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러시아로 중고차나 팔아볼까
기획 통번역사_사업개발 중개인
"엥, 러시아 비즈니스가 다 막힌 것 아니었나?" 러-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경제 제재가 한창 아닌가. 바로 오늘 2월 24일이면 전쟁이 난 지 벌써 1년이다. 그럼에도 "몇 달 하고 말겠지" 생각한 전쟁은 여전히 끝날 줄 모른다. 오히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우크라이나 방문에 러시아 관련 기업 추가 제재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미-러 핵무기 통제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핵위협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에 서방 세계는 우크라이나 지지로, 중국 등은 대러 제제 중단을 촉구하며 갈라져 전쟁은 확전 양상을 띤다. 한 날 본 기사에 눈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韓중고차 수출 732% 폭증 왜", "전년대비 1163% 폭증한 이유 보니" 등 러시아로 중고차 수출금액이 대폭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중고차가 러시아로 잘 팔린 이유도 바로 이 전쟁 덕분이었다. 제재 때문에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죄다 철수해서다. 중고차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되려 수요가 몰린 것이다. 이 기사들의 요지는 지난해 한국의 대러시아 중고차 수출 대수가 1만 9626대로 전년 대비 732.3% 늘고, 수출 금액은 5억 7276만 달러(약 7268억원)로 1163.2%나 뛰었다는 것이다. 7-10배의 증가폭도 놀랍지만, 눈여겨볼 것은 그 비중이다. 전체 중고차 수출 시장에서 러시아 비중이 대수로는 0.5%에서 4.9%로, 금액으로는 2.3%에서 19.4%로 1/5이나 차지하게 된 것이다. 수출 대수에 비해 금액 비중이 큰 것은 그만큼 비싸게 팔렸다는 것이다. 1대당 수출 단가가 지난해 2만 9200달러(약 3709만원)으로 전년 대비 1만 달러(51.8%)나 뛴 것이다. (출처: 한국무역협회 및 중고차업계 등)
"빵이 총보다 강하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는 전쟁도 피해 간다. 심지어 미국 자체도 곡물 등 일부 항목은 제재의 예외로 인정했다. 이 '빵의 파워' 앞에는 강대국 간 '정치 전쟁'도 잠깐 숨을 돌리게 된다. (표면적 러-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 미국과 서방의 대리전 성격이 짙다.) 국제질서, 힘의 논리도 한 수 접어준다. 서민들의 생계 문제도 이것의 연장선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 사람들도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탄과 더불어 각종 제재로 수출이 막히고, 물가와 루블화 환율이 뛰며 서민 경제는 피폐해졌다. 1990년대 전후 소련 붕괴와 모라토리엄 사태를 겪으며 긴 줄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러시아인이다. 유학 시절, 빵 한 조각을 타기 위해 하루 종일 줄 섰다는 선배 유학생의 목격담이 떠오른다. 지금 사정이야 그때보다 나쁘지는 않겠지만 다시 경제난에 허덕일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차이가 있다면 뭘까. 이전에는 러시아가 '장밋빛 환상'으로 서방에 손을 벌리며 문을 열었지만(개혁개방), 지금은 여전히 서방과 친구가 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에 스스로 문을 닫아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진해 그 긴 고난의 줄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둘 중 어떤 시기가 러시아 사람들에게 더 견디기 쉬울까.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더 이상 마냥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러시아 전공자로서 '부끄러움은 우리 몫'식의 가책도 벗어버렸다. 강대국들의 사정은 그들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빵의 대열'에 합류했다. 바로 통역사로서 밥벌이 문제가 그것이다.
1년 전 전쟁이 터지면서 퇴사 후 구상한 러시아 관련 일도 덩달아 올스톱 됐다. 다른 사업이야 그렇다 치고 통역 일조차 진전이 없었다. 몇 군데 통역사로 등록하고 자체 광고를 해도 그랬다. 코로나 초기 간간이 들어오던 통역 문의조차 뚝 끊겼다. 그래서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하자"는 구호의 통역자 버전을 만들었다. 바로 '기획 통번역사'다. 통역 일거리를 스스로 창출하거나, 자기만의 전문 영역을 키워 섭외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올해 이 분야 활동 키워드도 3가지 정했다. 바로 '재건', '중재', '비대면(가상)'이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수성에 착안했다. 앞으로 전쟁이 끝나갈수록, 우크라이나 재건 같은 이슈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검색어 중 재건 관련주 등의 정보가 우선순위에 꼽힐 정도다. 다음은 중재다. 현재 전쟁으로 인해 국가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이나 개인 간에도 온갖 불확실성과 분쟁 가능성이 넘쳐난다. 떼인 수출 대금 회수나 피해 러시아인 구제 등의 국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항공편 등 왕래가 끊어져 온라인 같은 가상공간에서 비대면 교류 수요가 여전히 늘 수 있다. 중고차 수출도 바로 그런 일들 중 하나다. 막힌 유통 경로와 '이동권'이라는 생존 문제를 타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통역자가 모든 비즈니스 문제를 직접 처리하기는 어렵겠지만, 사업개발 중개인 역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바이어 등 사업 파트너 찾고, 물류나 통관, 은행 등 이해 관계자들과의 초기 비즈니스 관계 설정을 언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사후 팔로업, 분쟁 조정 중재 등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쌓이면 통역 의뢰자들의 비즈니스 가이드 역할도 할 수 있다.
통역자로 중고차 수출 알선 업무를 도운 적도 있었다. 상대는 매년 러시아와의 학생교류를 도와줬던 여행사 대표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교사 출신으로 청소년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여장부였다. 지역 교육청과 연계해 학생들의 체험 및 탐방 프로그램, 해외 교류사업도 활발히 했다. 자기 버스를 몇 대씩 굴리며 중국 국경지역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대표가 물었다. "한국에서 버스 중고차를 수입하고 싶은데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비록 소관 업무는 아니었지만 오랜 교류 파트너였기에 흔쾌히 그 요청에 응했다. 몇몇 중고차 업자를 물색하고, 현장에 데려가 차를 보여주고, 가격 조건 절차 등을 따져 묻고 흥정을 도왔다. 얼떨결에 비즈니스 가이드 통역사가 된 것이다. 여러 차들 앞에서 '그랜드 버드'를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대표는 자국 중고차 시장에서 사면되는데 왜 한국까지 직접 왔을까. 아무래도 믿을 만한 물건을 현지에서 보고 고를 수 있고,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가 중고차에 폐차세를 부가하면서 수입이 어려워지던 시기였다. 이런 식으로 가상 비즈니스 투어를 조직하거나, 경매로 싸게 중고차를 매입하고 부품 등으로 쪼개 파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특성상 공식 채널보다 믿을만한 사적 네트워크 통한 사업 전개 방식에 더 익숙하다. 이전에 러시아 교류업무를 담당할 때 시청으로 연락할 일도 직접 도움을 요청 해올 때가 많았다. 같이 일해 본 사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역으로 인맥을 쌓거나, 비즈니스 투어에서 신뢰가 쌓이면 다양한 방면으로 사업 확장도 가능하다. 이전에 한 후배는 이런 인연으로 러시아 파트너에게 수십억짜리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억대 수수료를 챙겼다. 당장 전문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유사한 몇 건만 통역해 보면 그 분야의 내밀한 비즈니스 생리나 현장 정보를 빠르게 취득할 수 있다. 사전에 사업 분야에 대한 기본 개념과 용어 정도만 익혀두면 된다. 이런 사례처럼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중고차를 찾겠다는 개별 수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전문 딜러처럼 큰 물량, 유통망 전체를 다루는 경쟁력이 없더라도, 지금 같은 특수 상황에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일인 것이다.
러시아 비즈니스에 있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러시아 시장이 어려워 다 떠날 때, 손해를 감수하고 남아서 의리를 지킨 회사가 이후 러시아의 국민 브랜드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대표적 기업이 바로 삼성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고 했다.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은 이 '구멍 비즈니스'의 첨병이 된다. 생존에 내몰려 신차 가격에 중고차를 사는 사람들이 빗발치는 것이다. 중고차 비즈니스가 끝물이라고 해도, 월간 수출대수 데이터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또 그것이 막히더라도 제2, 제3의 '중고차 시장'은 계속 열릴 것이다. 제재로 막힌 그 어딘가에 또 다른 틈새가 폭발할 수 있어서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러시아 사람들에게 손을 한번 내밀어 보자. 메일 한 통이라도 괜찮다. 모두가 전쟁광이 아니다. 똑같이 오늘 한 조각의 빵을 걱정하는 '구멍 파인더'가 있는 것이다.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새가 물어온 박씨처럼, 어려울 때 작은 도움 하나가 평생 신뢰로 돌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