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살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까 Apr 20. 2023

7. The last day of life

방콕에서 자살하기

나는 그런 방식으로 기차에 뛰어들어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메이가 죽는 것을 도와준다면 자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메이 시체의 조각이나 장기들이 내 몸에 묻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하면 비닐이나 방수포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가야 하나? 사람들 보기에 그것처럼 이상한 일도 없을 것이고 메이가 정말 자살을 하게 되면 누가 봐도 자살조력자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그랬다간 태국 밖을 못 나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국 감옥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메이에게 설명했다. 메이도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눈치였지만 막상 해결책은 없는 듯했다. 


내가 물었다. 


“정말 그렇게 죽고 싶어요? 기차에 부딪혀 온몸이 산산조각이 난다 해도요? 역직원들이 당신의 팔다리랑 살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러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봐요. 전 죽어도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려면 저 없이 혼자 가세요.”


싱가포르 상사와의 일이 그렇게 마음에 상처가 된 것인가? 마음의 상처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만 나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피를 뒤집어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메이가 말했다. 


“아마 내 피가 당신의 옷에 튀진 않을 거예요. 내가 알아보니 기차에 매달려서 잠시 이동하다가 뼈와 근육이 분리된다고 해요. 그리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거고요. 역을 잠시 벗어나서 제 온몸이 바스러질 때니 옷에 묻을 염려는 안 하셔도 돼요.”


“아니요, 기차 머리에 부딪혀 팔다리가 부러지고 기차 바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신체안치소에도 못 들어가요. 시체 검안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살과 뼈를 생선쓰레기 담듯 양동이에 쏟아부을 거라고요. 끔찍하지 않아요?”


“아니요, 전혀요. 제 때문에 옷이 더럽혀지거나 끔찍한 모습을 보는 게 싫으시다면 멀리서 사진을 찍어주는 척하세요. 저는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승강장에 나가 있다가 기차에 치이면 되는 거예요.”


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혼자 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메이는 말이 없어졌다. 나이트클럽의 음악소리도 메이의 침묵과 함께 잠잠해진 느낌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난감한 일을 겪은 일이 없었다. 누군가를 죽여달라는 청부살인 제안을 받게 되면 이런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청부살인업자는 그 사람을 왜 죽여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는다는 것이 살인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명분으로 사람을 죽이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 작업을 마치고 칵테일을 기울이며 즐거운 휴식을 즐기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사람 죽이는 일에 이골이 나면 그 정도 일에는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을까?


시체를 자주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다. 시체를 부검하면서 정말 희한한 시체들을 볼 텐데 생선쓰레기처럼 양동이에 담긴 뭉개진 시신도 아무렇지 않게 쳐다볼 수 있을까? 나는 그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메이는 자살을 하고 나는 메이를 살리는 것이었다. 이런 이상한 상황이 어디 있겠느냐만 메이 옆에 있다가 그가 기차에 뛰어들려고 하는 순간 잡아채서 승강장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자칫하면 나도 기차로 휩쓸려 들어갈 수 있으니 아주 위험한 계획일 수도 있으나 내가 메이보다 덩치는 세 배는 더 컸으므로 힘조절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메이가 나 때문에 살아나면 그땐 자신이 삶을 되돌아보고 자살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선쓰레기니 저민 고기니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봐야 들어먹지 않은다면 그와 같은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말했다. 


“좋아요, 저랑 같이 가요.”


메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면 되죠?”


메이는 난데없는 내 동의가 믿기지 않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말했다.


“죽고 싶다면서요. 내일 당장이라도 가요. 그런데 전 기차로 안 죽을 거예요.”


난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인사는 해서 뭐해요. 그냥 편하게 내일 떠나요. 제가 도와줄게요.”


상당히 근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나 자신이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능력이나 성격이 나오는가 보다. 


메이가 말했다. 


“내일 아침 8시, 호텔 로비에서 기다려요.”


상황을 정리하고 고민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그 시간 안에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메이는 약속한 시간에 나와 있었다. 어제 입었던 옷을 똑같이 입고 있었다. 보아하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인생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고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가 보다. 나는 자살을 할 양은 아니었으므로 짐을 가지고 나오지는 않았다. 어디 가까운 곳에 갔다가 당장 돌아오라도 할 것처럼 편한 복장이었다. 자살에 전혀 맞디 않는 복장이라고 해야 할까? 


그 역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묻고 싶었으나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툭툭 하나가 호텔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툭툭 위에 올랐다. 웬일인지 메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메이가 말했다. 


“Welcome to the last day of life!”


메이는 천진난만할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가 어색하고 과장된 느낌이 들었지만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죽기 전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사람의 표정이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럼 나는 지나치게 평온한 것은 아닌가? 죽을 날을 맞이하는 사람치곤 너무 평범한 거 아닌가? 그렇다면 메이가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략을 이미 알아챈 것은 아닌가? 어찌 되었던 난 갑자기 표정을 바꾸지는 않기로 했다.


툭툭은 출발했고 오토바이가 가득 메운 도심으로 나왔다. 출근 시간인지 양복을 입은 사람등리 많았고 버스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방콕에서 이틀째 되는 날이니 아직은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이렇게 북적이고 정신없는 풍경도 나에게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툭툭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툭툭에서 잠이 든 것까지는 잘 알겠는데 내가 왜 병원에 누워있는지는 이해가 안 됐다. 삼센 역에서 일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아침에 타고 가던 툭툭이 사고가 난 것은 아닌가? 아니, 그게 오늘 아침은 맞는 것인가? 난 누가 병원에 데리고 온 것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병실 문 앞에서 양복 입은 몇 사람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한국어가 얼핏 얼핏 들렸다. 한 사람이 병실 앞으로 힐끗 쳐다보다가 내가 깨어난 걸 보더니 급하게 내 쪽으로 다가와 반가운 듯 말했다.


“아, 일어나셨군요. 정신이 드십니까?”

“예,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왜 병원에 와있죠?”

“저는 주태국한국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자세한 말씀은 차차 드릴 테니 먼저 의사 선생님부터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문 밖을 향해 내가 모르는 말로 크게 이야기했다. 역시 내가 모르는 말로 대답을 하더니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제 목적은 자살처럼 보이지 않는 자살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