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야 하는데 아직은 안고싶은 마음
흔한 사춘기의 중학생 딸이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어울려 놀며 속상해하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한다.
학교생활도 비교적 즐겁게 한다.
친구들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투닥거리면서도 다시 친해지는 모습.
학교생활도 잘해내는 딸을 보면 참 예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친구를 따라 강남에 간다거나,
무언가를 ‘함께’ 해야만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이 시기에 흔한 모습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 마음은 괜히 쓸쓸해진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놀 줄 아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지만 친구와 함께하려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
나만 혼자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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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중학교 사춘기에 관한 책을 자주 집어 든다.
내 중학교 시절은 어땠을까.
그때의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대해주셨을까.
그 기억들을 더듬으며
딸에게도 그렇게 해주려고 애쓴다.
내가 싫었던 말,
위로가 되었던 태도들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보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걱정이 앞선 말들은
대부분 잔소리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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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딸의 다급한 전화목소리에 걱정이 먼저 들었고
곧 화가 났다.
“왜 아직 안 갔어?
지금 아파트 후문이야?”
친구랑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나왔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이 시기에 친구가 좋다 해도
사리분별은 할 수 있을 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오겠지,
그 마음으로 버틴 시간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고 한다.
마침 휴대폰 개인정보 유출 이슈로
앱들을 정리하느라
택시 앱도 지운 상태였다.
다시 깔고, 결제를 등록하려면
내겐 5분이 필요했다.
딸과 통화를 하며 택시 앱을 다시 설치했고
그 과정에서 결국
핀잔 섞인 말이 나왔다.
“다음부터는 친구랑 같이 가더라도
시간 안에 안 나오면 먼저 가.”
한 번만 말해도 될 걸
자꾸 반복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
어릴 땐 상처받지 않게 말하려 애썼는데
이제는 ‘청소년이니까 이쯤은 말해도 되지 않나’
나도 모르게 비난조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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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딸은 여전히 애교도 많고,
잘 웃고,
가족 여행도 함께 가려고 한다.
밤이 되면
“사랑해. 엄마 안아줘.”
라고 말하는 아이.
내가 너무 다 컸다고,
엄마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직도 어릴 때 육아법에 머물러
아이를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딸아이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잘 자라가고 있는데,
엄마인 나는
여전히 과거의 향수에 젖어
아이를 내 품에만 두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몸은 많이 컸지만
마음은 아직 아가라
엄마의 얕은 생각에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