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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 Oct 15. 2020

유전자 개조로 만들어낸 완벽함이 SF소설의 주제인 이유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만날 수 없다면.' 독서모임을 한 날

독서모임 책으로 유명한 SF소설을 읽게 되었다. 유전자 개조, 우주 탐사, 과학기술의 발달로 갓난아기의 뇌파를 읽을 수 있다는 상상, 감정을 만질 수 있는 물성으로 만들어 촉감을 통해 특정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설정 모두 현실에서 벗어났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SF(science fiction) 즉 공상과학이었다.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과학적인 논리와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을 법한 주제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발제문도 한결 가볍고,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로 상상을 할 수 있어 치열하고 피곤했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전자 개조를 해서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내서 완벽한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완벽한 인간이 도대체 뭐야?”     


모두가 쫓는 완벽함의 기준은 어쩌면 참 모호한 것일지도 모른다. 외모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외모가 존재할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예쁘다.’, ‘멋있다.’란 외모는 사실 없다. 대다수,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미의 기준이 존재할지 몰라도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격 역시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완벽한 점이 따지고 보면 본인에게도 좋은 성격은 아닐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일이든 거절하지 않고 호쾌하게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완벽하다 말할 수 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과도한 업무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외모, 품성, 지능을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개조했다 치더라도 과연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는 완벽한 사회일까.  평화, 감사, 사랑, 긍정, 공감으로만 가득 찬, 모두가 행복한 모습일까. 성격의 개조가 우리 안의 시기, 질투, 욕망, 분노, 소외와 같은 감정까지 거세시킬 수 있을까. 소설은 그러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했고 우리들의 의문은 소설로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독서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자 가만히 나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나의 부끄러웠던 과거 기억들, 힘들었던 학창 시절, 실수투성이에 실패하고 소심했던, 그래서 부정했던 옛날의 내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지나간 시간은 바꿀 수 없는 과거로 굳어지기 때문에 괴롭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옛 기억 들은 마치 따발총처럼 쏟아지듯 온 몸에 박혔고 그 앞에서 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온전히 기억의 총알을 받아내야만 다. 한없이 괴로워하면서, 부끄러워하면서.     


우리는 모두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따뜻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영향력이 커질 때에 행복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실수 없이 보여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만 살아가는 사회가 아닌 이상,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모두가 공감하는 완벽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안에서 무수히 괴롭고 힘겨운 고난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한계를 만난다.    


하지만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자연법칙처럼 그 누구도 자신의 부족함과 못난 모습을 드러내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불완전하고 방어적인 태도로 그 시기를 버틴다.   그래서 자신이 내뱉었던 경솔한 말 한마디, 관계에 있어 서툴렀던 시기에 의도치 않게 혼자였던 시간들이, 다른 이 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기인하여 저질렀던 실수들을 마주할 때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과거의 나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여전히 현재의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화석처럼 굳어져 이따금 좀 더 잘해보려는 나 자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 앓게 만든다.      


좀 더 잘해보겠다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용기 있게 한걸음 내딛으며 어제와 다른 나를 위해 시도하는 작은 변화들이 인정받고 뿌듯하게 느껴지는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화석처럼 굳어진 지나가버린 시간 속의 서툴렀던 나를 볼 때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움츠러들게 된다.      



완벽함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미래 이상향을 통칭하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완벽한 나, 흠잡을 곳 없이 완전한 나의 모습처럼. 완벽한 사람, 완벽한 사회가 여전히 SF소설의 주제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내지 못한 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의미를 추구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평생 개개인만의 생을 살아간다. 각자가 완성해나가는 삶의 방향과 모습은 다를 것이다. 조금씩 다른 삶을 인정해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내가 먼저 나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하겠다. 불완전했던 과거의 내가 걸어온 이 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성장했을 테니까.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옛 친구가 지금의 날 만나면 깜짝 놀랄 수 있다. 그 놀람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놀라지 말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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