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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솔 Nov 30. 2023

일 년 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잘 견뎌준 덕분이야. 고마워

안녕.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은 2023년 11월 30일이야.

일 년 전 오늘의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이유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어려운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긍정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건, 우주 어디선가 내게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보내줬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게 됐어. 그리고 그 사랑은 미래의 언젠가 죽음을 앞둔 내가 지나온 모든 삶에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삶의 모든 순간을 축복하고 사랑을 전하는 내가 있기에 지금 우리는 매 순간이 긍정과 축복 속에 있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알다시피 고통 속에서도 축복을 떠올릴 수 있었어.



꼭 일 년이 됐어. 오늘 암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한 날이야. 갑작스럽게 알려진 폐암이라는 진단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지.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폐암이라는 단어를 내 앞에 처음으로 꺼내놨을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오히려 두렵거나 놀랍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날 이후 많은 게 바뀌었지.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일상이랄까.



아, 이 편지를 긴장하는 마음으로 읽게 될까 봐 미리 말해둘게. 넌 잘 이겨냈고, 잘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아주 훌륭하고 멋지게 이후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맘 편하게 읽어줘. 네가 걱정하는 모든 짐을 덜어줄게. 미래의 나는 항상 너에게 감사하고 응원하고 있어.




[ 그래도 오늘은 떨린다. 세포들의 떨림이 나에게 느껴진다. 가슴의 두근거림, 밥을 먹을 때 손이 떨리고, 커피를 마시는데 다리 속의 세포들이 떨렸다. 글씨를 쓰는 지금도 두근거림.

나는 떨고 있다. 떨고 있음. 떨림을 인식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떨림에 사랑을 보내는 일. 함께 떨기. 함께 떨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저 함께 떨자. 떨림으로 온전하니 그러면 될 것. 더 이상은 없다. 떨림을 알아차릴 수 있어 감사하다.  2022/11/30 ]


일 년 전 오늘 써둔 일기를 읽었어.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온몸이 떨려서 울고 싶던 날. 커피를 쥐고 있던 손끝의 떨림, 발가락 끝까지 떨고 있는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 그럼에도 넌 그 떨림과 온전히 함께 있겠다고 스스로를 안았지. 두려웠을 텐데 모든 걸 안고 가려고 했던 너의 애씀을 사랑하고 고마워. 애썼어. 잘했어.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어. 지금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보내. 커다란 사랑 속에서 훌륭하신 선생님께 수술을 잘 받았고 네가 걱정하는 수술 후 통증이나 합병증 같은 것도 나타나지 않았어. 그리고 넌 더 큰 감사와 사랑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어.



일 년 후인 오늘. 난 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했어. 남편은 평소와 같이 회사로 출근했고 ( 이 사람은 여전히 좀 변한 게 없어.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 내가 그의 좋은 면을 용케 찾아서 보는 능력을 길렀다고나 할까?^^) 아이들은 학교에 갔어. ( 얘네들 오늘 세수를 안 하고 간 것 같더라? 아.. 근데 눈 감아줬어. ㅠㅠ 내가 이러고 살아) 나는 아침 설거지는 미뤄두고 식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어. 11월 말인데 날씨는 한겨울만큼 추운 요즘이지만, 거실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햇살 덕분인지 따뜻해 보여.


일 년 동안 내가 변한 게 있는지를 떠 올려봤어.


난 올해 몸을 움직이는 일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졌어. 너도 알다시피 몸의 사랑을 너무 많이 느껴버렸잖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판단 없이 모든 걸 허용해 주는 몸은 그대로가 사랑이야. 그 사랑 안에 모든 가능성 또한 품고 있음을 알게 됐어. 몸과 더 많은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 몸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지.  



올해 달리기를 해보고, 탄츠라는 무용도 시작했고, 셔플댄스라는 춤도 추기 시작했지. 몸을 움직여 산에 올랐고, 무대에서 또 다른 몸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나를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져. 정말 행복해 보이거든. 나를 엄마 미소로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것 같아.


아! 제일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나 일 년 동안 병치레 한 번을 안 했어. 감기 한번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해졌어. 솔직히 폐를 잘라냈기 때문에 조금은 취약해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던 걸. 독감에 걸린 아이를 안고 자도 코로나 걸린 아이를 옆에서 밤새 간호해도 난 걸리지 않더라고. 슈퍼 면역자가 된 기분이야. 하하.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 일인지 어디든 자랑하고 싶더라.



몸에 감사해. 모든 시간을 잘 견뎌주고 지금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그리고 가장 감사한 건 일 년 전의 나에게. 너에게. 매일의 세상이 아름다워. 이런 마음이 우리 생애에 선순환이 될 거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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