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솔 Nov 13. 2022

사랑을 보려고 하면 사랑이 보여요.

피고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저는 요즘 가을앓이 중입니다.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절정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요. 현관문을 열고 나가 탄천 변을 더 걷고, 열매를 영글게 하는 따뜻한 기운 가득한 가을 햇볕을 쬐고, 하루가 다르게 색이 변하는 꽃과 나무들을 바라봐요. 가을이 자꾸 제게 손짓해요. 자기를 만나러 나오라고. 후훗. 별수 있나요? 나가야죠. 계절이 깊어질수록 농익은 자태를 드러내요. 보이는 곳곳마다 알록달록 잎들의 향연에 밀려오는 가슴 벅참을 어쩌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늘 비가 내리더라고요. 바람이 불어 우수수 떨어져 버리는 잎들도 아까운데 거기에 비라니.. 은근 야속하기도 합니다만 가을비는 늦가을을 알리는 신호 같네요. 가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마지막 가을을 눈에 더 넣어두라고 일러주는 것처럼요.


예전만 해도 가장 예쁠 때 나무를 떠나야 하는 잎들은 얼마나 아쉬울까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피고 지는 것의 자연스러움과 순환하는 과정이라는 전체성 측면에서 완벽한 조화를 떠올리게 되네요. 계절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시선이 좋습니다. 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도, 일을 안 하고 집에서 놀고 있어서도 혹은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팔자 좋은 사람이라서도 아니에요. 드러난 세상은 똑같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바라보기로 했는지를 선택한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이지만 정말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찾아와요. 기쁜 일이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옵니다. 제발 나에게서는 피해 가기를 바라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인생을 많이 경험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나이이지만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예요. 단풍이 한창 예쁜데 비가 와서 하루아침에 앙상한 가지만 남는 나무들처럼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거나 혹은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누군가는 확언, 시크릿, 심상화 등을 통해 성공적인 미래 모습만 불러오고 싶겠지만 그런 모습만 나타날 수는 없을 거예요. 우리 삶에 희로애락은 자연스러운 일이거든요. 참 슬프고 무심한 말이죠? 왜 인간은 이런 숙명을 타고났는지도 신에게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저는 이 질문을 평생 들고 다녔어요. 왜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유를 알고 납득을 할 수 있어야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이제야 그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볼게요. 우리는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고통 앞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감정을 누르지 말고, 잘 들여다봐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게 맞아요.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슬픈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바닥 끝까지 내려가서 슬픔을 대면해야 해요. 슬픔을 이겨내고 참아내려고 하지 말고, 내 안의 슬픔을 모조리 꺼내 느껴주세요. 괴로움에 나뒹굴더라도 괴로움을 드러내 보세요. 비참함과 분노를 가슴을 치며 소리를 내며 드러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것은 타인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설령 타인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타인을 향한 분노와 비난으로 꺼내지 말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슬픔, 괴로움으로 온전히 바라봐주세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인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감정을 오롯이 내가 느끼고 통과시켜서 놔줘야 해요. 아니면 내 안에 어딘가 깊이 숨어들어 나를 평생 괴롭게 할 씨앗으로 자라나기도 하거든요. 말로 하긴 쉽다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어렵고 어렵습니다. 괴롭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 끝에 평화가 찾아오더라고요. 내 마음 안에서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고, 사랑이 일어납니다. 쓰다 보니 목사님이나 스님이 하실 말씀처럼 느껴지네요. 하지만 진실인 걸요.



저는 오랜 시간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어요. 찾아오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합니다. 힘들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고통과 시련의 자리에 감사가 채워지기 때문이에요. 더 나아가서는 고통이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고통이 감사가 되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지금 제 안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여유로움 안에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고통도 함께 존재합니다. 슬퍼서 눈물을 흘릴 때도 많고요, 행복해서 실실 쪼개며 걸어 다니는 시간도 많아요. 점점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만큼, 세상을 바라볼 때도 너그러워집니다. 그 시선에 화답하듯 세상도 제게 너그럽습니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세상과 나도 상호작용을 하니까요.


세상에 슬프고 어려운 일들이 많아요.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가야 해요. 그 앞에서 주저앉지 말고요. 그것이 세상을 위해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현실이 그대로인데 희망을 얘기하기가 죄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있어요.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위대한 힘이라고 믿어요. 희망을 바라보고 주변을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보면서 다시 시작했으면 해요. 둘러보면 함께 애쓰고 위로하려는 마음이 세상에 가득해요. 그게 곧 사랑이지요. 우리가 사랑 가득한 세상 속에 있다는 것도 놀랍지 않나요? 현실은 변하지 않지만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랑을 보려고 하면 사랑이 보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