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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May 12. 2020

새벽 2시의 콜링

생로병연사

잠시 외면할 순 있어도 아주 모른 척하며 살 수 있을까? 본능의, 육체의, 마음의 열병 ‘연애’에 대해. 비연애주의자들이 적지 않은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연애라는 감정은 앞으로도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주변만 둘러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까닭에 생의 파노라마를 제대로 담아내 한다면 생로병사 말고 ‘생로병연사’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고 비뚤 빼뚤 뜯은 스프 봉다리를 냄비 위에서 막 털었을 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라면을, 그것도 새벽에 먹으려고 하면 여지없이 마가 끼는구나.’

늦은 시간 대뜸 전화부터 할 사람은 얼마 안 되었기에 짐작이 갔다. 반으로 자른 면을 젓가락으로 두 번 회오리 친 다음 핸드폰을 들었다.

역시나 경진이. 간만에 파까지 썰어 넣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고 지랄을 받아낼 것이냐 라면 대신 후배를 선택할 것이냐. 말갛던 물이 매콤하게 끓어오를 때까지도 벨은 멈추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씨 뭐하고 있어. 왜케 늦게 받아.

야이 씨X놈아 두시 반에 전화하는 놈이 할 소리냐.

아 형!

왜 또, 술 잘 드시고서. 그러고 보니 나만 빼고 형렬이랑 병천 순댓집 갔다 온 거 아냐?

뵨.천. 슨대? 순대란 말이 입에서 나오냐 지금! 남은 죽을 것 가튼데. 응? 그런 말이 잘도 나오냐고.

먹고 온 놈도 있는데 말도 못하냐?

최근 몇 달간 모쏠들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연애달고나를 입에 물고 살았던 경진이 입에서 죽어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차인 거네. 그런 거네.’

농반 진반 그럭저럭 자기감정을 컨트롤하고는 있어도 꽤 심각해 보였다.


녀석은 그런 마음을 들킬까봐 삼성 대 NC의 승패를 물어보기도 하며 다소 여유로운 척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 같더니 뜨거운 뭔가를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배의 여친, 아니 이젠 전여친. 두어 번 만났던 적이 있다. 그때 난 그들의 어울림과 안어울림을 번갈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었다. 한 사람은 너무 좋아했고 한 사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듯, 확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혼까지 염두에 뒀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랬다면 꽤 아프겠네. 그래도 봄이라서 다행이다. 겨울에 방황하면 얼어 죽어.’

나는 속으로 말했다.

맥락 없는 녀석의 하소연 속에서 지난겨울의 잔상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그 지독했던 시간들. 나는 삼재의 액운을 그런 식으로 때웠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그랬지. 묵삼재(삼재 중 두 번째 해) 우습게보지 말라고. 노친네 말을 무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나서야 2019 기해년을 보내줄 수 있었다.  늦여름에서 늦가을까지 캣닢에 미친 고양이처럼 나는 미쳤었다. 나도 연애를 하고 있다는 ‘그 사실’과 그러한 ‘나 자신’을 못 견디게 자랑스러워했다.

천국 옆집엔 언제나 지옥이 있듯 후유증 또한 대단했다. 꽐라가 된 채 계을 굴러 새벽녘 이대 목동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고 일상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두 달간 사경을 헤맸다. 1년 단위로 계약된 팟캐스트 방송 녹음만 겨우 소화했을 뿐 그 외의 일들은 모조리 캔슬시키고서.

무슨 별자리를 타고 났는지 조차 관심이 없던 내가 용하다는 연남동 타로 집을 찾아가 그녀의 컴백을 점 쳐본 적도 있다. 4번 묻는데 1만 원, 30분 보는 데 3만 원. 나는 30분을 택하고 그녀가 언제 돌아올지에 대해서만 14번 물었다. 타로술사는 의미 없다 했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지만 나는 그때 정말 심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내가 미친 듯 매달렸던 그 사랑은, 죽어도 못 잊을 것 같던 그 사람은 곧 시간의 용매에 녹아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한참 지나 내가 깨달은 건 잠수 이별을 한 그녀의 방법은 나빴지만 우린 그저 인연이 될 사이가 아니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칼륨이 아무리 원들 나트륨과 화학결합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주문이기에 칼륨도 나트륨도 나쁜 게 아니다. 그저 서로의 본성을 알아보지 못해 일어난 씁쓸한 해프닝일 뿐.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실수를 했던 걸까? 어쩌면 내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왜곡된 욕망과 허영으로 눈이 멀었었는지도.    


원소니 인연이니 떠벌렸지만 그렇다고 운명론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좋아하는 타입을 고려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부드럽게 서로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때때로 두 원소를 결합시키기 위해 특별한 용매 혹은 조금의 변주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수소 원자 하나에 산소 원자 두 개가 붙어야 물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여태까지의 관점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울지 마라. 추하다. 삼십 중반 넘겨서 뭐하는 짓이야. 그러지 말고 일단 집에 들어가. 아니 가까우면 내가 데리러 갈게. 어디냐?

오긴 뭘 와! 현정이나 데리고 오라고. 현정이.

없는 현정이 어떻게 데려오니? 그리고 내가 아는 현정이는 벌써 학부형 됐어. 피아노 잘 치던 애였는데. 걔네 집도 쫌 살았지 왜.

주글래?

미안. 근데 일단 집에 들어가자. 응?


경진의 주정을 37분 받아준 다음에서야 주사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그사이 라면은 불다 못해 떡이 돼 버렸다. 불어터진 라면을 쏟고 물을 받았다. 그러곤 다시 가스레인지를 켜고 냄비를 올렸다.


경진아 먹어야 산다.

살아야 연애도 한다.

일단 오늘은 집에 잘 들어가라. 까만 밤을 보내 봐. 아침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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