학교 선생님이 극악무도한 마약왕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후크는 설정 그 자체로 대중들을 후킹하느냐하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이 4백년간 지구에 숨어 살다가, 한류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는 후킹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로그라인에 대한 내용을 집대성해 보았다.


이제 당신은 로그라인에 관한한 고수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여태껏 만들었던 습작이나 작품들의 로그라인을 다시 만들어 봐야 하고, 전에 보았거나 앞으로 보게 되는 작품들의 로그라인을 추출해 봐야 한다. 앞으로 당신이 쓰게 되는 작품 역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선수들(나를 포함하여)은 작품의 도입부만 보더라도 '로그라인'을 바로 찾아낸다. 자꾸 연습하면 조만간 당신도 저절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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