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만남
어제 그녀를 만났다.
만나자, 하고 4개월이 지나서야 사석에서 단둘이 그녀를 본 것이다.
지난 12월, 그 약속을 던질 때만 해도 3월이 오려면 한참 멀어 보였다.
그땐 생각했다. 3개월 정도 지나면, 서로 다른 곳에 근무하는 시기이니 마음이 한층 잠잠해질 거라고.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와 떨어지고, 3월이 됐지만 마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가슴이 몹시도 뛰었고 그건 내 예측과 다른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서운한 표정을 모른다는 듯 약속을 1개월이나 더 미뤘다.
약속을 쉽사리 옮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그래야만 했다.
인정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그녀를 향한 마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녀를 대면하는 것, 그것에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그녀를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터였다.
나는 이 회오리 같은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감정이 내게 영향을 주리라고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래서 3월에 당장 그녀와 둘이 만나기는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약속을 미룬 그 한 달간, 오래된 고서를 갈무리하듯, 난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었다.
먼저는 그녀가 나타나도 놀라지 않는 것.
당연함을 받아들이는 것.
떨지 않고 말하는 것.
그저 옆에만 있어도 충분하다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만 체득해도 괜찮았다.
마음의 풍랑은, 한 달 정도 지나자 제법 가라앉았다. 그녀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설은 감정을 다루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마치 밝은 빛을 보는 것같이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그녀의 눈동자는 내 마음을 읽을 것처럼 맑고, 표정은 천진난만했다.
내 속은 그녀처럼 마냥 밝지 않은데.
그녀가 나 같은 지루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싫증을 느끼면 어쩌지,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녀는 전혀 지루하거나 싫증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표정과 몸짓, 말투 그대로여서 나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난 새처럼 조잘거렸다.
요즘 일, 새로운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강아지 이야기, 친구와 갔던 곳, 요즘 약을 줄였다는 소식까지.
나는 듣고 허허, 웃을 뿐이었다. 재밌는 말을 많이 하고 싶은데, 그녀의 조잘거림이 즐거워 내 이야기로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그리워했던 목소린지.
'내가 재미없게 하면'이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우린 별 것 아닌 말로 낄낄대고 하하 웃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저랑 오동 하실래요? 거절하기 없기!
오동? 그게 뭐야?
오빠 동생이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내 나이에? 우리 나이 차이에? 네 나이에 나를?
그녀에게서 ‘오빠’라는 소리를 들을 생각하자 귀가 빨개지는 걸 느껴, 짐짓 차갑게 말했다.
야, 무슨 내 나이에. 남들이 욕해.
몇 살인데요?
두 번째 숨 막힘. 내 나이를 모를 리 없는데.
내가 어물어물 나이를 말하자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오빠 맞네요? 우리 오동하는 거예요! 약속!
얼떨결에 그녀가 내민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 우리는 오빠 동생 사이(?)가 됐다.
이제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부르고 좀 더 서슴없이 다가온다. 그녀가 제안한 편한 사이에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가슴이 아프다. 또한, 그녀를 더 자주 보고, 함께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같이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